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소리가 문 앞을 서성인다. 정지된 적막 속에서, 오직 등뼈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만이 생생한 감각을 일깨운다. 도망칠 곳도, 맞서 싸울 무기도 마땅치 않다. 당신의 시선이 방 한구석, 칠이 벗겨진 낡은 서랍장으로 향한다. 밑져야 본전이다. 당신은 소리 죽여 서랍장으로 다가간다.
두 번째 칸을 잡아당기자 뻑뻑한 마찰음과 함께 서랍이 열린다. 쏟아져 나온 먼지 구덩이 속, 얼룩진 우편물과 영수증 가루 사이에 이질적인 무게감이 손가락 끝바닥에 걸린다. 이중으로 덧대진 합판의 틈새. 손톱을 밀어 넣어 판을 뜯어내자,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두 개의 물건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는 둔탁한 쇳소리를 내는 무거운 무쇠 열쇠다. 손잡이 부분에 '지하(B1)'라는 글자가 조잡하게 음각되어 있다. 열쇠 표면을 덮은 붉고 끈적한 얼룩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동녹 냄새를 풍긴다. 피다. 그것도 지워지지 않을 만큼 오래된 흔적이다.
다른 하나는 표지가 뒤틀린 검은 가죽 일기장이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 누렇게 바랜 종이 냄새와 함께 거친 필체가 눈을 찌른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다." "치료사 한 박사. 그는 구원자가 아니다.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도살자다."
일기장은 뒤로 갈수록 글씨가 붕괴되어 있다. 마지막 장에는 붉은색 잉크, 혹은 피로 휘갈겨 쓴 약물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다. '클로자핀, 할로페리돌, 그리고 메토헥시탈.' 메토헥시탈 옆에는 '호흡 마비 유도, 치사량 초과'라는 분석적인 메모가 단단한 서체로 기록되어 있다. 이 메모를 적은 것은 치료사인가, 아니면 당신 자신인가.
그때, 가죽 일기장의 맨 뒷장에 적힌 날짜가 시선을 붙잡는다. '11월 14일 23:00. 그는 오늘 밤 나를 죽이러 올 것이다.' 당신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본다. 액정 속 날짜는 동일한 11월 14일. 하지만 시간은 오전 06:17을 가리키고 있다. 이 기록은 과거의 흔적인가, 아니면 다가올 미래의 예언인가. 일기장의 맨 아래쪽에는 비상 연락처가 적혀 있다. '한 박사 개인 회선.'
철컥. 현관문의 도어록이 해제되는 전자음이 정적을 깨뜨린다. 문고리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앉는다. 비명을 지르는 심장 박동을 억누르며, 당신의 손가락끝이 열쇠와 일기장 표면을 조여쥔다. 시간이 없다. 침입자가 문을 열기 전, 결정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