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아스팔트를 때리는 빗소리가 고막을 찢는다. 허파가 타들어 가는 감각이 기도를 타고 올라온다. 당신은 달린다. 골목길의 가로등은 깨진 지 오래다. 어둠 속에서 유일한 이정표는 빗방울에 반사되는 희미한 공장 네온사인 불빛뿐이다.

입을 벌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비릿한 탄소 냄새가 섞인 빗물이 밀려든다. 등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는 일정한 템포를 유지한다. 가깝다. 척추를 타고 내려오는 소름이 추격자의 거리를 실시간으로 가늠한다. 일정한 무게감의 군화 발자국 소리. 우비 자락이 빗방울을 튕겨내는 거친 마찰음이 젖은 공기를 가르고 고막에 들러붙는다. 범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막다른 길로 사냥감을 몰아넣는 정육점 주인의 침착함이다.

젖은 운동화가 물웅덩이를 밟아 콘크리트 벽에 흙탕물을 튕기며 당신은 모퉁이를 돌아선다.

벽이다. 거대한 시멘트 옹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진흙과 쓰레기 봉투로 가득한 막다른 골목이다.

왼편에는 낡은 구급차가 한 대 서 있다. 흰색 도색이 벗겨진 사설 구급차다. 차체 측면의 녹색 십자가 마크는 붉은 스프레이로 덧칠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시동은 꺼져 있고, 흐르는 빗물에 차갑게 식어 가고 있다. 뒷문 유리에 붙은 짙은 틴팅 필름 너머로 미세하게 깜빡이는 붉은색 대기 전원 불빛이 번뜩인다. 번호판은 고의로 예리한 도구로 긁어내 번호를 전혀 판독할 수 없다.

오른편에는 철거를 앞둔 5층짜리 무명 폐건물이 유령처럼 서 있다. 깨진 유리창들이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입구를 지킨다. 잡초가 무성한 콘크리트 계단 바닥에는 공사 자재로 쓰이던 녹슨 철강과 굵은 쇠파이프들이 뒹굴고 있다.

발소리가 모퉁이 바로 뒤에서 멈춘다.

검은 우비의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골목 입구를 가로막는다. 흘러내리는 빗물 사이로 우비 후드 아래 가려진 차가운 안광이 빛난다. 그의 오른손에는 시커먼 녹이 슨 회칼이 쥐어져 있다. 칼날을 타고 내린 빗방울이 시멘트 바닥으로 뚝, 뚝 떨어진다.

"기억을 잃어도, 도망치는 성질은 그대로군."

사내가 우비 후드 아래로 낮게 읊조리며 칼날에 묻은 빗물을 가볍게 털어낸다.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다. 그는 장화를 징검다리 밟듯 내딛으며 좁은 골목을 압박해 온다.

남은 거리는 이십 미터.

구급차의 운전석 손잡이가 빗물에 젖어 미끄럽게 빛난다. 저 안에 침입해 시동을 걸 수만 있다면 평지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눈길이 어두운 폐건물 입구로 향한다.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바닥에 떨어진 쇠파이프라도 손에 쥔다면, 막다른 곳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최후의 반격을 가할 수 있다.

사내의 손에 든 칼날이 빗속에서 번뜩인다. 당신의 심장이 갈림길 위에서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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