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폐건물 지하 3층. 드러난 철근 사이로 백색 소음이 스며든다. 콘크리트 바닥에는 굵은 전선 수십 가닥이 뱀처럼 엉켜 메인 단말기로 이어진다. 방 한가운데에 놓인 제어 콘솔이 붉은 경고등을 품고 기계음을 뱉어낸다.

화면을 채운 텍스트가 안구에 박힌다.

[가상 자격 시험: 프로젝트 레테(Lethe)] [피실험자: 강민우] [상태: 지속적 혼수 (임상 소거율 97.4%)] [루프 횟수: 84]

그간 당신을 찢어발겼던 칼날, 가슴을 짓누르던 질식의 감각, 막다른 골목의 비명은 모두 전기 신호였다. 뇌에 직접 주입되는 모의 연출. 현실의 당신은 링거 바늘을 꽂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식물인간에 불과했다.

"진실에 도달했군."

모니터 옆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세어 나온다. 직전 통화한 주치의이자, 매일 밤 당신의 목을 졸랐던 살인마의 음색이다. 그가 계단 벽면을 짚으며 내려오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린다.

"그 장치는 네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자아를 주입하는 가상 노선이다. 자네가 스스로 연결을 끊지 못하도록 매번 공포라는 방어기제를 자극했을 뿐이지."

사내의 그림자가 지하실 입구 문틀에 걸친다. 구두 굽이 물기 어린 에폭시 바닥을 문지르는 마찰음이 서서히 가까워진다. 그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가 철제 프레임을 긁으며 찢어지는 소음을 낸다.

모니터 우측 하단에 노란색 스티커로 붙은 수동 조작 매뉴얼이 눈에 들어온다. 먼지에 가려진 글씨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린다.

* 경고: 과부하 제어(Overload) 실행 시 메인 서버 파괴 가능. 단, 잔류 전하 역류 방지 필터 미작동 시 피실험자 뇌 세포 영구 손상 위험 존재. * 경고: 주 배전 케이블 분리 시 기기 즉시 종료. 단, 예비 동력 장치(UPS)가 3초 내 작동 시 이전 루프 지점으로 시스템 즉각 복구.

사내가 문턱을 넘어선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눈을 타고 뺨으로 떨어진다. 역광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든 쇠파이프 끝이 바닥을 치는 속도는 일정하다.

"이 시뮬레이터는 현실의 생명 유지 장치와 동조되어 있다. 여기서 죽으면 진짜 심장도 멈춘다."

사내가 한 걸음 더 다가선다. 살기 어린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인다.

남은 시간은 5초. 제어 콘솔 스크린 바로 밑에는 시스템 전체를 과부하시킬 수 있는 적색 자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옆으로는 본체 하부와 연결된 굵은 주전원 케이블 다발이 노출되어 있다. 살인마의 쇠파이프가 공기를 가르며 당신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직전이다.

당신의 두 손이 기계 장치를 향해 뻗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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