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매캐한 유황 연기가 허파 깊숙이 들이칠 때마다 목구멍에서 비릿한 점액질이 울컥 솟구쳤다.

귓가에서 이명(耳鳴)이 이진의 고막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징을 두드리는 듯한 파열음 뒤로, 끈적하고 뜨거운 액체가 귓바퀴를 타고 뺨으로 흘러내렸다. 손끝으로 뺨을 훔치자 검붉은 피가 묻어났다. 귀에서 흐르는 피, 이혈(耳血)이었다.

이진은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간신히 눈을 떴다.

사방이 온통 붉고 검은 먼지로 가득한 지옥도였다. 사정없이 내뿜는 열기로 가득 찬 사방 벽면은 거칠게 구워낸 흙벽이었고, 천장에서는 시커먼 그을음이 눈송이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사방에서 메아리치는 소리는 현대의 군수 공장에서 듣던 기계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쇠를 두드리는 둔탁한 망치 소리와 사람들의 처절한 비명이었다.

"물러서라! 가마가 터진다! 모두 뒤로 물러서!"

거친 사투리가 섞인 고함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이진의 시야 한구석에서 푸른빛의 반투명한 문자열이 어지럽게 명멸하기 시작했다. 가상 주조 및 제련 시뮬레이터의 구동 인터페이스였다. 그의 뇌가 조선의 열악한 환경을 고통스럽게 인지하는 순간, 머릿속에 내장된 미래 무기 설계 데이터베이스가 강제로 기동한 것이다.

[경고: 인지 연산 장치의 부하율 92%. 대뇌 피질의 열화 현상 발생. 변성 방지를 위해 연산 속도를 제한하십시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뇌 용량을 초과하는 가상 연산의 대가로 뇌신경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진은 통증을 무시했다. 철저한 기술관료적 공리주의자였던 그에게 육체의 고통은 단지 해결해야 할 물리적 변수에 불과했다.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 주상전하의 어명으로 주조한 신형 조총이 사격 시험 한 번에 걸레짝처럼 찢어지다니!"

가마터 한가운데, 붉은 융복을 입은 관원이 폭발하여 반쪽이 난 무쇠 조총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조총의 총열은 마치 굳은 엿가락이 부러진 것처럼 처참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 주변에는 화약 연기에 검게 그을린 장인들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읍소하고 있었다.

"판관 나리!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분명 관청에서 내려준 철물과 숯의 비율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추어 주조하였사옵니다!"

"입을 닥쳐라! 철물이 부실하지 않았다면 어찌 총열이 이리 허망하게 터져 나간단 말이냐? 이놈들이 국록을 처먹으면서 사리사욕을 채우려 조총에 모래라도 섞은 것이 분명하다! 모조리 포도청으로 압송하여 주동자를 가려내라!"

군기시 판관의 서슬 퍼런 불효령에 야철 가마터는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장인들이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목이 매달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진은 차가운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총열 파편을 응시했다. 시야의 시뮬레이터가 파편의 단면을 스캔하며 미시적인 성분 분합률을 실시간으로 계산해 내기 시작했다.

[스캔 완료. 피사체: 조선 17세기 무쇠 총열.] [탄소(C) 함유량: 3.8% (과다, 취성 유발)] [황(S) 함유량: 0.18% (극도로 높음, 적열취성 유발)] [인(P) 함유량: 0.12% (상온 취성 유발)] [분석 결과: 제련 과정에서 황(S) 성분이 제거되지 않아 온도가 상승할 때 경계면이 공융점(Eutectic point)에 도달, 가스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정 입계(Grain boundary)가 파탄됨.]

'황(S)이다.'

이진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한반도에서 채굴되는 철광석은 태생적으로 황과 인의 함유량이 지나치게 높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최소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석회석 등의 용제를 투입하여 슬래그로 분리해 내야 하지만, 조선의 전통적인 흙가마와 무기력한 풍구(송풍기)로는 1,100도의 장벽조차 넘기 힘들었다. 결국 탄소와 황이 한데 엉겨 붙은 '똥철'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진은 휘청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그의 주위로 흩어진 쇠똥과 석탄재가 사각거리며 밟혔다.

그때, 가마터 구석에서 도면을 품에 안은 채 주저앉아 있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거친 삼베옷을 입고 얼굴에 검댕을 묻힌 여인, 서태린이었다. 그녀는 역모의 누명을 쓰고 관노로 몰락한 아비의 야철 기술 일지를 손에 쥔 채, 부르튼 손가락이 피가 나도록 도면을 움켜쥐고 있었다.

