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귀가 깨질 것 같아."

엘리엇 드 벨레로폰은 대기석 의자 깊숙이 등을 묻은 채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정확히는 목뼈가 툭 부러진 것처럼 고개를 옆으로 길게 늘어뜨린 자세였다.

사방에서 고막을 때려대는 마력의 진동에 관자놀이가 찌르르 울렸다. 헬리오스 황립 마법 아카데미의 영재 선발 시험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제국 각지에서 기어 올라온 자칭 천재라는 귀족 자제들이 저마다의 마력을 과시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화르륵, 하고 공중에서 거대한 화염 장미가 피어날 때마다 주변의 구경꾼들이 와아아, 하고 천박한 감탄사를 터뜨렸다.

"보아라! 내 마력이 측정석의 마나를 자극해 불꽃의 형상을 빚어냈다! 이것이 바로 백작가의 마력이다!"

붉은 머리의 남학생이 콧대를 하늘 높이 쳐들며 소리쳤다. 측정용 마나스톤이 요란한 구동음과 함께 웅웅거리며 붉은빛을 뿜어냈다. 사방으로 튀는 불똥과 매캐한 연기 탓에 눈이 시려왔다.

엘리엇은 느릿하게 눈꺼풀을 닫았다가 떴다. 눈을 깜빡이는 짧은 순간마저 에너지가 아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의 유일무이한 인생 목표는 명확했다. 하루에 딱 16시간만 이불속에 파묻혀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거리는 완벽한 은퇴 생활.

그 안락한 게으름을 방해하는 이 세상 모든 소음과 마나가 증오스러울 뿐이었다.

"다음 수험생, 엘리엇 드 벨레로폰. 앞으로 나오시오."

단상 위에서 심사를 맡은 늙은 마법사가 귀찮다는

듯이 서류를 툭툭 치며 엘리엇을 불렀다.

엘리엇은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딱 세 배쯤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그의 발걸음은 마치 중력의 지배를 남들보다 두 배는 무겁게 받는 것처럼 느릿하고 위태로웠다.

"저 비실비실한 녀석은 또 뭐야?"

"벨레로폰? 들어본 적 없는 가문인데. 몰락한 지방 귀족인가?"

주변의 수군거림이 귓가를 스쳤지만, 엘리엇의 뇌 주파수는 이미 '어떻게 해야 덜 움직이고 침대에 누울 수 있을까'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단상에 올라서자, 늙은 마법사는 코끝에 걸친 안경을 치켜올리며 엘리엇의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이보게, 수험생. 그 목에 걸린 건 뭔가? 마력 측정 중에 인공적인 아티팩트의 도움을 받는 건 부정행위일세."

엘리엇의 가느다란 목에는 시장통에서 단돈 3쿠퍼를 주고 산, 도금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조잡한 구리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마나 전도를 방해하는 최하급 구리 합금으로 만들어진, 마법사들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쓰레기였다.

엘리엇은 눈꺼풀을 반쯤 내린 채, 목소리를 아끼기 위해 아주 짧게 대답했다.

"안전장치입니다."

"안전장치?"

"이게 없으면…… 곤란해집니다."

대륙의 경제가 말이다.

엘리엇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켰다. 그의 비정상적인 권능인 '인과율 조율'은 마력을 쓰면 쓸수록 세상의 마나스톤 가치를 폭락시키는 무시무시한 부작용을 품고 있었다. 대마법 한 번에 제국 경제가 공황에 빠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이 싸구려 구리 목걸이로 흘러나오는 마력을 억지로 짓누르고, 오직 손가락 끝의 미세한 진동으로만 마법을 제어해야 했다.

늙은 마법사는 콧방귀를 뀌었다.

"허, 별 해괴한 핑계를 다 듣겠군. 좋을 대로 하게나. 어차피 그따위 장난감으로는 마나스톤의 측정을 방해할 수도 없을 테니까."

단상 중앙에 놓인 거대한 마나스톤이 푸른빛을 내뿜으며 웅웅거렸다. 직경 1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마석은 주입되는 마력의 양과 질을 수학적으로 연역하여 수치로 환산해 주는, 헬리오스 아카데미의 자랑거리였다.

'귀찮아.'

엘리엇은 마나스톤 앞에 서서 오른손을 아주 천천히 들어 올렸다. 팔을 들어 올리는 각도마저도 인과율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궤적이었다. 타인의 눈에는 그저 뼈가 없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는 기괴한 움직임으로 보였겠지만 말이다.

그는 검지손가락 끝을 마나스톤의 표면에 부드럽게 갖다 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미세한 인과의 실을 당겼다.

'정확히 0.001그램.'

