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쿠르릉, 릉.

동쪽 골짜기에서 불어닥친 거대한 검은 회오리가 숲의 정수리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 요동쳤다. 사방을 가득 메운 열풍은 평소의 싱그러운 풀 내음 대신 탄내와 흙먼지를 거칠게 몰고 왔다. 오두막 창틀에 서려 있던 투명한 성에가 순식간에 녹아내려 마치 땀방울처럼 투두둑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이 기운은…… 단순한 마수가 아니다."

디트리히가 즉시 검자루를 쥐며 레티샤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동쪽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좁혀졌다.

안개 숲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붉은 화염의 장막 너머로, 이성을 잃고 광폭화한 거대한 야수왕의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하지만 레티샤는 가슴을 짓누르는 뜨거운 공기 속에서도 제 가슴팍을 쥐어짜는 듯한 피로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에클레어 레시피의 대가로 지불한 체력 15%와 온정적 감정 에너지 20%의 공백이 뼛속까지 시리게 스며들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의 감각이 무채색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속이 텅 빈 것처럼 서늘했다.

레티샤는 떨리는 손으로 앞치마 주머니를 뒤져 미리 준비해 둔 박하 시럽 병을 꺼냈다. 마개를 뽑고 한 모금 머금자, 혀끝에 남는 달콤하고 팽팽한 청량감과 함께 코끝을 찌르는 알싸한 풀 향기, 그리고 차가운 박하의 톡 쏘는 아린 맛이 순식간에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날카로운 자극 덕분에 겨우 흐려지던 정신이 붙들렸다.

"삼촌, 뜨거워여어…… 숲판이 빨개여……."

레온이 디트리히의 바짓가랑이를 꼭 쥐며 웅얼거렸다. 겁에 질려 동그랗게 뜬 눈에 붉은 안개의 잔상이 비쳤다.

"괜찮다, 레온. 내 뒤에 서 있거라."

디트리히가 나직하게 타이르며 검을 반쯤 뽑아 들었다.

그 무시무시한 폭풍이 오두막을 덮치기 직전, 숲의 동쪽이 아닌 서쪽 경계에서 찌르르한 경보음이 울렸다. 오두막을 둘러싼 푸른빛 정화 결계에 누군가 무단으로 접촉했다는 신호였다.

타타탁, 타닥!

흙바닥을 다급하게 짓밟는 불규칙한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뒤이어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것은 붉은 사자가 아니라, 뾰족한 귀에 초록색 가죽을 뒤집어쓴 기괴한 생물체들이었다.

"이봐! 여기 가난뱅이 제과점 주인이 살고 있다는 게 확실하지?"

"확실합니다, 그리그 단장님! 저기 굴뚝에서 단 냄새가 풀풀 풍기지 않습니까!"

제국 외곽 영지의 악명 높은 착취자이자 고블린 세무 사채관들의 무리였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그리그는 주먹코에 가죽 조끼를 걸치고, 한 손에는 붉은 도장이 찍힌 두꺼운 서류 뭉치를 들고 있었다. 숲의 갑작스러운 열풍에 놀라 도망치던 길에, 마지막으로 한탕 털어먹겠다는 심산이 가득한 몰골이었다.

그리그는 마당 안으로 들이닥치자마자 붉은 도장이 선명한 통지서를 레티샤의 코앞에 내밀었다.

"안개 숲 특별 통행세 및 토지 사용료 미납에 따른 공방 압류 통지서다! 당장 이 오두막에서 짐 싸서 꺼지든가, 아니면 밀린 세금 3,000실버를 일시불로 내놓으시지!"

레티샤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자신만의 안전한 터전, 누구에게도 쫓기지 않고 발을 붙일 수 있는 이 소중한 오두막 공방을 빼앗겠다는 소리였다. 가난과 버림받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장에 날카로운 가시를 찔러 넣는 것 같았다.

"통행세라니요. 이 안개 숲은 영주령에서도 버려진 국경 지대일 텐데요. 제국 법률상 미개발 숲의 개간지는 최초 거주자에게 3년간 세금이 면제됩니다."

