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 밤, 영업을 마치고 가계부 정산 목록을 들여다보던 레티샤의 시야 우측에 불쑥 떠올랐던 적색 경고창은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느다란 잔상처럼 눈가에 어른거렸다.
[위험: 과도한 타인 온정 지출로 인한 급격한 육체 생명력 감퇴 및 가관절 중독!] [경고: 시스템의 등가교환 법칙에 따른 누적 부작용이 임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지독한 한기에 오들오들 떨며 쓰러졌던 몸은 디트리히가 밤새 끓여 준 따뜻한 염소 우유 덕분에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삐걱거리는 무릎 관절과 모래를 삼킨 듯 서걱거리는 목구멍은 여전히 정상 수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레티샤, 또 무리하는군. 당장 그 손 놓고 침대로 돌아가."
부엌 입구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던 디트리히가 미간을 팍 찌푸렸다. 그의 손에는 낡았지만 반질반질하게 닦인 나무 쟁반이 들려 있었다. 하루 종일 무거운 장작을 패고 테이블을 닦느라 단단한 어깨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음에도, 그의 은빛 눈동자만큼은 매섭게 불타올랐다.
"쉬면 손님들은 누가 받고요? 하루 공치면 지불해야 할 결계 유지비가 얼만지 알아요?"
레티샤는 가쁘게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밀가루 포대를 끌어당겼다. 가난은 숲속의 마수보다 무서운 법이었다. 한 번 둥지를 잃고 쫓겨났던 기억은 뼛속까지 시린 공포로 남아 그녀의 발목을 채찍질했다. 공짜로 주어지는 안식처 따위는 세상에 없다. 몸이 부서지더라도 이 낙원 공방을 지켜내야만 했다.
"누나아…… 아푸지 마아. 레온이가 요고 다 닦으께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커다란 걸레를 꼭 쥔 레온이 레티샤의 치맛자락을 살포시 붙잡으며 올려다보았다. 동그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꼴이 안쓰러우면서도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레티샤는 굳어 있던 뺨의 근육을 억지로 늘려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웅, 우리 레온이 착하지. 누나 아주 튼튼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레티샤는 몰래 주머니 속의 차가운 은빛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디트리히가 떨어뜨렸던 이 펜던트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냉기가 일시적으로 타오르는 열을 식혀주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벌써 바닥에 고꾸라졌을 터였다.
텁텁한 열기를 식히기 위해 공방 뒷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을 때였다.
사락, 사그락.
정화 결계석이 묻혀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맑은 바람이 일렁여야 할 나뭇가지 사이로, 탁하고 끈적한 회색 기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레티샤는 본능적으로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건?"
나무뿌리 사이에 자그마한 생명체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길쭉한 귀와 복슬복슬한 꼬리를 가진, 얼핏 다람쥐를 닮은 영물이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털은 온데간데없고, 꼬리 끝에서부터 몸통까지 딱딱한 구리색으로 변해 굳어가고 있었다. 고농도의 마력 오염과 기류 정체로 인해 신체가 석화되는 끔찍한 이상 현상이었다.
"끼이…… 끡……."
어린 '바람의 영묘'는 숨을 쉴 때마다 쇳소리를 내며 고통스럽게 몸을 떨었다. 탁한 회색 기류가 녀석의 콧구멍과 입으로 들락날락하며 생명력을 갉아먹는 중이었다.
[스위트 가계부가 강제 처방 레시피를 해금합니다!] [진단: 바람의 영묘 - 극심한 대기 마력 오염 및 체내 순환 마비(구리색 석화증).] [처방: '허브 박하 마들렌' - 기류를 소통시키고 오염을 정화하는 상큼한 가로형 휘낭시에 마들렌.] [대가 지불 경고: 디저트 제작 시 소유자의 잔여 생명력 10% 및 온정 에너지 15%가 추가로 차감됩니다. 현재 상태에서 진행 시 실신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머릿속에 울리는 가계부의 붉은 경고음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레티샤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몸 상태로 디저트를 구웠다간 정말로 며칠 동안 일어나지 못할지도 몰랐다. 머릿속의 이성적인 주판알은 당장 녀석을 외면하고 안으로 들어가라며 탁탁 소리를 냈다. 이 마수를 구해봤자 즉각적인 금전적 이득은 나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굳어가는 발끝을 파르르 떨며 애처롭게 자신을 바라보는 영묘의 젖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솟구쳤다.
