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쿠구구구구—!

공방을 둘러싼 대지가 산산이 조각나기라도 할 듯 비명을 질렀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하늘을 등진 채, 황실 흑사자 기사단의 수장 아나톨 대장이 거대한 강제 분쇄 마도 대포의 공이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포구의 붉은 주술 문양들이 마치 피를 갈망하는 뱀처럼 구불거리며 시뻘건 빛줄기를 뿜어냈다.

"결계째로 먼지로 만들어 주마."

광기에 찬 아나톨의 목소리가 숲속의 안개를 찢어발겼다. 그가 당긴 공이가 부딪치는 철컥 소리와 동시에, 포구에 모여든 마력이 임계점을 넘어 폭발했다.

눈이 멀 것 같은 붉은 섬광이 오두막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 대기를 태우는 매캐한 오존 냄새와 귀를 찢는 파열음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쿠웅—!

거대한 마력포가 에메랄드빛 결계의 표면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오두막의 유리창들이 요란하게 덜컹거렸고, 선반 위의 도자기 컵들이 자르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꺄아악!"

레온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레티샤의 앞치마 자락을 양손으로 꼭 쥐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끝이 하얗게 질려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레티샤는 반사적으로 레온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품에 꼭 끌어안았다.

"괜찮아, 레온. 누나 봐봐. 아무 일도 안 일어나."

레티샤는 떨리는 숨을 내쉬며 결계 밖을 응시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천지를 뒤흔들 듯한 폭발음이 무색하게도, 에메랄드빛 오로라는 붉은 광선을 마치 스펀지처럼 부드럽게 흡수해 내고 있었다. 결계 표면에 물결 같은 파동이 몇 번 일 뿐, 단 한 줌의 불꽃도 오두막 마당 안으로 침범하지 못했다. 영구적인 가계의 영구 결계는 그 이름에 걸맞게 완벽한 신역(神域)을 유지하고 있었다.

"음, 튼튼하긴 하네요."

레티샤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품 안의 레온을 토닥였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머릿속에서 예리한 경고음이 울렸다.

띠링!

[시스템 경고: 외부로부터 지속적인 고농도 마력 타격 감지.] [정화 결계 유지비 급증! 현재 소모율: 시간당 5,000루그 상당의 마력.] [주의: 결계의 방어력이 완벽할수록 등가교환 법칙에 따라 영구 결계석의 마력 소모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집니다.]

레티샤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시간당 5,000루그라니. 하루만 버텨도 대략 12만 루그가 허공으로 날아간다는 소리였다.

그녀의 머릿속 셈판이 미친 듯이 굴러갔다. 가난과 버림받음에 대한 트라우마는 그녀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내렸다. 공짜는 없다. 저들이 저 무지막지한 포격을 일주일 내내 퍼부어댄다면, 결계가 깨지기 전에 자신의 전 재산이 먼저 바닥나거나, 가계부의 등가교환 대가로 제 육체가 먼저 영양실조로 말라 죽을 터였다.

'정면 소모전은 절대 사절이야. 내 돈을 저런 미치광이들 때문에 단 한 푼도 낭비할 순 없지.'

레티샤는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마침 마당 한구석에서 검 자루를 쥔 채 바깥의 동태를 살피던 디트리히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은빛 눈동자에는 전장의 장수다운 투지와 함께, 레티샤를 향한 깊은 우려가 서려 있었다.

"레티샤, 내가 나가서 저 대포를 부수겠다. 결계가 버티는 동안 놈들의 지휘부를 타격하면……."

"안 돼요, 알바생."

레티샤가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자르고 앞치마 주머니에서 빳빳한 종이 한 장과 깃펜을 꺼내 들었다.

"나가서 몸으로 때우는 건 하책이에요. 피 흘리고 다쳐서 돌아오면 치료비가 더 들잖아요? 우리는 좀 더 우아하고, 저렴하며, 확실한 장외 타격을 할 겁니다."