레티샤가 기계적으로 주판알을 튕기듯 차분하고도 냉혹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리그는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킥킥 웃었다.

"개간지 면세? 그건 일반 영민들 얘기고! 네가 설치한 저 수상한 마법 결계 보이지? 저건 제국 안전법상 '위험 마법 시설물'로 분류되어 매달 특수 통행세가 부과된다고! 여기 장부에 다 기록되어 있어. 이자까지 합쳐서 정확히 3,000실버다!"

놈이 내민 장부에는 온갖 억지스러운 명목의 수치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연이율 120%에 달하는 말도 안 되는 복리 계산법이었다.

피로와 감정 소모로 머리가 무거운 상황에서 놈들의 터무니없는 수치 장난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억지 부채를 뒤집어씌워 공방을 통째로 강탈하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이봐, 고블린."

그때, 디트리히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

그는 무기를 압수당하고 레티샤의 공방에서 하루 50실버를 받으며 땔감을 패고 물을 긷는 신세였지만, 타고난 황족의 고고함과 오만함은 감출 수 없었다. 앞치마를 두른 상태임에도 그의 붉은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고블린들이 흠칫 뒤로 물러섰다.

"그 장부, 이리 내놔라."

"뭐, 뭐야? 이 덩치만 큰 인간 놈은? 우린 정당한 세무관이라고!"

그리그가 빽 소리를 질렀지만, 디트리히는 가볍게 손을 뻗어 놈의 손에 들린 대금 장부를 낚아챘다. 그리고 몇 초간 장부의 수치들을 훑어내리더니, 차가운 실소를 터뜨렸다.

"제국 세법 제4조 2항. 영지 조례에 의거한 특수 시설물 과세는 영지 의회의 승인을 거쳐 세무국장의 직인이 찍힌 공문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장부에 찍힌 도장은 영지 조례의 정식 인장이 아니라, 하급 고블린 상단 무역 법인의 사설 인장이군."

"어, 어떻게 그걸……!"

"게다가 복리 계산법도 엉망이군. 제국 표준 법정 최고 이자율은 연 20%를 초과할 수 없다. 120%라니, 이건 세금이 아니라 단순 사채 갈취 행위다. 이 장부 자체가 제국 형법 제112조, 영지민 불법 갈취 및 공문서 위조죄에 해당한다는 걸 알고는 있는 건가?"

디트리히의 날카롭고 정연한 논리에 그리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레티샤는 디트리히의 지적을 듣고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을 느꼈다. 놈들이 가져온 서류의 허점을 완벽하게 파악한 것이다. 주머니 사정을 단단히 수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스위트 가계부, 기동.'

레티샤가 마음속으로 외치자, 그녀의 눈앞에 투명한 황금빛 가계부 창이 활성화되었다.

[시스템 가계부 기능: '적대 대상의 재정 정보 탐지'를 활성화합니다.] [대상: 고블린 사채업 단장 '그리그'] [진단 결과: 마을 정방(세무서)에서 횡령한 공금 4,500실버 은닉 중. 불법 탈세 및 뇌물 수수 내역 감지.]

가계부 화면에 고블린들이 저지른 온갖 불법 행위와 횡령 수치들이 실시간으로 기록된 이중 장부의 실체가 낱낱이 떠올랐다. 심지어 그들이 어느 창고에 장물을 숨겨두었는지까지 정밀하게 좌표가 찍혀 있었다.

레티샤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비록 감정 에너지 소모로 가슴속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상대를 철저하게 짓밟아줄 무기를 쥐자 머릿속 주판알이 경쾌하게 굴러갔다.

"디트리히 씨의 말씀이 맞네요. 사설 인장을 도용해 불법 사채를 세금으로 위장하다니요."

레티샤가 한 걸음 다가서며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스위트 가계부의 마력이 대기 중에 반응하더니, 공중에 커다란 황금빛 마공 스크린이 반사판처럼 환하게 펼쳐졌다. 그 스크린 위로 그리그가 그동안 마을 정방에서 가로챈 횡령 내역과 불법 탈세 수치들이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 이게 무슨 마법이냐!"

