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끝이 굵은 구리 도선에 닿았다. 당신은 망설임 없이 터미널의 비상 차단 레버를 밑바닥까지 꺾었다. 이식된 칩이 비명을 지르며 뇌척수액을 달구기 시작한 것은 그다음 순간이었다.
키보드 자판 너머로 백색 소음이 폭발했다. 귀가 먹먹해지는 고주파 음이 고막을 뚫고 뇌를 직접 타격했다. 시야 전체가 날카로운 가로선으로 찢어졌다. 폭우가 쏟아지던 골목도, 붉게 타오르던 제어 콘솔의 발광다이오드 조명도 격자무늬의 픽셀로 분해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물리 법칙이 사라진 공간에서 당신의 몸은 아래가 아닌, 물리적 실체가 없는 사방의 회색 공백으로 추락했다.
"경고. 시스템 커널 영역 침범. 메모리 전하 방전 시작."
인공적인 기계음이 머릿속에서 직접 울렸다. 목소리의 진원지를 찾으려 고개를 돌렸으나 목뼈의 감각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인지 능력이 단계적으로 정지했다. 시각 신호가 먼저 검게 흐려졌고, 손끝에 남았던 알루미늄 케이스의 차가운 촉감이 연기처럼 증발했다. 뇌로 흐르던 전기적 자극이 무질서하게 엉키면서 기억의 회로마저 완전히 오작동을 일으켰다.
당신의 진짜 이름, 빗속에서 당신을 쫓던 살인마의 무표정한 얼굴, 빗물 냄새가 나던 현실의 거리.
그 모든 인과관계가 무작위로 뒤섞여 회색 노이즈 스크린 위를 뒹굴었다. 그것들은 가상 시뮬레이션의 가비지(Garbage) 데이터 더미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었다. 자가 복구 모듈이 작동하는 기계음이 머리 저편에서 울렸으나, 그것은 파괴된 자아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에러가 발생한 섹터를 격리하고 영구 결손 처리하는 냉정한 시스템의 청소 작업에 불과했다.
붕괴하는 시스템의 최말단에서 붉은 문자열이 마지막으로 번쩍였다.
[프로젝트 '메두사' - 피실험자 고유 데이터 유실률 100%. 가상 연결망 영구 폐쇄.]
그것이 당신이 인지한 마지막 문자였다. 현실의 실험실에서 당신의 육체를 관리하던 자들의 정체도, 그리고 당신이 이 지옥 같은 루프에서 벗어나 되찾고자 했던 진짜 삶도 이제는 물리적 하드디스크의 미세한 스크래치 속에 파묻혔다. 루프는 마침내 정지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이 아닌, 존재의 영구한 소멸이었다.
감각이 완전히 단절되기 직전, 깨진 데이터 흐름의 틈새로 하나의 코드가 잠시 스쳐 지나갔다.
[현실 제어 호스트 물리 주소: 서울 강남구 도곡동 402-1]
하지만 그 좌표를 붙잡아 둘 뇌세포는 이미 새하얗게 불타버린 뒤였다. 암전된 화면 너머, 무감각한 디지털의 정적만이 완성되었다. 당신이라는 기록은 단 한 줄의 치명적인 에러 코드로 환원된 채, 차가운 서버의 심연 속으로 영원히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