"아버님의 도면은 틀리지 않았어…… 분명 가마의 온도를 올리면 황을 몰아낼 수 있다고 하셨는데, 어째서 쇠가 이토록 썩어 문드러진단 말인가."

서태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검댕 묻은 뺨에 하얀 길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아비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이 지옥 같은 군기시 야철터에서 버텨왔으나, 눈앞의 기술적 한계 앞에 좌절하고 있었다.

이진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가마의 온도가 문제가 아니다."

서태린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피가 흘러내려 뺨이 붉게 물든 이진의 기괴한 몰골을 보고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이진의 눈동자는 광기에 젖은 듯하면서도, 소름 끼칠 정도로 이성적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온도를 올리려 아무리 장작과 탄을 쑤셔 넣어봤자 소용없다. 풍구에서 들어가는 바람의 압력이 새어 나가고 있으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풍구는 장정 넷이 매달려 쉴 새 없이 돌리고 있다!"

서태린이 쏘아붙였으나, 이진의 시선은 가마터 구석에 설치된 목제 송풍구로 향했다. 시뮬레이터가 송풍로 내부의 기류 흐름과 압력 손실을 복잡한 유체역학 방정식으로 환산하여 공중에 띄우고 있었다.

"바람을 밀어 넣는 도관의 이음새가 헐겁다. 점토로 대충 메운 틈새로 공급되는 공기의 삼분의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 게다가 노즐의 구경이 지나치게 넓어 가마 중심으로 갈수록 기압이 급격히 저하된다. 연소실 내부의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니, 온도가 1,100도 선에서 정체되는 것이다. 탄소가 연소되지 않고 철 마트릭스 내에 잔존하여 취성을 극대화하는 원인이지."

이진의 말은 거침없이 쏟아졌다. 현대의 야금학 용어와 조선의 용어가 묘하게 뒤섞인 설명이었지만, 서태린은 그의 말속에 담긴 무시무시한 정합성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대대로 야철을 업으로 삼아온 가문의 핏줄다운 직관이었다.

"너…… 너는 도대체 누구냐? 군기시의 잡역부 따위가 어찌 그런 도리를 안단 말이냐?"

서태린의 눈동자가 경악과 의혹으로 흔들렸다. 이진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머릿속으로 다음 단계의 연산을 준비했다.

이때 군기시 전령과 서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가죽 채찍을 휘두르며 장인들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비켜라! 이 천한 대장장이 놈들이 조정을 기망하고 전하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였으니, 당장 압송하여 주리를 틀 것이다!"

"나리!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한 번만 더 가마를 열게 해 주십시오!"

장인들의 처절한 비명 속에서, 하급 전령 하나가 이진과 서태린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쇠고랑이 들려 있었다.

"거기 서 있는 놈은 무엇이냐? 귀에서 피를 흘리는 걸 보니 역병에 걸린 놈이거나, 아니면 죄를 짓고 도망친 도망노비렷다! 당장 포박해라!"

전령이 이진의 덜미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이진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는 도망치거나 겁을 먹는 대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전령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군수 공장에서 다져진 그의 손길은 의외로 단단하고 억셌다.

"놓아라."

"이, 이 미친놈이 어디서 감히 관원에게 손을 대느냐! 이놈의 목을 당장—"

"네놈들이 들고 있는 조총의 철물 배합 상소문을 작성한 자가 누구냐."

이진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배제되어 있었지만, 기이할 정도로 엄숙하고 압도적인 힘이 실려 있었다.

"뭐, 뭐라고?"

"군기시에서 배분한 철광석과 석탄의 대장을 가져와라. 경국대전 병기조 제삼장을 보면, '군기시에서 제조하는 병기의 부실함이 원자재의 결함에 기인할 경우, 이를 검수하고 공급한 유사(有司)에게 먼저 책임을 묻는다'고 되어 있다. 또한 대명률 장률에 이르기를, 규격에 미달하는 동철을 납품하고 이를 묵인한 자는 장형 일백 대에 처하고 그 가산을 몰수한다 하였다."

이진은 전령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정교한 수치를 읊조렸다.