그 이상의 마력은 과소비다. 엘리엇의 손끝에서 바늘 끝보다도 가느다란 마력의 독침이 뻗어 나갔다. 그 마력은 마나스톤의 표면을 마구잡이로 두들기는 대신, 마석 내부의 복잡한 마나 흐름이 교차하는 '절대적인 균열의 중심'을 정확하고 정교하게 찔렀다.

인과율의 조율이 시작되었다.

지이이잉—!

시끄럽게 진동하던 마나스톤이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던 소음마저도, 마치 소리의 인과가 꺾여 사라진 것처럼 기묘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어……?"

늙은 마법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마나스톤을 들여다보았다.

빛도, 불꽃도, 요란한 파열음도 없었다. 하지만 마나스톤의 가장 깊숙한 핵 속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고 순수한 백색의 점 하나가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단 0.001그램의 마력으로 마나스톤 전체의 흐름을 완벽하게 장악하여, 단 한 방울의 마나 소모도 없이 시스템을 '기동' 상태로 고정해 버린 것이다.

측정기 내부의 바늘이 미친 듯이 떨리더니, 이내 가장 완벽한 수치인 '극점(極點)'을 가리킨 채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이, 이게 무슨…… 수치가 왜 이래? 기계가 고장 났나?"

늙은 마법사가 당황해 양손으로 측정기를 두들겼지만, 바늘은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완벽한 지배. 마나스톤 자체가 엘리엇의 손가락 끝 아래에서 숨을 죽인 채 복종하고 있었다.

엘리엇은 손가락을 떼고 뒤를 돌았다. 단 3초 동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기분이었다. 얼른 기숙사 구석방으로 기어 들어가 폭신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단상을 내려가려 할 때였다.

"말도 안 돼……."

대기석 맨 앞줄, 화려한 백은색 로브를 입은 한 소녀가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실비아 라인하르트.

이번 기수의 독보적인 수석 입학 예정자이자, 마법 공식을 숨 쉬듯 해독해 내는 천재 중의 천재. 그녀는 지금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기현상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뺨을 타고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방금 그건…… 마법이 아니야.'

실비아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른 멍청한 귀족 놈들은 마나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불꽃놀이를 벌였다. 그것은 마력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날것의 힘을 배출하는 배설 행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방금 저 회색 머리의 소년이 보여준 것은 차원이 달랐다.

'구리 목걸이로 마력의 증폭을 원천 차단하고…… 오직 마석의 인과적 허점만을 찔러 단 0.001그램의 오차도 없이 지배했어.'

이것은 마법의 극의를 넘어선, 신의 영역에 닿은 '최소의 효율'이었다. 낭비되는 마력이 단 한 톨도 없었기에 아무런 소리도, 불꽃도 일지 않았던 것이다. 소음과 빛은 결국 제어되지 못한 마력의 잔해일 뿐이니까.

게다가 저 오만하고 냉혹한 표정. 세상 모든 지식을 통달한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지독하리만치 무미건조한 눈빛.

실비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경외심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손끝이 정체 모를 전율로 마비되는 것 같았다.

'이 아카데미에…… 진짜 괴물이 숨어 있었어.'

멍하니 걸어 나가는 엘리엇을 보며, 실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였다. 가문을 대표하는 천재라는 자존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저 존재의 털끝이라도 잡지 못한다면, 평생 마법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가 그녀를 지배했다.

타다닥, 하는 거친 발소리와 함께 실비아가 단상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엘리엇의 뒤를 쫓아, 망설임 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그의 낡은 옷자락을 양손으로 꽉 부여잡았다.

"당신의 냉정한 걸음 속에 감추어진 참된 인과를 배울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냉정한 걸음 속에 감추어진 참된 인과를 배울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정적이 시험장을 무겁게 짓눌렀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던 소리들이 일시에 딱 끊겼다.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마법 명가의 천재인 실비아 라인하르트가 이름 모를 남학생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려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실시간으로 상식이 파괴되는 현장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엘리엇은 그저 눈꺼풀을 무겁게 파르르 떨 뿐이었다.

'귀찮아.'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오직 그 한 가지였다.

엘리엇은 고개를 아주 느릿하게 숙여 제 옷자락을 꽉 쥔 실비아의 하얗게 질린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1초, 2초, 3초…… 길어질 때마다 실비아의 얇은 어깨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엘리엇의 뇌 주파수는 여전히 '저 손을 떼어내려면 몇 칼로리의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가'를 계산하느라 바빴지만, 실비아의 머릿속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폭주하는 중이었다.

'나를 시험하고 계셔.'

실비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무감각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자신의 영혼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 감히 위대한 진리의 도전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저울질하는 엄숙한 신의 시선. 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고 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놓아라."

마침내 엘리엇의 입술이 열렸다. 10초 만에 흘러나온 목소리는 물기 하나 없이 건조했고, 지독하리만치 차가웠다.