"장외 타격?"

디트리히가 검을 쥔 채 눈을 깜빡였다.

레티샤는 오두막 안쪽 식탁으로 다가가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가계부의 잉크를 듬뿍 찍은 깃펜을 디트리히의 코앞에 내밀었다.

"여기 서명하고, 알바생의 정식 마력 인장을 찍으세요. 황실 제1황자의 이름으로 발행하는 '공식 보증서'를 만들 겁니다."

"내 이름을 걸고 보증서를? 대체 무엇을 보증한다는 말인가?"

"아주 훌륭한 협박장이죠."

레티샤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자본주의의 차가운 빛이 명멸했다.

"지금 저 흑사자 기사단이 이 깊은 안개 숲에서 버티고 있는 건, 전 대륙에서 공수해 오는 든든한 군량과 보급품 덕분이에요. 그리고 그 보급로를 쥐고 흔드는 건 황실 전속 귀족 상인들이죠. 황후의 서슬 퍼런 명령 때문에 억지로 물자를 대고 있겠지만…… 만약 제1황자이자 정통 후계자인 당신이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증거와 함께 경고장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디트리히의 은빛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었다. 레티샤는 깃펜을 그의 손가락 사이로 쑥 밀어 넣으며 속삭였다.

"내용은 간단해요. '현재 아나톨 군대에 무단으로 군수품을 조달하는 모든 상인은 황태자의 승인을 받지 않은 역모 가담자로 간주한다. 추후 내가 황위에 복위하는 날, 가문의 전 재산을 몰수하고 삼족을 멸하겠다. 단, 지금 즉시 보급을 중단하고 협조한다면 황실 독점 상인 권한을 영구 보장하겠다.' 어때요? 기가 막히죠?"

디트리히는 헛웃음을 삼켰다. 황실의 권위와 반역이라는 무거운 법을 이토록 철저하게 '장사꾼의 손익계산'으로 활용하는 인간은 머리털 나고 처음 보았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영리하고 치명적인 수였다.

"좋다. 하지만 상인들이 내 인장을 가짜라고 의심하면 어쩌지?"

"그걸 위해서 힐데의 상단망을 이용할 겁니다. 그리고 눈앞에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증명해 줄 귀여운 배달부들도 있죠."

레티샤는 오두막 뒷문을 열고 휘파람을 짧게 불었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 안개를 머금은 얼음 늑대 세 마리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에클레어를 먹고 순화된 녀석들은 이제 레티샤의 든든한 아군이었다. 녀석들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레티샤의 손길을 기다렸다.

레티샤는 품에서 지난번 구워둔 '바람의 카누레'를 꺼내 늑대들에게 하나씩 던져주었다.

바스락.

카누레의 탄탄한 크러스트가 이빨 사이에서 부서지며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탄 설탕 향이 숲바람을 타고 퍼졌다. 속은 마치 몽글몽글한 달걀찜처럼 촉촉하고 부드러웠으며, 바닐라 빈의 묵직하고 따스한 단맛이 늑대들의 입안을 감싸 안았다. 카누레 내부의 바람의 깃털 마력이 활성화되면서, 늑대들의 발끝에 은은한 바람의 소용돌이가 휘감겼다. 녀석들의 속도가 평소보다 세 배는 빨라질 터였다.

"이 서한을 들고 숲 외곽에 대기 중인 힐데에게 가렴. 힐데가 알아서 대륙의 보급 회주들에게 뿌려줄 거야."

디트리히는 망설임 없이 종이 위에 자신의 본명과 마력 기운을 담은 은빛 인장을 꾹 눌렀다. 황가의 고결한 마력이 종이 위에 스며들며 위조 불가능한 은색 사자 문양을 그려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레온이 까치발을 들며 고사리 같은 손을 뻗었다.

"누나아! 레오니도 보증서에 도장 꾹 해줄래요! 나두 삼촌 도장 옆에 하트 도장 찍으꼬야!"

