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도어락의 전자음이 멈춘다. 문밖의 그림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기괴한 대치 상황을 깨뜨린 것은 거실 탁자 위에서 진동하는 구형 수화기다. 당신은 문을 응시한 채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댄다.

"여보세요." 당신이 목소리를 낮춘다. 다른 손으로는 바지 주머니 속, 지하실 열쇠의 각진 모서리를 매만진다.

"나일세, 강 박사." 수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은 바지락 조갯껍데기가 부딪히듯 건조하고 매끄럽다. "오늘 아침 약은 제때 챙겨 먹었나?"

그의 목소리는 신뢰감을 주기 위해 고안된 것처럼 정중하다. 하지만 당신은 주머니 속 일기장에 적힌 잉크 얼룩을 떠올린다. '그를 믿지 말 것.'

"아직 먹지 않았습니다. 처방전 약 이름들이 생소해서." 당신은 어두운 거실 구석으로 몸을 숨기며 답한다.

"불안 증세를 완화하는 약물일 뿐이네. 자네 기억을 되살리려면 전두엽의 손상을 막아야 해." 수화기 저편에서 규칙적인 마찰음이 들린다. *탁, 탁, 탁.* 그가 만년필 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수신기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진다.

순간, 척수 깊은 곳에서 얼음 송곳이 박히는 듯한 전율이 인다.

매일 밤의 마지막 장면. 온몸의 신경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 시야가 붉게 물들 때마다 들려오던 그 목소리. 목덜미에 닿던 축축한 입김과 함께 뇌리에 박혔던 마지막 한마디.

'착하지, 이제 다시 잠들 시간이야.'

낮은 중저음, 조사가 끝날 때마다 미세하게 올라가는 억양, 그리고 단어 사이의 아주 짧은 지체 현상까지. 수화기 너머의 주치의와 당신을 난도질하던 살인마의 목소리는 완벽하게 겹친다. 구원자를 자처하던 남자가 바로 당신을 가두고 파괴하는 설계자다.

"여보세요? 왜 대답이 없나?" 강 박사가 다그치듯 묻는다. 그의 호흡이 미세하게 가빠진다.

그의 배경음 사이로 웅웅거리는 모터 마찰음이 섞여 든다. 일기장에 적혀 있던 '지하 실험실의 특수 여과기' 소음이다. 머릿속 장기판의 말들이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간다. 남자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어쩌면 문밖의 그림자 역시 그의 통제를 받는 수하일지도 모른다.

숨을 죽인 채, 당신은 수화기를 쥔 손가락에 힘을 준다. 분노가 혈관을 따라 차갑게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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