"……가계부, 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지독한 거야."
레티샤는 입술을 꽉 깨물어 피 맛을 보며 영묘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품에 닿은 녀석의 몸은 마치 차가운 청동 조각상처럼 무겁고 딱딱했다.
부엌으로 돌아온 레티샤는 밀가루와 설탕을 꺼냈다. 디트리히가 깜짝 놀라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지만, 레티샤는 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방해하지 말아요. 지금 안 구우면 저 작은 게 죽어요."
"네 몸부터 챙기라고 했을 텐데!"
"빚쟁이한테 몸 사릴 여유 따윈 없어요. 그리고…… 내 공방 마당에서 손님이 죽어 나가는 건 딱 질색이거든요."
레티샤의 단호한 태도에 디트리히는 결국 혀를 차며 손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은빛 눈동자에 안타까움과 알 수 없는 부채감이 뒤섞여 일렁였다.
레티샤는 숨을 몰아쉬며 볼에 달걀을 담고 거품기를 쥐었다. 손끝이 부르르 떨렸지만, 온 힘을 다해 달걀을 휘저어 매끄러운 크림 상태로 만들었다. 정화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텃밭에서 갓 따온 신선한 페퍼민트 잎을 절구에 넣고 짓이겼다.
사각사각, 청량한 박하 향이 부엌 안 가득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녹인 버터를 조심스럽게 태워 고소한 헤이즐넛 향이 나도록 만든 뒤, 박하 즙과 레몬 제스트를 섞은 반죽에 천천히 흘려 넣었다. 달콤하면서도 코끝을 탁 쏘는 신선한 페퍼민트의 향이 버터의 묵직하고 고소한 풍미와 어우러져 공기 중으로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와아…… 향기 조타아."
레온이 코를 킁킁거리며 오븐 앞으로 다가왔다. 디트리히 역시 말없이 화력 조절을 도우며 오븐 안을 예의주시했다.
틀에 반죽을 채우고 오븐에 밀어 넣은 뒤, 레티샤는 조리대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이 가끔씩 하얗게 번쩍였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굳어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가계부가 그녀의 온정적 감정과 생명력을 무자비하게 빨아가고 있는 증거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버티자.’
잠시 후, 딩동 하는 맑은 종소리와 함께 오븐 문이 열렸다.
황금빛으로 그을린 조개 모양의 모서리가 앙증맞은 가로형 휘낭시에 마들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븐 밖으로 뿜어져 나온 열기 속에는 온몸의 세포를 깨우는 듯한 청량하고 달콤한 후각적 심상이 가득했다. 첫 향은 코끝을 시원하게 스치는 시원한 박하 향이었고, 그 뒤를 이어 노릇하게 구워진 버터의 묵직한 단내가 밀려왔으며, 마지막으로 레몬의 상큼함이 입안에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레티샤는 뜨거운 마들렌을 조심스럽게 접시에 담아 영묘의 입가로 가져갔다.
"자, 착하지? 이거 먹고 얼른 일어나자."
영묘는 겨우 눈을 뜨고 냄새를 맡더니, 작은 입을 벌려 마들렌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바삭하게 잘 구워진 겉면이 씹히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촉촉하고 부드러운 안쪽의 박하 시럽이 녀석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혀끝을 감싸 안는 달콤함과 이내 가슴속까지 화하게 뚫어주는 시원함이 영묘의 체내에 갇혀 있던 탁한 마력을 강하게 밀어내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영묘의 몸을 덮고 있던 칙칙한 구리색 석화 껍데기가 하얀 가루가 되어 사르르 바스러져 내렸다. 그 밑에서 다시 돋아난 것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보송보송한 에메랄드빛 털이었다.
"끼우우!"