그리그가 비명을 지르며 제 눈을 의심했다.

"그리그 단장님, 여기 3월 14일에 마을 공동 창고에서 횡령한 밀가루 50포대와 설탕 20자루의 행방이 아주 상세히 적혀 있네요. 그리고 세무 장부 뒷면에 먹칠해 가며 숨겨둔 비자금 4,500실버의 출처까지요."

레티샤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 자료를 그대로 제국 세무국과 국경 수비대에 마력 전송으로 청구하면 어떻게 될까요? 불법 공문서 위조에 횡령, 그리고 탈세까지. 광산 노역형 30년은 가볍게 나올 텐데요."

"히, 익……!"

고블린 무리들이 공포에 질려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리그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이마를 흙바닥에 찧었다.

"살, 살려주십시오! 제발 그것만은 마력 전송을 멈춰주십시오! 저희가 눈이 멀어 훌륭하신 제과사 님의 공방을 몰라봤습니다!"

"살려달라니, 공짜는 없어요."

레티샤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우리 공방을 협박하고, 내 아까운 체력과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정신적 피해 보상금을 청구하겠습니다. 놈들이 갈취하려 했던 3,000실버의 3배인 정확히 9,000실버를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일시불로 지불하세요."

"구, 9,000실버라니요! 그건 저희 전 재산입니다!"

그리그가 울부짖자, 레티샤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스크린의 전송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보낼까요?"

"아닙니다! 주겠습니다! 당장 드리겠습니다!"

고블린들은 비명을 지르며 자신들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가죽 주머니들을 전부 풀어 마당 바닥에 쏟아부었다. 찰랑거리는 은화와 금화들이 흙바닥 위로 쏟아지며 눈부신 빛을 발했다.

"여, 여기 진짜 9,000실버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드렸으니 제발 목숨만은……!"

"조심히 가세요. 먼지 날리니까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가시고요."

레티샤의 냉혹한 축객령에 그리그를 비롯한 고블린 사채업자들은 엉금엉금 기어서 오두막 마당 밖으로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레티샤는 바닥에 떨어진 묵직한 가죽 주머니들을 주워 담았다.

[가계부 자산 충전: 9,000실버가 추가되었습니다.] [공방 재정 상태: 매우 안정]

머릿속 주판알이 완벽한 승리를 알리며 경쾌하게 부딪혔다. 무력 한 번 쓰지 않고 탐욕스러운 사채업자들의 영혼까지 털어버린 완벽한 반격이었다.

"대단하군. 이번에도 상대를 완전히 거덜 내놓다니."

디트리히가 검을 거두며 혀를 내둘렀다.

"제 집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자위권 행사일 뿐이에요."

레티샤가 덤덤하게 대답하며 가계부를 정리하려던 찰나였다.

그녀의 시선이 스위트 가계부 맨 아래쪽, 이전에 보지 못했던 어두운 회색 실루엣에 머물렀다.

['심연의 불꽃을 품은 성스러운 사자 자리' 실루엣이 붉은빛으로 강하게 요동칩니다.] [경고: 폭주하는 야수왕의 마력 수치가 임계점을 돌파했습니다. 정밀 정화 레시피의 해금이 시급합니다!]

새빨갛게 깜빡이는 경고 창을 보는 것과 동시에, 저 멀리 숲속으로 도망치던 고블린들의 비명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으아아악! 괴, 괴물이다! 불타는 사자가 나타났다!"

"살려줘! 살려……!"

짧은 비명들은 이내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뚝 끊겼다.

뒤이어 가슴이 턱 막힐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공방의 북쪽 울타리를 사정없이 덮쳤다.

쿠구구궁!

푸른빛 정화 결계의 북쪽 경계선이 붉은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짐승의 발톱에 힘없이 녹아내리며 처참하게 찢겨 나갔다. 불길 속에서 거대한 붉은 갈기를 휘날리는, 눈이 피로 물든 거대한 화염 사자가 오두막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했다.

크르르르르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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