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틱, 디디딕-.

고요한 공방 안에서 기괴한 금속성 마찰음이 무겁게 울렸다. 힐데의 소맷자락 안쪽, 보이지 않는 주머니 속에서 황실 수색대의 ‘은빛 마력 추적 나침반’이 비명을 지르듯 회전하고 있었다.

레티샤는 주머니 속 은빛 펜던트의 모서리를 손끝으로 꾹 누른 채, 입꼬리를 부드럽게 끌어올렸다. 손끝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그녀의 이성적인 정신을 한층 더 투명하게 깨웠다.

힐데의 굳어진 미소 위로 팽팽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갈색 눈동자 속에 스치고 지나간 것은 명백한 경악이었다. 하지만 국경 지대를 주름잡는 거상답게, 그녀는 이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소매를 정돈했다. 나침반의 회전음이 자취를 감추었다.

"어머나. 가벼운 미끼를 던졌을 뿐인데, 낚싯바늘이 꽤 매섭게 돌아오는군요."

힐데가 탁자 위의 황금 주머니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 깊은 안개 숲에서, 제국 최고의 연금술사들도 울고 갈 정화 디저트를 굽는 소녀라니. 게다가 황실의 고유한 마력 반응을 이토록 정교하게 다룰 줄 아는 재주까지 가졌다니 말이에요. 뒤편에 거대한 연금술 학파나, 혹은…… 제국을 뒤흔들려는 거대한 반역 세력이라도 숨겨두신 건가요?"

질문은 나긋나긋했으나 그 끝에는 뼛속을 파고드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교묘하게 배후를 캐물으며 주도권을 쥐려는 수작이었다.

그때, 힐데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낡은 리넨 앞치마를 두르고 있으나, 차마 숨겨지지 않는 고고한 기품을 풍기는 사내. 디트리히가 찻잔이 놓인 쟁반을 든 채 다가왔다. 그의 은빛 머리카락이 공방의 은은한 등불 아래에서 차갑게 부서졌다. 디트리히의 눈동자는 숲속의 깊은 연못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무거운 손길로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달그락, 찻잔과 받침이 맞닿는 소리가 유난히 시리게 울렸다.

"손님. 주문하신 차가 나왔습니다."

디트리히의 목소리는 낮고 낮아서, 마치 경고의 울림 같았다. 주인의 뒤를 지키는 사나운 수호수처럼, 그의 시선이 힐데의 목덜미를 꿰뚫을 듯 고정되었다.

힐데는 찻잔을 내려놓는 디트리히의 고운 손과, 그의 앞치마에 묻은 밀가루 얼룩을 번갈아 보았다. 상단의 우두머리로서 수많은 인간을 겪어본 그녀의 눈에 이 기묘한 부조화가 놓칠 리 없었다. 제국의 황자였던 이가 시골 공방에서 서빙을 하고 있다니. 힐데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레티샤는 가만히 숨을 고르며 마음속으로 가계부를 호출했다.

'스위트 가계부, 기동.'

반투명한 황금빛 장부가 오직 레티샤의 시야 속에서만 스르륵 펼쳐졌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필요 없었다. 오직 숫자가 말해주는 가장 차가운 진실만이 필요할 뿐.

[대상: 힐데 (위장명: 힐데란드 카터)] [본래 신분: 국경 지대 정보상 겸 밀거래 상단주] [신체 상태: 만성 역류성 위식도염 및 극심한 영양 불균형. 마력 과부하로 인한 위장 신경 마비 증세 동반.] [재정 및 비밀 상태: 최근 황실 밀지 수령 과정에서 제크 가문으로부터 받은 포상금 중 '30,000골드'를 상단 고유 자금에서 누락 및 횡령한 정황 포착. 위조된 제국 상단 연합 통행증(일련번호: 994-A) 보유 중.]

장부의 글씨들을 훑어내리는 레티샤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가계부의 스캔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관자놀이가 찌릿하게 아려왔고, 온정의 에너지가 빠져나가며 심장이 조금 서늘해졌지만, 이 정도 대가는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었다.

레티샤는 카운터 아래에서 빳빳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디트리히가 놓아둔 찻잔 옆으로 조용히 슬라이드해 밀어놓았다.

"차에 곁들이기 좋은 오늘의 특별 장부랍니다, 힐데란드 상단주님."

힐데의 시선이 종이 위로 향했다.

종이에는 힐데가 사용하는 위조 통행증의 일련번호와, 그녀가 상단 연합 몰래 뒤로 빼돌린 30,000골드의 정확한 세탁 경로가 날짜와 시간 단위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것은 제국의 정보기관조차 알아낼 수 없는, 오직 시스템 가계부만이 긁어모을 수 있는 절대적인 진실의 기록이었다.

