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캐비닛 내부의 공기는 탁하고 차갑다. 비좁은 철제 틈새로 비치던 지하실의 붉은 조명등이 흔들린다. 코끝을 찌르는 것은 녹슨 철판의 냄새와, 방금 전 지하실에서부터 옷가지에 묻혀 온 썩은 소독약취다.

뚜벅, 뚜벅.

시멘트 바닥을 규칙적으로 울리는 구두굽 소리가 다가온다. 당신은 숨을 멈춘다. 폐포가 오그라들고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소리가 좁은 캐비닛 내부에 공명한다. 철판에 뚫린 얇은 환기 슬릿 너머로 검은 구두 앞코가 멈춰 선다.

사내가 고개를 숙인다. 얇은 무테안경 너머의 회색 눈동자가 슬릿의 틈새와 정확히 마주친다. 안경알이 먼지 낀 불빛을 받아 하얗게 번쩍인다. 사내의 오른손에 들린 두꺼운 메스가 가볍게 흔들린다. 지하실 수술대 위에서 보았던 의료용 칼날이다.

"숨바꼭질은 기록에 방해만 됩니다." 사내는 품에서 소형 녹음기를 꺼내 버튼을 누르며 건조하게 말한다. "피실험자 47번, 자극에 대한 비정상적 도피 반응 확인."

사내의 긴 손가락이 캐비닛 손잡이를 움켜쥔다.

*깡!*

날카로운 철제 마찰음과 함께 문이 단숨에 열린다. 쏟아져 들어오는 붉은 빛 속에서 사내의 무표정한 얼굴이 확대된다. 비명은 목구멍 안쪽에서 굳어 번지지 못한다. 사내의 오른손이 허공을 가르고, 메스의 칼날이 당신의 흉골 정중앙을 깊숙이 파고든다.

차가운 금속이 살을 가르고 뼈를 긁는 물리적인 감각이 생생하게 뇌리를 자극한다. 폐가 찢기며 더운 피가 목구멍으로 역류한다. 사내는 칼자루를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사망 시각, 03시 14분. 뇌 기능 정지 확인 중." 사내는 칼끝을 지그시 비틀어 누르며 혼잣말을 뱉는다.

시야가 서서히 붉게 물든다. 사내의 흰 가운 깃에 달린 은색 배지, 즉 지팡이에 뱀이 감겨 있는 문양이 시야의 마지막 한 고리를 채운다. 전신을 집어삼키는 냉기가 손끝 발끝에서부터 차오른다. 심장의 박동이 완전히 멈춘다.

그리고 암전.

"하악!"

당신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천장이다. 가로세로로 갈라진 얼룩덜룩한 아침의 석고 천장이 눈앞에 있다. 찢겼던 가슴팍에 급히 손을 얹어보지만 피는 없다. 오직 등 뒤를 축축하게 적신 싸늘한 식은땀만이 존재할 뿐이다.

지하실의 피실험자 명단, 그리고 당신을 사냥하던 사내의 메스. 가슴에 박혔던 잔혹한 이물감을 그대로 품은 채, 당신의 싸늘한 첫 아침이 다시 시작된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