"어머, 우리 레온이 도장까지 찍히면 상인들이 무서워서 당장 기절하겠는걸?"

레티샤가 웃으며 레온의 작은 손가락에 붉은 인장을 묻혀 종이 하단에 꾹 찍어주었다. 동글동글한 아기 손가락 자국이 은빛 사자 문양 옆에 귀엽게 남았다.

"자, 배달부들. 부탁해!"

레티샤의 손짓에 얼음 늑대들이 서한이 담긴 가죽 주머니를 물고 안개 속으로 번개처럼 사라졌다. 그들의 발끝에서 일어난 바람이 낙엽을 흩날리며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

그 시각, 안개 숲 외곽의 임시 천막 안.

제국에서 손꼽히는 거상이며, 황실 기사단의 식자재 및 철광석 수송을 전담하던 귀족 상인 '바르톨 백작'은 야밤에 날아든 서한 한 장을 들고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이, 이게…… 이게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백작의 눈앞에서 종이 위에 새겨진 은빛 사자 문양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듯 은은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황실 직계 혈통만이 발현할 수 있는 고유의 마력 인장이었다. 게다가 그 옆에는 황손의 봉인 인장까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디트리히 황자 전하께서 살아계신다……! 역모로 몰려 죽은 줄 알았거늘, 엄연히 살아계셔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단 말인가!"

비서가 조심스레 다가와 속삭였다.

"백작님, 어찌 합니까? 황후 폐하의 명령이라 군수품을 대고는 있습니다만, 만약 제1황자 전하께서 복위하신다면…… 우리 가문은 반역죄로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당연하지! 전신(戰神)이라 불리던 분이시다! 황후가 제아무리 설쳐대도, 은빛 사자의 분노를 우리 같은 상인들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바르톨 백작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상인들의 생리는 명확했다. 이익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다. 살아있는 황태자의 친필 경고장을 무시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짓이었다.

"당장! 당장 황실 기사단으로 향하는 모든 수송 마차를 멈춰라! 마수들의 습격을 받아 물자가 소실되었다고 핑계를 대든, 바퀴가 부러졌다고 하든 상관없으니 무조건 보급을 지연시켜!"

"하, 하지만 아나톨 대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그 미치광이의 칼날보다 황태자의 반역죄 처벌이 백배는 더 무섭다! 당장 설탕과 소금, 무기 보급을 전면 보류해라! 단 한 톨의 밀가루도 저 숲 안으로 들어가선 안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바르톨 백작뿐만이 아니었다. 힐데의 은밀하고 신속한 정보망을 통해 서한을 전달받은 대륙의 거상들은 일제히 사색이 되어 움직였다. 황후의 권력도 무서웠지만, 살아있는 정통 후계자의 '재산 몰수 및 삼족 처벌'이라는 엄포는 상인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순식간에 흑사자 기사단으로 향하던 거대한 보급망이 기습적으로 마비되었다.

***

사흘 뒤.

안개 숲속, 오두막을 포위하고 있던 흑사자 기사단의 진영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 보급 마차가 또 마수의 습격을 받아 회수 불능이 되었다고?!"

기사단 부단장이 보급 담당관의 덜미를 잡고 으르렁거렸다. 보급 담당관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그렇다고 합니다! 바르톨 상단뿐만 아니라 다른 상단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마차가 부서졌다거나, 인부들이 집단 독감에 걸려 움직일 수 없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심지어 제국 창고에서 출발하려던 무기 수송선마저 행정적 오류로 출항이 금지되었다고……."

"이런 빌어먹을 상판때기 같은 놈들!"

기사들의 불만은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안개 숲의 음산한 기운과 오염된 마력 때문에 기사들의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고열량의 식사와 마력 정체를 풀어줄 정제된 소금, 그리고 피로를 회복해 줄 설탕이 다량 공급되어야 했다. 하지만 사흘째 그들에게 배급된 것은 얼어 터진 감자 반쪽과 곰팡이 슨 보리빵뿐이었다.