힐데의 갈색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찻잔을 잡으려던 그녀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공방의 비밀을 캐려 하시기 전에, 본인의 비밀 장부부터 단단히 묶어두셔야 했을 텐데요."

레티샤가 생긋 웃으며 찻잔을 손으로 감쌌다.

"상단 연합에서 이 정산 모순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황실에서 당신이 포상금을 빼돌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과연 어느 쪽이 먼저 당신의 목을 겨누게 될까요?"

레티샤는 더 이상 말을 얹지 않았다. 대신 갓 우려낸 라즈베리 로즈힙 티를 우아하게 한 모금 머금었다.

투명한 유리잔 속에서 새콤한 야생 라즈베리의 붉은 수색이 부드럽게 일렁였다. 코끝을 탁 쏘는 싱그러운 과육의 신선한 향이 번졌고, 뒤이어 혀끝에 사르르 감기는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장미 향이 공방의 무거운 공기를 몽글몽글하게 감싸 안았다.

함께 곁들여진 코코넛 사브레 쿠키에서는 고소하게 구워진 버터의 진한 풍미가 뿜어져 나왔다. 하얗게 씹히는 코코넛 슬라이스의 바삭한 촉감이 혀끝에서 은은한 단맛으로 녹아내렸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티타임의 외양을 한, 지독한 침묵의 고문이었다.

일 초, 이 초. 째깍거리는 벽시계 소리만이 공방의 정적을 갈랐다.

디트리히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태산 같은 압박감으로 힐데의 등 뒤를 호위하듯 서 있었다. 구석진 테이블 아래에서는 레온이 고사리손으로 행주를 꼭 쥔 채, 동그랗게 뜬 눈으로 눈치를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누나아, 레오니가 유기 탁자 빤짝빤짝하게 따까써요……."

그 사랑스러운 웅얼거림조차 지금 이 순간만큼은 힐데에게 숨 막히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5분이 지나고, 마침내 10분에 다다랐을 때.

힐데의 이마에서 투명한 땀방울이 흘러내려 찻잔 속으로 톡 떨어졌다. 그녀는 자신이 완벽하게 패배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눈앞의 가녀린 소녀는 단순한 제빵사가 아니었다. 자신의 목줄을 쥔 채 숨통을 조여오는, 가장 잔혹하고 영민한 영수(領袖)였다.

힐데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뒤로 기댔다.

"……제가 졌군요, 점장님."

"현명한 판단이세요."

레티샤는 기다렸다는 듯 품 안에서 미리 작성해 둔 가죽 표지의 계약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제국 전역 마수 정화 디저트 독점 유통권. 그리고 이 낙원 공방의 안전을 위한 외부 보호선 구축 및 상단 정보 제공. 이 두 가지를 약속해 주신다면, 이 부끄러운 장부 조각은 지금 이 자리에서 향기로운 불꽃의 먹이로 주지요."

힐데는 계약서의 내용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가혹한 조건이었으나, 그녀의 목숨과 상단의 명예에 비하면 지불할 만한 대가였다. 게다가 정화 디저트의 독점 유통권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막대한 부를 약속하는 황금알이었다.

"좋습니다. 거래하지요."

힐데는 품에서 인장 반지를 꺼내 계약서 하단에 붉은 밀랍을 떨어뜨리고 낙인을 찍었다. 서명이 완료되는 순간, 레티샤는 촛불 위로 비밀 장부 종이를 가져다 대었다. 붉은 불꽃이 종이를 집어삼키며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버렸다.

계약이 성사되자, 힐데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가시고 특유의 능글맞은 상인의 미소가 돌아왔다. 그녀는 진심으로 감탄한 듯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과연, 제국 최고의 정보원인 저를 이토록 완벽하게 밟아 누른 분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파트너로서 경의를 표하지요."

힐데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소매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탁자 위에 툭,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그것은 은빛 마력이 흐려진 채, 붉은 핏자국이 거칠게 묻어 있는 정교한 금속 장치였다. 황실의 심복인 제크 가문 특유의 사자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은빛 마력 관측 나침반이었다.

디트리히의 눈동자가 그 순간 날카롭게 좁혀졌다.

힐데가 상체를 조금 앞으로 기울이며, 속삭이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명은 끝났으니, 이제 파트너로서 진짜 유용한 정보를 드리지요. 이건 제가 이 안개 숲 입구에서 사살한 황실 척후병의 물건입니다. 황실 기사단이 이 사흘 안으로 이 오두막 결계 앞까지 당도할 예정입니다. 그들의 나침반은 이미 아주 정확하게, 이 오두막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더군요."

공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탁자 위에 놓인, 피가 눌어붙은 나침반은 마치 살아 있는 괴물의 눈동자처럼 기괴한 은빛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디트리히의 커다란 손이 검의 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손등 위로 굵은 힘줄이 돋아나며,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공방의 따스한 온기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제크 가문…… 황후의 충직한 사냥개들이 결국 국경을 넘었군."

