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발소리가 멈춘다. 얇은 철판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무거운 정적이 가라앉는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속눈썹에 맺혀 시야를 흐린다.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낼 수 없는 극도의 긴장 속에서, 현관 외시경에 천천히 눈을 밀착한다.

볼록렌즈가 왜곡해 보여주는 바깥의 풍경은 기괴하다. 비상등의 누런 불빛 아래, 검은 형체가 우뚝 서 있다. 흘러내리는 빗물로 번들거리는 우비. 깊게 눌러쓴 후드 탓에 이목구비는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움켜쥔 오른손의 물건은 명확히 드러난다. 길고 날카로운 손잡이 위로 식칼의 날이 푸르스름한 안개처럼 빛을 반사한다.

그가 왼손을 뻗는다. 도어락 패드를 가죽 장갑으로 덮더니 거침없이 번호를 내리누른다.

*띠리릭, 띡, 띡.*

망설임 없는 기계음이다. 그는 이 집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 네 자리의 번호 입력이 끝나자, 문 내부에서 모터가 돌아가는 구동음이 울린다. *찌이잉.*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걸쇠가 옆으로 밀려나는 금속성 마찰음이 뼈마디를 타고 머릿속까지 울려 퍼진다.

기억 속의 통증이 척수로부터 되살아난다. 날붙이가 가슴을 헤집고 들어오던 그 섬뜩한 촉감과 차가운 바닥에 고이던 생혈의 냄새.

바지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낸다. 액정 상단의 배터리 잔량 표시등이 붉은색으로 깜빡인다. 안테나 표시도 겨우 한 칸을 넘나들며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어두운 거실로 시선을 돌린다. 입구를 차단할 만한 크기의 참나무 식탁과 낡은 가죽 소파의 실루엣이 보인다. 저 무거운 가구들을 입구로 끌어다 문을 가로막는다면 잠시나마 시간을 벌 수 있다.

동시에 베란다 창문으로 거센 빗소리가 밀려든다. 열린 창문 틈새로 건물 외벽을 타고 내려가는 회색 가스관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녹이 슬어 있는 알루미늄 배관은 굵어 보이지만, 들이치는 비를 맞아 얼음처럼 미끄럽게 젖어 있다.

*철컥.*

마침내 잠금이 완전히 풀리고 문고리가 아래로 꺾인다. 1센티미터의 틈새가 벌어지며, 문밖의 비린내 섞인 찬 공기가 거실 안쪽으로 침투해 들어온다. 결정의 순간이 들이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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