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정포 세작단이라니! 도성 삼군영의 방비가 이토록 형편없단 말이냐!”

편전의 높은 천장을 때리는 광해군의 고함은 뇌성벽력과 같았다. 용상에서 벌떡 일어선 군주의 안색은 극도의 분노와 초조함으로 검붉게 타올랐다. 금방이라도 정인홍과 그 대북(大北) 세력을 국문장으로 끌고 가라 명했던 추상같은 위엄은 사라지고, 북방의 오랑캐에게 나라의 명줄을 쥐여주었다는 공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뜰에 엎드린 대간들과 의금부 금군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정인홍의 가신들이 사사로이 가마를 짓고 무기를 만들었다는 율법의 칼날이 채 휘둘러지기도 전에, 북방의 거대한 어둠이 조선의 심장부를 먼저 파헤쳐 버린 격이었다.

“전하, 군기시의 야철 비기는 단순한 쇠붙이의 주조법이 아니옵니다. 만일 오랑캐들이 고압 강선 조총의 설계도와 제련 금책도를 손에 넣는다면, 저들의 철기군이 강선 조총을 들고 국경을 넘어올 것이옵니다! 이는 종묘사직의 파멸이옵니다!”

우의정 이하 대신들이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아우성쳤다. 편전 안은 순식간에 패닉의 도가니로 변했다. 세작의 침투를 방치한 병조와 금위영의 실무 책임자들을 당장 처형해야 한다는 격앙된 상소가 빗발치듯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 아수라장의 한가운데에 선 이진만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마치 잘 다듬어진 차가운 청동상과 같았다.

“이진! 너는 어찌 그리 태연한 것이냐! 네 놈이 밤낮으로 매달려 만든 비책이 오랑캐의 손에 통째로 넘어갔거늘, 정녕 네 목숨이 아깝지 않단 말이냐!”

광해군의 시선이 이진의 목덜미를 꿰뚫을 듯이 꽂혔다. 왕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엎드리지도 않은 채, 담담하고 건조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전하, 소신이 군기시 가마터에서 밤낮으로 연산한 비책은 그리 허술하게 탈취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옵니다.”

“무엇이라?”

“세작들이 가마터 내부의 삼중 함함을 뚫고 훔쳐 간 금책도와 조총의 규격 도면은, 실상 소신이 머릿속으로 수만 번의 배합비를 가상 연산하여 고의로 오차를 심어둔 ‘인장 강도 폭파 도면’이옵니다.”

편전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대신들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고, 광해군의 호흡이 멈추었다.

이진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미래 무기 공정 시뮬레이터’의 푸른색 그래픽 구조도가 84%의 연산 과부하 속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미열과 함께 귀 끝에서 미세한 핏방울이 배어 나왔으나, 이진은 그것을 소매로 거칠게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조선의 자철광, 특히 평안도 영변의 철광석은 유황(S)과 인(P)의 성분이 지나치게 높 사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석회(CaO)를 슬래그 분리제로 적시에 투입하고, 가마 내부의 기압을 수동 제어하여 연철을 정화해야 하옵니다. 소신이 가마터 한편에서 발견한 서태린의 아비, 고(故) 서필중이 남긴 일지에도 영변 철광의 유황 중독으로 인한 주조 실패 기록이 상세히 적혀 있었사옵니다.”

이진은 편전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던 서태린을 힐끗 바라보았다.

“소신은 그 실패 기록을 정밀히 분석하여, 도면에 표기된 소석회의 배합비와 가열 온도의 수식을 완벽하게 왜곡해 두었사옵니다. 세작들이 탈취한 도면대로 철을 녹이고 강선을 판다면, 외견상으로는 완벽한 조총의 형태를 갖추겠으나, 내부의 결정 구조는 미세한 균열로 가득 찬 똥철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것은 철저한 지식의 우위이자, 적의 탐욕을 이용한 지독한 법리와 기술의 덫이었다.

“게다가 전하, 이이첨의 수하였던 도접장 길준이 군기시에 납품하려다 압수된 기준 미달의 불량 동철들을 기억하십니까? 대명률의 장물 유통 죄로 단죄되었던 그 불량 무쇠들을, 실은 후금의 세작들이 도주로에 미리 매포해 둔 원자재로 흘려보냈사옵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훔친 비책과 그 불량 무쇠가 만나면 천하무적의 병기가 탄생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을 것이옵니다.”