"배가 고파서 검을 쥘 힘도 없다."

"황실의 정예라던 우리가 왜 이 숲속에서 굶어 죽어가야 하는 거지?"

"저 빌어먹을 오두막은 결계 안에서 따뜻한 김을 풍기며 달콤한 빵 굽는 냄새를 풍기는데, 우리는 여기서 똥물 같은 죽이나 먹고 있다니……."

실제로 오두막의 굴뚝에서는 매일같이 고소한 버터 향과 달콤한 바닐라 향이 섞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기사들에게 그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내부 분열은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야간 경계를 서던 기사들이 하나둘 무기를 버리고 탈영하기 시작했다. 사흘 동안 도망친 기사만 벌써 스무 명이 넘었다. 한 자루의 피도 흘리지 않고, 오직 보급 원가 계산서와 보증서 한 장만으로 대규모 토벌 기사단의 밥줄과 자금줄을 완벽히 끊어놓은 레티샤의 천재적인 장외 전술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오두막 테라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레티샤는 따뜻한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

"거봐요, 알바생. 내 계산이 정확하죠? 굳이 칼을 맞부딪치지 않아도 놈들은 스스로 무너지고 있잖아요."

디트리히는 기가 막히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쟁을 이렇게 치르는 자는 제국 역사상 네가 처음일 거다. 무서운 여자군."

"칭찬으로 들을게요. 아, 그리고 이번 작전으로 결계 유지비를 대폭 아꼈으니, 알바생의 채무에서 특별히 5,000루그를 차감해 드릴게요. 감격스럽죠?"

"……고맙군, 아주 자비로우신 고용주여."

디트리히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은빛 눈동자에는 레티샤를 향한 깊은 경탄과 함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누나아! 나두 5,000누그 깎아조요! 레오니도 하트 도장 꼭 해떠요!"

레온이 레티샤의 치맛자락을 당기며 제 볼을 부풀렸다. 레티샤는 웃음을 터뜨리며 레온의 볼을 부드럽게 꼬집었다.

"당연하지, 우리 레온이는 특별 보너스로 초코칩 쿠키 세 개 더 줄게."

"우와아! 누나 최고오!"

공방 안은 달콤한 온기로 가득했다. 적들의 포위망 한가운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늑하고 평화로운 낙원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쿠구구구!

갑자기 적진 한가운데서 시커먼 마력의 불꽃이 치솟았다.

"……?!"

디트리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레티샤 역시 찻잔을 내려놓고 창밖을 응시했다.

적 기사단의 임시 천막들이 검푸른 불길에 휩싸여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길의 중심에 서 있는 사내, 아나톨 대장이었다. 그의 눈은 이미 이성을 잃고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보급이 끊겼다고……? 감히 비천한 상판때기 놈들이 내 군대를 굶겨?!"

아나톨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품에서 보라색 물약 병들을 꺼냈다. 기사들의 생명력을 강제로 쥐어짜 내어 광폭화시키는 금단의 마법 약물, '폭주 유도 마법 물약'이었다.

"먹지 못하겠다면, 이 약으로 배를 채워라! 황후 폐하의 적들을 파멸시키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이 숲을 나갈 수 없다!"

스으으으!

아나톨이 자신의 가죽 채찍을 보라색 약물에 푹 적셨다. 그리고는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 있던 기사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찰싹—!

"크아아악!"

채찍에 맞은 기사의 몸에 보라색 혈관이 징그럽게 솟구쳤다. 기사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붉게 뒤집히며, 입에서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의 몸집이 기괴하게 부풀어 오르며, 인간의 형태를 잃고 마수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돌격하라! 모두 저 오두막을 찢어발겨라!"

아나톨의 채찍질이 계속될 때마다, 흑사자 기사들이 차례로 괴성을 지르며 괴물로 변해갔다. 광기로 가득 찬 괴물 군대가 오두막을 향해 붉은 눈을 부릅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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