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스마트폰 액정이 빛난다. 2026년 4월 13일, 오후 2시 15분이다. 지구가 종말의 무대로 변하기 정확히 3시간 전이다.

"결국 돌아왔군."

당신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떨어진다. 성좌들의 조롱이 온몸의 신경을 자극한다. 뒤통수를 꿰뚫던 창백한 빛의 감각이 뼈마디마다 선명하다.

"이번엔 사냥개로 죽어주지 않는다. 내가 너희 목을 벨 것이다."

당신은 거칠게 입가를 문질러 닦는다.

"내가 너희들의 목줄을 비틀어 쥐고 사냥할 차례다."

성좌들이 지구 지배의 첫 이벤트용으로 숨겨둔 신화급 히든 피스 '성배와 은총'. 그것이 잠든 미술관 지하 수장고로 달린다.

"지체하면 빼앗긴다. 성배는 내 것이다."

수십 분을 달려 굳게 잠긴 미술관 정문에 도달한다. 휴관일이다.

"열려라."

당신의 손아귀에 힘이 실린다. 강철 걸쇠가 구겨지며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인다. 어두운 지하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길수록 과거의 기억이 이명으로 닥친다.

- 무릎을 꿇고 구걸해라. 은총은 오직 기어 다니는 짐승에게만 허락된다.

지상의 영웅들을 노리개로 쓰던 성좌들의 잔인한 목소리다. 당신은 이를 간다.

"개소리는 거기까지 들어주지."

당신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뜩인다.

"그 은총을 내 손으로 직접 뜯어내어 삼키겠다. 너희가 보는 앞에서 반드시."

지하 3층 복도의 끝, 거대한 주철 문이 앞을 가로막는다. 문틈 사이로 신성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뿜어져 나온다.

"드디어 당도했군. 오랜만이다, 성배여."

문 앞에 서자 사면에서 붉은 경고등이 켜진다.

- 침입자 감지. 허가되지 않은 객체의 강제 격리를 위한 사살 절차를 즉시 작동합니다.

기계적인 음성이 적막을 깨트린다. 당신은 칼날을 고쳐 쥔다.

"사살? 해볼 테면 해봐라. 이미 한 번 죽어본 몸이다. 너희의 하찮은 장난질 따위엔 굴하지 않는다."

주철 문 너머에서 강렬한 공명이 요동친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선택의 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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