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화마가 하늘을 이 등분으로 찢는다. 무너진 성탑의 잔해 위로 검은 재가 눈송이처럼 떨어진다. 지구의 내핵이 뒤틀리며 전해지는 진동에 대지가 끊임없이 비틀거린다. 마침내 그들이 도달했다. 은하 제국의 정점에 군림하는 네 명의 신성. 그 거대한 영체들이 고공에 정렬하자 주위의 산소가 급속도로 얼어붙는다.
"결국 찬란했던 최후의 무대를 제 손으로 허물었구나. 종막의 연회장을 완전히 박살 내고도 살아남기를 바랐더냐."
가장 거대한 빛을 발하는 동방의 성좌가 냉소를 머금으며 입을 연다.
"필멸자가 신의 위대한 궤도를 망쳐놓은 대가는 무겁다. 이 하찮은 행성의 가치를 말소해 영원한 무(無)로 돌리겠다."
남방의 성좌가 권능을 전개하자 보랏빛 화염이 사방으로 스며든다. 지상의 인간들이 영혼을 박탈당하며 쓰러지는 광경이 눈끝에 밟힌다.
"네놈들이 설계한 하찮은 유희는 여기서 완전히 끝이다. 오늘 이 사냥터에서 도륙당할 사냥감은 바로 너희다."
당신은 이가 빠진 흑색 검을 거머쥔다. 폭식의 권능이 혈관을 타고 역류하며 온몸의 모공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온다. 사지가 부서지는 통증 속에서도 당신의 사나운 시선은 정면을 향한다.
"오만하구나. 우리를 대적할 힘이 부서진 육체에 단 한 조각이라도 남았다고 믿는가? 네 비참한 영혼 또한 이 자리에 흔적 없이 바스러질 뿐이다."
북방의 폭군이 내뿜는 압도적인 신성이 사방에서 사지를 짓누른다. 날카로운 중력에 어깨뼈가 어긋나고 척추가 부러진다. 당신은 비집고 나오는 피를 억지로 삼키며 짓씹듯 내뱉는다.
"죽어가는 사냥개의 이빨이 신들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순간에도 그런 한가하고 오만한 소리가 나오는지 증명해주지."
"하찮은 반역이군. 수많은 우주와 차원을 지웠던 우리들의 권능으로, 이 행성의 비겁하고 지저분한 역사에 마침표를 찍어주마."
서방의 심판자가 마침내 파멸의 궤적을 완성한다. 하늘 전체가 붕괴하며 정수리 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당신은 호흡을 멈추고 거친 심장을 가라앉힌다. 발바닥을 통해 대지 깊은 곳에 잠든 행성의 원기가 요동친다. 동시에 당신의 체내 차원 내부에서 폭식의 공백이 굶주린 이빨처럼 벌어진다. 사투의 끝을 장식할 결단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