이진의 냉혹한 음성이 편전의 차가운 바닥을 굴렀다.

“또한, 정인홍의 가신들이 군기시 외부에 몰래 사적인 가마를 짓고 무기를 밀조해 온 ‘사무기 주조 죄’의 구례 위반 현장 역시, 소신이 흘린 가짜 야철 열처리 공식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었사옵니다. 정인홍 일파가 역모의 혐의를 벗지 못하고 자멸한 것 또한, 가짜 도면으로 주조한 결함 무기들이 그들의 가마터에서 증거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옵니다.”

사대부들의 이권망을 송두리째 뜯어내고, 적들이 판 함정에 적들 스스로가 목을 매게 만드는 이진의 설계력에 편전의 대신들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성리학적 명분을 입에 담던 김상헌조차 이진의 지독하리만치 치밀한 공리주의적 덫 앞에서는 입을 열지 못했다.

광해군의 입가에 마침내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과연…… 과인의 사냥개로다. 기술의 오차로 적의 눈을 멀게 하고, 법리의 그물로 정적들의 숨통을 끊어놓았구나.”

왕은 용상에서 내려와 이진의 앞에 섰다.

“그러나 도면이 가짜라 한들, 저들이 직접 조총을 만들어 사격을 시험해 보기 전까지는 국경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다. 저들이 속았음을 깨닫는 순간, 요동의 철기군이 평안도를 피바다로 만들 터.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할 셈이냐?”

이진은 왕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

“적들이 가짜 도면으로 총포를 주조하여 스스로 파멸하는 순간이 바로 조선의 신형 규격 화차가 북방의 벌판을 지배할 타이밍이옵니다. 소신에게 군기시의 직업 조총 장인들과 신형 규격 화차 화력 부대의 통제권을 주시옵소서. 변방 영변으로 출격하여 오랑캐들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겠사옵니다.”

광해군은 주저하지 않았다.

“좋다. 과인이 친히 너에게 직속 사격 권한과 군기 통제권을 위임하노라. 평안도 관찰사와 의주 부윤 역시 네 지휘를 따를 것이다. 가서 조선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오거라.”

***

어전회의가 끝나고 궐문을 나서는 길, 도성에는 이미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북방으로의 출정을 앞둔 군사들의 군화 소리가 돌바닥을 울렸다.

이진이 병조의 마당에서 마차를 점검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대인!”

돌아보니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서태린이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아비의 유품인 야철 일지와 붉은 점토 배합기가 들려 있었다.

“내화 벽돌의 수분을 조절할 장인이 없으면 변방의 가마터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합니다. 저도 평안도로 가겠습니다.”

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영변은 전쟁터가 될 것이다. 가마터의 장인들은 도성에 남아 양산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생산 효율 면에서 최적의 선택이다. 너의 동행은 비합리적이다.”

“비합리적이라고요?”

서태린이 이진의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녀의 눈에 서린 단호함은 이진의 차가운 눈빛동자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지금 대인의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수백만 번의 수식을 연산하느라 뇌수가 타들어 가고 있으면서, 현장에서 가마의 온도를 직접 조율할 장인도 없이 혼자 가시겠다는 도리가 어디 있습니까! 대인이 쓰러지면 조선의 야철 기술은 그대로 끝입니다. 저를 데려가시는 것이 대인의 그 빌어먹을 ‘효율’에도 맞을 것입니다!”

이진은 침묵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머릿속 시뮬레이터의 연산 능력이 전두엽 모세혈관의 신경 손상을 유발하고 있는 상태에서, 현장의 열기를 육안으로 식별하고 내화 벽돌의 미세한 균열을 잡아줄 숙련된 야철가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이진의 가슴 속에서 일어난 미세한 파동은 단순한 수식의 계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을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만 여기던 그가,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사지로 뛰어들겠다는 이 여인에게서 기묘한 인간적 경외를 느끼고 있었다.

“……마차에 타라.”

이진의 짧은 허락에 서태린의 입가에 엷은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가마의 온도는 내가 책임질 테니, 대인은 그 무시무시한 머리로 적들의 숨통을 끊을 궁리나 하십시오.”

그것은 공리주의적 유용성 계산을 넘어선, 두 사람만의 묵직한 신뢰의 계약이었다.

***

사흘 뒤, 평안도 영변 국경 북벽 너머의 후금 야철 기지.

