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이 무너진다. 허공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뻗어 나간다. 신벌검이 내뿜은 붉은 섬광은 성좌들의 군대를 집어삼켰다. 그 대가로 당신의 영혼이 타오른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피비린내가 치솟는다.
"이것이 너의 한계다, 필멸자."
허공에 떠 있는 기괴한 형상들, 살아남은 성좌들의 파편이 비웃듯 속삭인다. 당신은 부러진 검자루를 고쳐 쥔다. 가죽 장갑 밑으로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난다.
"아직 한 발 남았다."
당신의 목소리는 건조하게 갈라져 있다. 고통은 이미 감각의 한계를 넘어섰다. 오직 사냥감을 향한 집념만이 척수를 지탱한다. 시공간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차원의 경계가 완전히 지워지며 붕괴의 심연이 입을 벌린다. 저 멀리 아래에는 잿빛으로 변해버린 지구가 보인다. 종말의 게임은 끝났으나, 남은 것은 무(無)로의 회귀뿐이다.
"여기서 멈춰라. 격류에 휩쓸리면 너 역시 소멸한다."
성좌들의 수뇌인 '눈먼 인도자'가 일그러진 차원 틈새로 거대한 거미 모양의 형상을 드러낸다. 당신은 목구멍으로 끓어오르는 검붉은 피를 삼킨다.
"너희를 길동무로 삼는다면 거래 조건은 충분하다."
"미련한 놈. 네가 이 쓰레기 같은 세계를 구하려 한 대가가 겨우 무덤인가?"
"구원 따위는 애초에 관심 없다. 내 목표는 오직 사냥뿐이다."
당신의 손끝에서 검기가 다시 한번 폭발한다. 성좌들의 신성력을 비틀어 제련한 검이다. 비스듬히 그어진 역학적 궤적이 허공을 가르자, 인도자의 방어벽이 찢기며 불꽃을 토해낸다.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공간 기하학이 붕괴한다.
"스스로를 불태워 얻은 힘으로 무엇을 증명하려 하는가."
"너희의 철저한 몰락."
당신의 대답과 함께 세상이 심연 속으로 완전히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마지막 순간이다. 파괴되는 이 차원 공간의 반동을 이용해 신들의 기원을 소멸시킬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모든 것을 짜내어 차원의 문을 완전히 폐쇄할 것인가.
"선택해라, 대도살자여."
우주의 메아리가 귓가를 강타한다. 검을 쥔 당신의 팔근육이 파르르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