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하늘이 쪼개진다. 붉은 성탑의 하늘 위로 먹구름 대신 찬란하고 불쾌한 황금빛 안개가 차오른다. 대기가 비명을 지르며 압축된다. 안개 너머에서 산맥보다 거대한 손가락이 구름막을 찢고 내려온다. 우주의 인터페이스와 영벽을 지배하는 규칙의 주인, 총대성좌의 본체다. 수천 개의 황금빛 눈동자가 허공에서 일제히 개안하여 당신을 내려다본다. 인과율의 왜곡으로 인해 시간의 흐름이 뚝뚝 끊긴다.

"나약한 필멸자가 차원의 흐름을 비틀었다 자부하는가."

성좌의 목소리가 뇌수로 직접 꽂힌다. 진동만으로 고막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돌아간 시간선조차 결국 내가 허용한 모래시계 안의 유희일 뿐이다."

당신은 부러진 대검을 고쳐 잡는다. 어깨뼈가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통증에 입술을 깨문다. 비린내가 입안을 채운다.

"네놈들의 지루한 유희는 오늘로 끝이다."

"오만하구나. 한낱 먼지가 우주의 법칙을 부정하려 드는가."

성좌의 거대한 팔이 움직인다. 속도가 존재하지 않는 일격이다. 주먹이 뻗어 나오는 궤적이 시간선을 물리적으로 짓밟으며 동시에 여러 개의 과거와 미래의 잔상을 남긴다. 피할 수 없는 타격이다.

가슴뼈가 함몰되고 늑골 세 대가 부러지며 폐를 찌른다. 당신은 바닥을 구르며 검은 피를 토해낸다. 물리적인 방어는 의미가 없다. 상대는 인과 자체를 조절하여 '이미 명중했다'는 결과를 먼저 도출하고 있다. 눈앞이 붉게 점멸한다.

"네 반항의 역사는 여기서 지워진다. 존재한 적 없는 무(無)로 돌아가라."

"무로 돌아가는 건 내가 아니다. 네놈들이다."

당신은 이가 깨지도록 마주 물며 대답한다.

"발버둥 쳐라. 벌레의 말로는 늘 동일했다."

황금빛 안개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사지를 압박한다. 피부가 갈라지고 근육이 뼈에서 떨어져 나간다. 검을 쥔 오른손의 마디가 으스러진다. 그럼에도 당신은 대검의 손잡이를 놓지 않는다. 심장 옆에 박아둔 심연의 갈증이 차갑게 식으며 오히려 뇌를 맑게 깨운다.

우주의 지배자가 내리누르는 절대적인 인과율 아래, 무릎이 꺾이기 직전 당신은 두 가지 강렬한 흐름을 감지한다. 무너진 대지 아래 잔존한 인류의 모든 소망과 사념이 검날을 향해 차가운 불꽃을 피워 올린다. 동시에 네놈이 가진 신성 그 자체를 내 육체로 직접 끌어당겨 감금할 기회의 틈새가 보인다.

선택해야 한다. 이 기괴한 우주의 흐름을 어떻게 영원히 끊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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