기운을 차린 바람의 영묘가 가볍게 도약해 레티샤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맑고 상쾌한 바람이 부엌 안의 텁텁한 공기를 단숨에 쓸어버렸다. 영묘는 레티샤의 가슴팍에 보드라운 머리를 비벼대더니, 그녀의 뺨에 쪼옥 하고 소리가 나도록 뽀뽀를 건넸다.
"앗, 간지러워……."
레티샤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영묘가 작은 앞발을 꼬물거리며 그녀의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그것은 은은한 청색 광채를 내뿜는 작은 씨앗이었다. 얼핏 평범한 씨앗처럼 보였으나, 그 주변으로 미세한 바람의 소용돌이가 끊임없이 자전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람의 마력이 절대 무한히 갇혀 있는 고대 정령의 원천 동력, 바로 '바람의 깃털 씨앗'이었다.
"이 귀한 걸 내게 주는 거야?"
"끼우!"
영묘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레티샤의 손가락을 한 번 더 핥아주고는 열린 창문 너머 푸른 하늘을 향해 휘두르며 날아갔다. 녀석이 지나간 자리마다 맑은 에메랄드빛 바람의 궤적이 아름답게 수놓아졌다.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전설 속 정령의 가호. 그 따스한 기운이 씨앗을 쥔 레티샤의 손끝을 타고 올라와, 지쳐 있던 그녀의 심장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비록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가슴속을 채운 뿌듯함과 안도감은 가계부의 부작용마저 잠시 잊게 만들 만큼 달콤했다.
"대단하군. 정령의 신뢰를 이토록 쉽게 얻다니."
디트리히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그녀의 손바닥에 놓인 씨앗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이제 단순한 경외를 넘어선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치료비 대신 받은 셈 칠래요. 엄청난 횡재잖아요."
레티샤는 개구지게 웃으며 씨앗을 깊숙한 비밀 주머니 속에 소중히 보관했다. 언젠가 공방에 정말로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이 씨앗이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여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바람의 영묘가 사라진 숲길 너머, 아직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경계선 부근에서 사박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
공방의 정화 결계 밖에서부터 걸어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겉모습은 평범한 국경 지대의 상인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흐트러짐 없이 똑바로 뻗는 걸음걸이와 군인 특유의 절도 있는 신형이 이질감을 자아냈다.
"……!"
디트리히가 본능적으로 레온을 제 등 뒤로 숨기며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의 전신에서 차가운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안개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차가운 눈빛을 한 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공방의 외관을 예리하게 훑어보더니, 망설임 없이 마당을 가로질러 문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굳게 닫힌 공방의 문 손잡이를 붙잡고, 천천히 안쪽으로 밀어 열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불길한 마찰음과 함께 문틈 사이로 낯선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문틈으로 흘러든 밤안개가 바닥을 따라 스르륵 번졌다.
디트리히의 턱관절이 단단하게 맞물렸다. 서빙용 앞치마 아래로 드러난 그의 단단한 팔뚝에 푸른 힘줄이 돋아났고, 허리춤에 찬 낡은 장검의 손잡이를 쥔 손가락끝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그는 레온의 어깨를 짚어 기단 벽 뒤의 좁은 틈새로 완전히 밀어 넣었다.
"……누구지."
낮게 깔린 디트리히의 목소리에는 벼려진 칼날 같은 경계가 서려 있었다.
공방 안으로 들어선 여성은 젖은 안개를 털어내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단정한 가죽 장화와 상인들이 흔히 입는 깃 넓은 외투를 걸치고 있었지만,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미세하게 서걱거리는 가죽의 마찰음은 지극히 절제되어 있었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완벽한 정적의 걸음걸이. 그것은 국경을 드나드는 평범한 역마차 상인의 솜씨가 아니었다.
"어머, 험악하기도 해라. 길을 잃은 가여운 나그네에게 제국의 은혜로운 황자님께서 칼부터 들이대시는 건가요?"
여성이 후드를 벗으며 생긋 미소를 지었다.
