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장벽이 흔들린다. 하늘을 뒤덮은 사냥개들이 장벽 외벽을 들이받는다. 두꺼운 마력막에 실금이 그어진다. 손에 쥔 대검 '신벌(神罰)'이 검붉은 안개를 토해낸다. 대검의 전신은 성좌들의 파편을 제련해 만든 백색의 빛으로 빛난다.

"결국 문을 두드리는군." 내가 대검 자루를 쥐며 뱉는다. "어리석은 필멸자여, 네놈의 장벽은 오래가지 못한다. 장벽이 깨지면 네 생명도 끝이다." 성좌의 전령이 구름 사이에서 조소한다. "착각하지 마라." 내가 답한다. "이곳을 네놈들의 무덤으로 만들기 위해 끌어들인 것이다."

대검을 쥔 오른손부터 타들어 간다. 검붉은 불꽃이 살점을 검게 태우고 뼈를 갉아먹는다. 영혼이 통째로 연소하는 감각이 전신을 지배한다. 이 무구는 내 수명을 연동하여 작동한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조여들고 안구에 붉은 핏발이 선다. 수명이 줄어들수록 검의 살의는 증폭된다.

"무모하군. 자신의 영혼을 채워 칼날을 세우다니 제정신이 아니구나." 전령이 손가락질한다. "너희를 죽일 힘을 얻는다면 이깟 육신 따위는 가루가 되어도 좋다." 내가 선언한다. "그 결기가 죽음 앞에서도 유지되는지 보겠다. 모조리 짓밟아라!" 전령의 명령에 괴수들이 포효한다.

장벽의 외판이 박살 나며 날카로운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괴수들의 이빨과 손톱이 코앞까지 쇄도한다. 살을 감싼 붉은 불꽃의 열기는 신체의 한계를 초월했다. 영혼의 장막이 무너지기 직전이며, 온몸의 뼈마디가 삐걱거린다. 검을 세게 쥘수록 수명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뇌리를 때린다.

"여기서 나와 함께 먼지로 돌아가자." 내가 대검을 고쳐 잡는다. "미련한 놈, 제 수명을 모두 던질 작정이냐?" 전령의 안면이 떨린다. "네놈들을 멸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던진다." 내가 답한다.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이 하늘의 구름마저 불태운다. 생명력을 갈아 넣은 대검의 힘이 개방되기 직전이다. 적들의 침략과 비명이 뒤섞이며 전령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육신의 붕괴를 감수하고 검을 휘두를 것인지, 아니면 저들의 신성을 찬탈해 장막을 연명시킬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갈라진 안광 속에서 검이 붉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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