그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깊은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그 살벌한 기세에 놀란 레온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디트리히의 바지자락을 꼭 붙잡으며 울먹였다.

"삼쪼온…… 무서운 땨람들이 온대요? 레온이 때무네 누나랑 삼촌 다치는 고야……?"

맞춤법이 웅얼웅얼 뭉개지는 꼬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레티샤는 심장이 꾹 조여드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아이에게 이런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의 동요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지독한 육체적 한계였다.

'아…… 머리가…….'

가계부를 기동해 힐데의 비밀 정보를 강제로 읽어내고, 은빛 펜던트의 마력을 미세하게 조율한 대가가 뒤늦게 휘몰아쳤다. 머릿속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 욱신거렸고,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며 무릎의 힘이 풀렸다. 온정적 감정 에너지와 체력이 급격히 바닥을 드러내며 시야가 핑글 돌았다.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레티샤는 이를 악물고 카운터 옆 유리 쇼케이스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아침에 구워 두었던 '라벤더 꿀 스콘'을 급히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진한 버터의 풍미와 함께, 말린 라벤더 꽃잎의 싱그럽고 편안한 허브 향이 후각을 부드럽게 깨웠다. 뒤이어 구운 스콘 특유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포슬포슬하게 부서지며 목을 넘어가는 따뜻한 식감이 전신으로 퍼졌다. 마지막으로 혀끝에 잔류하는 숲속 야생화 꿀의 진득하고 달콤한 맛이 혈관을 타고 흐르며, 꺼져 가던 레티샤의 정신을 간신히 붙잡아 주었다.

"레티샤!"

디트리히가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지탱했다. 그의 단단하고 따뜻한 손길이 닿자, 레티샤는 차갑게 식어 가던 몸에 온기가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요. 잠시…… 저혈당이 와서 그래요. 늘 있는 일이니까요."

레티샤는 입가에 묻은 스콘 가루를 털어내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돈을 벌고 집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고통쯤은 기계적으로 계산해 넘겨야 했다.

그녀는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은빛 펜던트를 꾹 움켜쥐며 탁자 위의 나침반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스위트 가계부의 붉은 경고창이 요란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경보! 고농도의 적대적 은빛 마력 공명이 감지되었습니다.] [소지 중인 '은빛 펜던트'가 적의 추적 나침반과 강제 동조를 시작합니다!] [인과율 역류 위험도: 85%]

"어……?"

레티샤의 주머니 속에서 심장박동처럼 쿵쾅거리는 진동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피 묻은 나침반의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디디디딕, 틱! 하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워지더니, 나침반 표면에 묻어 있던 마른 핏자국이 파르스름한 은빛 불꽃을 일으키며 타올랐다.

힐데의 갈색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럴 수가…… 단순한 수신기가 아니었어! 이건 고리를 완성하는 매개체였군!"

"그게 무슨 소리지?"

디트리히가 검을 완전히 뽑아 들며 물었다. 서슬 퍼런 검날이 은빛 불꽃에 반사되어 서늘하게 빛났다.

"황후의 마법사들이 척후병의 나침반에 '역추적 주술'을 걸어둔 겁니다. 이 나침반이 이 근처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은빛 마력 반응—즉, 당신들의 마력이나 그 펜던트의 기운과 접촉하는 순간, 즉시 그 좌표를 본대에 전송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거야!"

힐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흘이 아닙니다! 놈들은 이미…… 바로 이 안개 숲 입구까지 당도해 있었던 거예요!"

쿵!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두막 전체가 크게 들썩였다.

창문 유리가 바르르 떨리며 비명을 질렀고, 정원을 감싸고 있던 푸른빛 정화 결계가 웅장한 천둥소리와 함께 붉은빛 주술과 충돌하며 사나운 스파크를 일으켰다.

어두운 안개 숲 너머, 나뭇가지들이 무참히 꺾이는 소리와 함께 수십 마리의 군마가 내딛는 무거운 말발굽 소리가 지독한 금속성 갑옷 마찰음과 함께 공방을 향해 좁혀오고 있었다.

레티샤의 시야 속에서 가계부의 경고등이 붉은 피처럼 선명하게 번쩍였다.

[긴급 상황: 외부 결계 유지력 급감!] [적의 총공격까지 남은 시간: 10분]

공방의 안전을 담보하던 결계막이 밖에서부터 뜯겨 나가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디트리히는 검을 쥔 채 레티샤와 레온의 앞을 가로막아 서며 차가운 눈빛으로 문밖을 주시했다.

과연 레티샤는 이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자신의 몸을 갉아먹는 가계부의 힘과 은빛 펜던트의 비밀을 이용해 황실의 포위망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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