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 열쇠가 자물쇠 뭉치 안에서 둔탁한 마찰음을 낸다. 실린더가 돌아가고 문이 열린다. 계단 아래서 불어오는 공기는 차갑고 습하다. 코를 찌르는 것은 포르말린과 독한 소독제가 섞인 냄새다. 당신은 계단을 내려간다. 발걸음마다 나무 디딤판이 삐걱거리며 신음한다.
지하실 바닥은 회색 콘크리트다. 중앙에는 두꺼운 가죽 끈이 달린 금속제 수술대가 놓여 있다. 그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무영등이 꺼진 채 매달려 있다. 수술대 옆, 마취 장비와 산소통 사이에서 모니터 하나가 퍼런 광을 뿜어낸다.
모니터 화면으로 다가간다. 녹색 커서가 깜빡이는 화면 중앙에 붉은색 글자가 가득 차 있다.
[피실험자: 한이준]
그 아래로 날짜와 시간이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다.
[사망 및 정신 소거 기록] - 39차 시도: 경부 압박 질식사. 소거 완결. - 40차 시도: 둔기에 의한 두부 타격사. 소거 완결. - 41차 시도: 약물 과다 투여에 의한 심정지. 소거 완결.
마지막 줄의 커서가 깜빡이며 새로운 문장을 한 자 글자씩 뱉어낸다.
- 42차 시도: 진행 중.
소름이 돋기 전에 뇌가 계산을 시작한다. 일기장에 적혀 있던 약물 '아네스메틴'의 용도가 머리를 스친다. 그것은 치료제가 아니다. 기억을 지우고 루프를 유지하기 위한 통제 수단이다.
"내가 한이준이군." 당신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마른침을 삼킨다.
수술대 모퉁이에 묻은 피는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끈적한 유광을 띤다. 바닥의 배수구 쪽에는 물기가 가시지 않은 구두 굽 자국이 선명하다. 물결무늬가 새겨진 군용 부츠의 흔적이다. 누군가 방금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모니터 옆 테이블에는 두꺼운 가죽 바인더가 놓여 있다. 표지에는 '임상 실험 최종 보고서'라는 라벨이 붙어 있고, 그 위에 은색 만년필 한 자루가 놓여 있다. 만년필 클립에 새겨진 이니셜은 'S.H.'. 일기장에 등장하던 그 치료사의 이니셜이다.
그때,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린다.
*끼이익.*
지하실로 내려오는 목조 계단의 첫 번째 디딤판이 눌리는 소리다. 천장에 매달린 알전구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거기 있는 것 압니다."
계단 통로를 타고 건조한 목소리가 내려앉는다. 구두 굽이 목재를 규칙적으로 규칙적으로 짓누르는 소리가 호흡 소리와 함께 가라앉는다. 정적을 깨고 아래로 내려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