"현재 군기시에 납품된 함경도 및 평안도산 철광석의 황 농도는 삼푼(0.3%)을 초과한다. 이 정도의 불순물이 포함된 철을 정련하기 위해서는 백무(白炭) 오십 근당 석회석 오 근을 투입하여 환원 온도 천이백도를 유지해야 하거늘, 너희가 공급한 탄은 수분이 가득한 잡탄(雜炭)이며 석회석의 투입량은 아예 장부에 기록조차 되어 있지 않다. 장인들은 너희가 준 쓰레기 같은 원자재로 법전에 기록된 제조법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가마터의 소란이 일순간에 잦아들었다.

채찍을 휘두르던 서리들과 전령들이 멍하니 이진을 바라보았다. 천한 가마터의 잡부가 조정의 법전인 경국대전과 명나라의 법률인 대명률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읊조리며, 자신들의 비위를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군기시 하급 관료들은 이이첨의 수하 보부상들과 결탁하여 양질의 백탄을 사적으로 빼돌리고, 물에 젖은 저급 잡탄을 가마터에 공급하여 그 차액을 남겨왔다. 이진의 지적은 그들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관통한 것이었다.

"이…… 이놈이 유언비어로 조정을 무고하려 드는구나! 당장 요참에 처해야 할 놈이다!"

전령이 당황하여 칼자루를 쥐려 했으나,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기술적 지식이 전무하면서 오직 위세만 떨치던 하급 관료들은 이진이 제시하는 압도적인 제강 데이터와 법리적 논거 앞에 완전히 압도당해 있었다.

"해보아라."

이진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의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 끝에서 뚝 뚝 떨어졌다. 그 기괴하면서도 오만한 형상에 전령들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내가 이 가마터에서 죽는다면, 너희가 저지른 탄소 배합비 조작과 백탄 횡령의 전말이 담긴 상소문이 사헌부 대간들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사헌부의 칼날이 너희들의 목을 겨눌 때, 과연 너희 배후에 있는 대북의 실력자들이 너희 같은 피라미들을 지켜줄 것 같으냐?"

이진은 현대의 정교한 정치 역학을 17세기 조선의 당파 싸움에 대입하여 활용하고 있었다. 그의 차갑고 이성적인 계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장인들을 소모품으로 쓰려던 관료들이 오히려 자신들이 소모품으로 버려질 위기에 처했음을 직감하자, 가마터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서태린은 이진의 등 뒤에서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감정에 치우쳐 울부짖던 자신과 달리, 철저하게 냉혹한 논리와 지식만으로 관청의 위세를 단숨에 꺾어버리는 이 남자의 존재는 그녀에게 거대한 충격이었다.

바로 그때, 군기시 터의 가죽 장막이 걷히며 묵직한 가마가 들어섰다. 가마에서 내린 인물은 다름 아닌 군기시 판관, 이윤정이었다. 그는 이진의 서슬 퍼런 논박을 밖에서 모두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윤정의 눈빛은 독사처럼 차갑고 예리했다. 그는 이진의 앞으로 걸어와 그를 내려다보았다.

"네놈이 법전을 들먹이며 조정의 기강을 흔들려 드는구나. 하지만 네놈의 말이 사실이라 한들, 주상전하의 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다면 이 가마터의 모든 목숨이 날아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윤정이 냉소하며 포고령을 내렸다.

"나흘이다."

그의 손가락이 이진의 가슴을 가리켰다.

"나흘 뒤, 주상전하께서 직접 임석하시는 재시연이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황의 분합률인지 뭔지 하는 계수를 고쳐, 폭발하지 않는 조총의 총열을 만들어 내라. 만일 그때도 총열이 터진다면, 장부의 비위를 따지기도 전에 네놈의 목을 먼저 잘라 광화문 거리에 매달 것이다. 알겠느냐?"

이윤정의 서늘한 목소리가 가마터를 울렸다. 그것은 명백한 살인 예고이자, 빠져나갈 수 없는 외통수였다.

하지만 이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터가 다시 한번 푸른빛을 발하며 구동하기 시작했다.

[연산 시작: 4일 간의 가열 곡선 제어 및 슬래그 분리 공정 도출.] [필요 원자재: 석회석, 규사, 내화 점토.] [뇌 부하율 급증 위험 감지. 신경 세포 손상 가능성 존재.]

이진은 뺨에 흐르는 피를 무심히 닦아내며, 붉게 타오르는 가마의 심연을 응시했다. 생존을 위한 가혹한 연산이 그의 뇌 속에서 가열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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