"앗……!"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 끝을 바르르 떨며 옷자락을 놓아주었다. 그 짧은 거절의 한마디마저도 그녀에게는 고고한 은둔자가 내리는 묵직한 경고로 들렸다.

하지만 엘리엇이 한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단상 뒤편에서 날카로운 구두 굽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울리며 다가왔다.

"거기 멈추십시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금발에 흐트러짐 없는 푸른색 학생회 제복. 팔뚝에 둘러진 선명한 황금색 완장이 그의 신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절대적 질서를 수호하는 학생회 소속의 집행관이었다.

집행관은 얼어붙은 마나스톤과 엘리엇의 목에 걸린 싸구려 구리 목걸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마나스톤의 수치가 '극점'에 고정된 채 오작동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금속체를 착용하고 시험에 임하다니. 이는 헬리오스 아카데미의 공정한 규칙을 위배하는 부정행위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부정행위라니! 방금 그건 완벽한 극의의—!"

실비아가 벌떡 일어나 반박하려 했으나, 집행관은 냉정하게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의 시선은 오롯이 엘리엇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벨레로폰 수험생. 즉시 그 목걸이를 해제하고, 마나스톤의 정밀 검증을 위해 우리와 함께 학생회실로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엘리엇의 왼쪽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했다.

'동행? 학생회실?'

그곳까지 걸어가려면 최소한 본관 계단을 세 층이나 올라가야 했다. 게다가 이 귀찮은 소동에 휘말려 조사를 받다 보면 오늘 치 수면 시간 16시간 중 절반이 날아갈 것이 분명했다.

결정적으로, 이 싸구려 구리 목걸이를 풀라는 요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걸 풀면 내 마력 과민증 때문에 주변 마나가 폭주해.'

그렇게 되면 아카데미 지하의 마나 노드가 자극받아 제국 동부 광산의 마나스톤 가치가 순식간에 폭락하게 된다. 안 그래도 한산한 은퇴 생활을 계획 중인데, 제국 경제를 파탄 낸 주범으로 수배당해 쫓기는 신세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가장 빠르고, 가장 힘을 안 들이고, 가장 조용하게 이 귀찮은 인간들을 치워버려야 했다.

엘리엇은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가볍게 툭, 튕겼다.

손가락 끝이 허공을 가르는 찰나의 순간, 그의 인과율 조율 권능이 작동했다. 그는 마력을 방출하는 대신, 집행관이 서 있는 대리석 바닥 타일의 마찰 계수를 '0'으로 조율했다. 단 0.0001초 동안의 미세한 마찰력 소멸.

"어, 윽?!"

순간, 다가오던 집행관의 구두 굽이 허공을 갈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얼음판 위에 발을 디딘 것처럼, 그는 아주 볼품없는 자세로 미끄러지며 바닥에 대자로 고꾸라졌다.

쿠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먼지가 풀풀 날렸다.

"……?"

주변의 수험생들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마법적 파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완벽하게 잘 관리된 시험장 바닥에서, 학생회 집행관이 혼자 발이 미끄러져 보기 좋게 자빠진 황당한 해프닝으로 보였다.

하지만 단상 위 테라스,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한 여자의 눈동자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황실 마법 성의 일급 정보원이자 아카데미 감시관인 이벨린이었다.

그녀는 난간을 움켜쥔 손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손톱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방금…… 마력을 전혀 쓰지 않았어. 아니, 이 세상의 물리 법칙 자체를 아주 잠깐 비틀어 버린 건가?'

이벨린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집행관이 넘어지는 찰나의 각도, 무게 중심의 붕괴 속도, 그리고 엘리엇의 손가락 스냅 타이밍이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그것은 우연을 가장한, 신화적인 수준의 공간 지배력 사격이었다.

'저 남자는…… 단순한 위장 입학생이 아니야. 황실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 위험인물이다.'

이벨린은 떨리는 손으로 품속의 통신 마석을 움켜쥐었다.

한편, 걸림돌을 치워버린 엘리엇은 미련 없이 출구로 향해 타벅타벅 걸음을 옮겼다. 이제야 드디어 침대에 누울 수 있다는 안도감이 몰려오려는 찰나였다.

지이이이잉—!

갑자기 시험장 천장에 설치된 고대 확성 마법진이 무겁게 반응하며, 장내를 압도하는 차가운 기계음 같은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수학적 허용 범위를 벗어난 이상 변수가 감지되었다. 시험장 전원, 그 자리에 대기하라.]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파동의 마력이 시험장 사방의 출입문을 단단히 봉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자 극단적 질서 벽을 지닌 천재, 아드리안 본 발렌타인의 마력이었다. 엘리엇이 일으킨 사소한 무질서가 마침내 아카데미의 거대한 시스템 감시망을 건드린 것이다.

닫혀버린 문을 바라보는 엘리엇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마침내 짙은 피로가 한 겹 더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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