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이 먼저 터졌다. 붉은 피가 아니라 황금빛 신성이 피부를 찢고 뿜어져 나왔다. 감당할 수 없는 그릇에 넘치는 힘을 부은 결과다. 영체 세포가 안쪽에서부터 처절하게 붕괴한다. 세포 결합이 해체되며 뼈와 살이 마찰을 일으켜 스스로를 갈아내기 시작한다.
하늘이 피로 붉게 인 채 갈라지며 성좌들이 비웃음을 쏟아낸다. "한낱 미천한 피조물의 비참한 몸뚱이가 감히 신의 귀한 권능을 탐하였구나. 분수를 모르는 폭식의 말로는 이토록 허망하며 추하다." "참으로 가련하도다. 복수라는 감정에 눈이 멀어 제 영혼까지 스스로 불살라 사라지게 만들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종말인가." 그들의 목소리가 뇌수를 거칠게 흔든다. 귀에서 검붉은 피가 길게 흘러내린다. 당신은 검을 땅에 박아 간신히 버티려 하지만 손가락 마디마디가 타버린 재처럼 공중으로 바스러져 나간다.
"닥쳐라. 너희 더러운 놈들의 목을 전부 도려내어 땅에 처박기 전까진 내 호흡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내 눈이 멀고 심장이 터지더라도 똑똑히 지켜보아라." 당신은 이를 악물고 신성을 억누르려 내면의 마지막 마력을 쥐어짠다. "아직이다. 이 육신이 백 번 부서지고 천 번이 바스러져 가루가 된다 해도, 내 복수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는다." 역류한 마력이 심장을 사정없이 관통한다. 신성과 마력이 내부에서 충돌해 치명적인 폭발을 자아낸다.
의지는 철저한 물질의 법칙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 가슴팍에 주먹만 한 거대한 구멍이 뚫린다. 신성의 은빛 가루가 사방으로 사납게 분출되며 당신의 육체를 마구 해체한다. 양다리가 먼저 완전히 사라지고 이어 왼팔마저 먼지로 화해 흩어진다. 몸 전체가 모래성처럼 주저앉는다.
하늘에서 거대한 반투명한 거미손들이 그물이 되어 일제히 내려앉는다. "그 가늘게 조각난 비참한 영혼의 조각까지 남김없이 우리의 소유가 될 것이다. 감히 신을 거역한 죄를 뼈아프게 치러라." "네 부서진 영체를 사슬로 묶어 지옥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어두운 암흑의 구석자리 장식품으로 삼아 영원히 구경하마." 그들이 영혼의 실오라기를 낚아챈다. "더러운 신벌의 사냥개 놈들, 이 추잡한 손을 즉시 내 몸뚱이에서 떼어내라. 비열한 유희는 여기까지다." 당신이 목청을 찢어 발버둥 쳤으나 잔인한 침묵이 영혼을 옥죈다. "네 영혼의 파편 하나하나가 봉인 속에 갇혀 우리를 유희하게 만드는 가장 비참한 장난감으로 전락하리라."
손가락 끝마저 완전히 무로 돌아간다. 시야가 흐려지다 이내 완전히 암전된다. 타락한 성녀의 거대한 탐욕의 아가리가 당신의 무너진 의식을 조각째 삼켜낸다. 고통마저 허락되지 않는 아득한 공허가 온몸을 조인다.
지구의 유일한 구조자이자 집요한 복수귀의 종말이다. 당신의 소멸과 동시에 지상을 덮은 붉은 장막이 완전히 고정된다. 인류는 단 하나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차갑고 기나긴 멸망의 밤 속으로 영원히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