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콘솔의 전압 수치가 임속치를 돌파한다. 냉각 장치가 정지하자 중앙 처리 장치에서 메케한 타르 냄새가 솟구친다. 초당 수천 번씩 가상의 뇌세포를 자극하던 주파수가 뚝 끊긴다. 붉은 액정이 강렬한 백색 광선으로 비틀리며 시야를 빈틈없이 삼킨다. 고막을 찢던 이명이 한순간에 소멸한다.

감각의 진공 상태를 뚫고, 기계적인 마찰음이 고막을 두드린다. "쉬익, 훅. 쉬익, 훅." 인공호흡기가 허파 깊은 곳으로 가가스런 공기를 강제로 불어넣는다. 코와 목구멍을 관통한 실리콘 튜브가 턱관절을 뻐근하게 짓누른다. 감겨 있던 눈꺼풀을 밀어 올린다. 격자 모양의 형광등 등기구와 천장의 하얀 텍스처 타일이 흐릿한 시야 속에서 서서히 초점을 잡는다.

사방에서 진한 소독약 냄새가 진동한다. 벽면에 걸린 디지털시계의 숫자는 오전 3시 14분. 날짜는 10월 14일이다. 허상의 고리 속에서 매일 밤 반복되던 피비린내 나는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이 차가운 현실이다.

왼쪽 손목에 연결된 식염수 수액 팩에는 '헤르메스 제약 임상연구팀'이라는 푸른색 데칼이 붙어 있다. 당신을 이 기계 장치에 가두고 뇌를 난도질했던 거대 조직의 실체다.

팔을 들어 올린다. 오랜 침묵으로 굳어 있던 관절 마디마디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른다. 테이프로 고정된 링거 바늘을 오른손으로 낚아채 뽑아낸다. 혈관에서 솟구친 피 한 방울이 침대 시트 위로 낙하해 붉은 점을 남긴다. 고통을 느끼는 감각 기관조차 냉정하게 작동한다.

"의식을 회복했군." 목소리가 병실 문 옆에서 들린다. 모니터링 장비를 점검하던 흰 가운의 남자가 차트를 내려놓으며 안경테를 밀어 올린다. 그의 가슴팍에 달린 플라스틱 명찰에는 '수석연구원 정인우'라는 이름이 박혀 있다. 가상 루프 속에서 무수히 당신의 목을 조르고 심장을 찔렀던 바로 그 살인마의 낯짝이다.

"시뮬레이션의 부작용은 협심증 유발 외엔 없을 텐데. 기억의 잔존 여부는 어떠한가?" 남자가 볼펜 끝을 소리 내어 딸깍거린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가상 공간에서 축적된 당신의 살기가 그에게 전달된 탓이다.

당신은 물리적인 힘을 쥐어짜 침대 가장자리에 발을 디딘다. 타일 바닥의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척수까지 일직선으로 솟구친다. 그 소름 끼치는 감각이야말로 진정한 생존의 증거다.

"없어." 당신은 침을 삼켜 기도에 엉겨 붙은 핏덩이를 삼킨다.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거칠다. "내가 그 안에서 몇 번을 죽었는지, 그리고 너희가 무엇을 숨기려 했는지 전부 기억하니까."

당신은 수납장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응시한다. 피폐해진 안색 아래로, 복수만을 위해 벼려진 칼날 같은 안광이 형형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남자의 시선이 문가에 위치한 비상벨로 흘러간다. 그의 근육 움직임과 이동 궤적이 뇌세포 안에서 실시간으로 계산된다. 수백 번의 루프를 돌며 뼛속까지 새겨 넣은 방어 기제와 공격 본능은 가상의 껍데기를 깨고 현실의 육체로 완전히 전이되어 있다.

이제 사냥꾼과 사냥감의 위치가 뒤바뀐다. 당신은 응급 카트 위에 놓인 메스를 손에 쥔다. 손바닥에 닿는 금속의 서늘함이 잃어버렸던 영혼을 깨운다. 이 지독한 연극을 설계한 배후들을 찾아 나서기 위한, 가차 없고 합리적인 복수의 서막이다.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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