건조한 북방의 바람이 몰아치는 벌판 한가운데, 수십 개의 가설 가마터가 붉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후금의 세작 우두머리인 아구타는 조선의 군기시에서 빼앗아 온 금책도를 펼쳐놓고 광소하고 있었다.

“하하하! 조선의 임금 놈이 보물처럼 아끼던 비책이 드디어 우리 여진의 손에 들어왔구나! 이 설계도대로라면 가벼우면서도 결코 터지지 않는 강선 조총을 수천 자루나 만들 수 있다!”

가마터 주변에는 도접장 길준의 장부 조작을 통해 은밀히 빼돌려진 조선의 무쇠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야철 장인들이 땀을 흘리며 그 무쇠들을 가마에 넣고 녹이고 있었다.

도면에 적힌 대로 소석회를 배합하고, 고압으로 가열된 쇳물을 점토 형틀에 부어 총열을 주조했다. 은백색으로 빛나는 총열의 자태는 과연 천하의 명기처럼 보였다.

“좋다! 마침내 조선 놈들의 조총이 우리 손으로 완성되었구나. 성능을 시험해 보아라!”

아구타의 명령에 따라 후금의 정예 사수들이 완성된 신형 조총을 가슴에 견착했다.

탄환과 화약을 약실 깊숙이 밀어 넣고, 불씨를 당겼다.

“발포하라!”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굉음과 승전의 포효는 없었다.

퍼어어엉!

귀를 찢는 듯한 폭음과 함께, 조총의 약실 후방이 산산조각 나며 뒤로 터져 나갔다. 고압의 가스가 내부의 미세한 인장 균열을 타고 역류하여 사수들의 안면을 그대로 강타했다.

“으아악! 내 눈! 내 눈이!”

사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쇠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주변에 있던 화약 상자에 불꽃이 튀었다.

콰아아앙! 쿠구구궁!

연쇄 폭발이었다. 잘못된 열처리 공식으로 인해 내부 압력을 견디지 못한 제련 가마들이 균열을 일으키며 차례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가마 내부의 천사백 도에 달하는 쇳물이 사방으로 쏟아져 내리며 후금의 가설 진영을 덮쳤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도면이 잘못되었단 말이냐!”

아구타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도면에 적힌 소석회 배합식은 유황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의 내부 구조를 취약하게 만드는 최악의 독약이었다. 기밀을 빼앗아 승리했다고 자부하던 그들의 오만이, 이진이 설계한 정밀한 기술적 오차의 덫에 걸려 스스로를 통째로 불태워 버린 것이다.

진영 전체가 화염과 쇠붙이 폭풍에 휩싸여 자폭하는 기열의 현장이 벌판을 붉게 물들였다.

***

같은 시각, 영변 국경의 평안도 북벽 옹성 위.

이진은 바람에 휘날리는 도포 자락을 잡은 채, 저 멀리 후금 진영에서 솟구치는 붉은 불꽃과 연기를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상 오차 범위 내의 폭발이군.”

그의 머릿속 시뮬레이터에서 붉은색 경고등이 꺼지고, 청색의 완료 신호가 들어왔다. 적의 야철 기지는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그러나 이진의 얼굴에는 승리의 도취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였기 때문이다.

“대인, 저들의 본진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성벽 아래에서 신형 규격 화차 화력 부대를 지휘하던 서태린이 소리쳤다.

이진은 고개를 돌려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쿠구구구구궁-.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요동의 벌판 끝에서, 검은 먼지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다가오고 있었다. 야철 기지의 자폭에 분노한 후금과 청나라의 무패 정예 철기 부대, 팔기군의 본진이었다.

가죽과 철갑으로 온몸을 무장한 수천 기의 철기군이 자아내는 살기는 국경의 차가운 공기를 얼려버릴 듯했다. 말발굽 소리가 지평선을 흔들며 조선의 방어선을 향해 폭풍처럼 쇄도해 들어왔다.

이진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등 뒤로, 수천 명의 직업 조총 장인들이 철저하게 규격화된 부품으로 조립한 신형 화차 제2포구들이 일제히 포신을 내렸다. 차가운 강철의 총구들이 다가오는 검은 해일을 향해 조준되었다.

“화차 부대, 전원 장전.”

오랑캐의 무패 신화와 조선의 미래 무기 기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역사의 갈림길. 이진의 서늘한 명령이 국경의 바람을 가르며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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