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신벌검의 잔광이 사그라진다.

찢어졌던 시공간의 틈새가 천천히 실선으로 봉합된다. 공중에 머무르던 총대성좌의 거대한 영체가 사방으로 균열을 일으킨다.

"인과율을... 비틀어 내다니."

성좌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쏟아진다. 더는 오만함은 남아있지 않다.

"너희는 본래 신의 정원에서 춤추던 인형에 불과했다."

내가 대답한다.

"그 인형이 주인의 목을 꺾었다."

검을 쥔 손귀가 피로 붉게 물든다. 수명을 불태운 대가로 전신의 뼈마디가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나는 기어코 대지를 딛고 선다.

하늘 위의 은하를 메웠던 지배 성좌들의 시체가 푸른 화염에 휩싸인다. 장엄하던 육신들이 산산조각 나 추락한다. 사그라지는 그들의 신성이 비참하게 먼지가 된다.

"끝이라니, 정말 믿기지 않는군."

내 등 뒤에서 살아남은 한 길잡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끝이다. 보아라."

내가 답한다.

구름이 걷힌다. 저 멀리 수평선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우주 인터페이스가 강제하던 인공의 빛무리와는 다른, 지구 본연의 뜨거운 태양이다.

한 사냥꾼이 내 곁으로 다가와 묻는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갑니까?"

"스스로 걸어라."

나는 검을 땅에 깊숙이 꽂는다.

"지배자들은 죽었다. 이제 너희 몸에 채찍을 휘두를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로소 인류가 자유를 얻었군."

길잡이가 흙바닥에 주저앉으며 읊조린다.

"그래. 이제는 우리 시간이다."

내가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눈물을 흘린다. 그들의 시선이 지배당하던 하늘이 아닌, 대지와 서로의 얼굴을 향한다. 시스템의 지배가 종식된 정적 속에서, 지구의 당당한 서막이 열린다.

사슬이 부서졌다. 복수는 끝났고, 인류는 이 대지 위에 굳건히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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