드러난 얼굴은 매혹적이었으나, 호선을 그리며 휘어지는 입꼬리와 달리 가라앉은 갈색 눈동자는 얼음판처럼 차갑고 고요했다. 그녀의 시선이 디트리히의 얼굴에서부터 그의 손에 들린 검, 그리고 부엌 구석에 서 있는 레티샤에게로 천천히, 아주 정밀하게 이동했다.
그 순간, 레티샤의 시야 우측에 먼지 낀 유리창이 닦이듯 가계부의 반투명한 정보창이 번쩍이며 떠올랐다.
[인물 분석: 힐데 (Hilde)] [신분: 국경 지대 거물 암시장 상인 / 제국 황실 정보원] [상태: 고도의 평정 유지 중. 내면의 계산기 작동 중.] [목적: 안개 숲 내부의 비정상적인 마력 정화 반응 추적 및 제1황자의 생존 여부 확인.] [위험도: 극상(極上). 그녀의 톺아보는 눈을 피하지 못할 시, 공방의 좌표와 황자의 위치가 제도(帝都)로 즉시 송신됩니다.]
레티샤는 주머니 속의 은빛 펜던트를 꽉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지독한 한기를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다. 머릿속의 주판알이 요란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황실의 밀정이야. 여기서 허점을 보이면 우리 모두 끝장나.’
등가교환으로 인해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레티샤는 디트리히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리고 손님을 맞이하는 공방 주인 특유의 싹싹하고도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죄송해요, 손님. 저희 공방은 방금 막 영업을 종료했답니다. 보시다시피 정리 중이라서요."
"종료라니 아쉽군요. 숲속을 헤매다 이 달콤한 냄새에 홀린 듯 이끌려 왔는데 말이조."
힐데는 코를 가볍게 킁킁거렸다. 공방 안에는 방금 구워낸 박하 마들렌의 청량한 잔향과 고소한 버터의 단내가 여전히 짙게 잔류하고 있었다. 그녀의 예리한 눈길이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는 미세한 은빛 가루—방금 전 바람의 영묘가 남기고 간 석화 껍데기의 흔적—에 머물렀다.
"이 냄새는…… 단순한 제과 제빵의 향이 아니군요. 마력의 정체를 씻어내는 극상의 정화 촉매 향이야. 제국 최고의 연금술사들도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정교한데."
힐데가 한 걸음 더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그녀의 시선이 마침내 탁자 위에 놓인,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빈 접시로 향했다.
"귀여운 점장님. 혹시 최근에 이 근처에서…… 황가의 은빛 불꽃을 닮은 귀한 손님이나, 혹은 상처 입은 마수들을 구해주신 적은 없으신가요?"
질문과 동시에 힐데가 품 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어 탁자 위에 가볍게 던졌다.
짤랑, 하는 둔탁하고 묵직한 소리가 고요한 공방 안에 울려 퍼졌다. 주머니의 틈새로 언뜻 보인 것은 국경 지대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황실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순금 주화들이었다.
"제게 아주 귀중한 정보를 주신다면, 이 오두막 전체를 황금으로 칠해드릴 수도 있답니다."
힐데의 갈색 눈동자가 탐욕스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빛을 뿜어냈다. 그녀의 시선이 레티샤의 주머니 근처,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은빛 마력의 잔상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디트리히가 검을 완전히 뽑아 들려는 찰나, 레티샤는 그의 소매자락을 은밀히 잡아당기며 힐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글쎄요. 저희 공방은 오직 정당한 노동의 대가와 디저트 값만을 받거든요. 그런 출처 모를 황금은…… 영 장부에 적기 곤란해서요."
레티샤가 생긋 웃으며 주머니 속의 은빛 펜던트의 모서리를 손끝으로 꾹 눌렀다. 그 순간, 펜던트가 머금고 있던 은빛 마력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힐데의 소맷자락 안쪽에서 틱, 디디딕— 하는 기괴한 금속성 마찰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황실 수색대원들이 소지하는 '은빛 마력 추적 나침반'이 강력한 반응을 일으키며 회전하는 소리였다.
힐데의 미소가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