릴로

쇠문이 찌그러진다. 벽 안쪽으로 처박힌다. 먼지 구름 너머로 붉은 빛을 뿜는 석조 제단이 보인다. 제단 중앙에는 황금으로 주조된 성배가 놓여 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신의 정수다. 은빛 액체가 출렁인다.

당신은 지체 없이 제단으로 걷는다. 성배를 움켜쥔다. 그대로 목구멍에 들이붓는다. 은빛 액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뜨거운 불길이 오장육부를 태운다. 전신의 골격이 재조립되는 이격음이 터진다. 통증은 짧다. 혈관을 타고 새로운 근력이 요동친다.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떠오른다.

[경고: 허가되지 않은 자가 신격을 찬탈했습니다.] [하급 성좌 ‘전장의 포식자’가 당신에게 극도의 분노를 표합니다.]

"도둑놈이구나." 허공에서 긁는 듯한 음성이 울린다. 신벌의 파동이다. 방 안의 유리창이 일제히 깨져 나간다. 파편이 바닥에 쏟아진다.

당신은 입가에 묻은 은액을 손등으로 닦아낸다. "목소리가 시끄럽다."

"필멸자 주제에 감히 신의 은총을 탐해? 네 영혼을 갈아 제단의 거름으로 쓰겠다." "늘 하던 식상한 협박이군." 당신은 허리춤의 단검을 고쳐 잡는다. 칼날이 차갑게 번뜩인다.

제단 위 허공이 조각난다. 붉은 낙뢰가 치며 차원에 균열이 생긴다. 성좌가 지상으로 내려오기 위해 강제로 전송 포털을 여는 촉수다. 에너지 밀도가 급상승하며 사방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네가 도망칠 곳은 없다. 지금 무릎 꿇으면 고통 없이 죽여주마." "내려올 테면 내려와라." 당신이 냉소한다. "내 칼날은 이미 네 목을 기다리고 있다."

"지옥을 보게 될 것이다." 포털 너머의 존재가 노호한다. 당신이 대꾸한다. "내가 이미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

"건방진 벌레 놈이." 포털에서 고열의 마력이 폭사한다. 바닥의 석재가 녹아내린다. 붉은 아지랑이 사이로 거대한 화신의 형체가 일어선다. 신의 의지가 깃든 육체다. 차원의 제약으로 힘은 깎였으나 지상의 존재를 짓밟기에는 충분한 질량이다.

포털이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화신의 발끝이 지상에 닿기 직전이다. 붉은 폭풍이 당신의 뺨을 때린다. 기회는 찰나다. 당신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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