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 심장을 마주 쥔 두 사람의 귓가에, 오두막 천틀을 장작 패듯이 강타하는 정화 결계 제어 장치 시스템의 비상 사이렌 '잔여 결계 마력 1% 이하'라는 붉은 글자가 비명과 함께 회전했다.
"경고... 경고..."
기계적인 마도 음성이 삐걱거리는 천장 틈새로 쏟아졌다. 레티샤는 제 가슴을 누르고 있던 디트리히의 단단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그의 심장박동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오두막을 둘러싼 공기는 잔인할 정도로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레티샤, 뒤로 물러서라."
디트리히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넓은 등에는 여전히 식은땀이 흥건했으나, 검은 눈동자만큼은 사선에 선 전사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일당 50실버를 받는 임시 알바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몸에 밴 황족의 압도적인 기세였다.
"삼촌... 누나아... 무서어..."
구석에서 가죽 앞치마를 꼭 쥔 채 덜덜 떨고 있던 레온이 쪼르르 달려와 레티샤의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레티샤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레온을 품에 안았다.
"괜찮아, 레온. 누나가 있잖아. 삼촌도 있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레티샤의 머릿속은 매서운 속도로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정화 결계석의 내구도가 12%로 떨어진 것도 모자라, 마력 잔여량이 0.8%라니. 이대로 결계가 깨지면 공방은 끝장이다. 내가 어떻게 일군 낙원인데. 저 바깥의 황실 놈들에게 이 보금자리를 단 한 뼘도 내줄 순 없어.'
가난과 버림받음에 대한 지독한 불안이 그녀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을 찌릿하게 찔러왔다.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오직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이 단단하고 아늑한 벽뿐이었다.
스르릉.
오두막 문틀 너머, 숲의 안개 사이로 불길한 쇠사슬 소리가 들렸다. 서걱거리는 흙바닥을 밟는 무거운 군화 소리가 수십 개로 겹쳐 울렸다. 황후 직속 제1대장 아나톨이 이끄는 흑기사단이 오두막을 완전히 포위한 것이 분명했다.
"결계가 숨을 죽였다! 사방에 검은 가루를 살포해라! 안의 쥐새끼들이 숨도 쉬지 못하게 말려 죽이는 거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거친 외침과 함께, 문틈과 창문 창살 사이로 서서히 검은 먼지 같은 가루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력을 강제로 부식시키고 생명력을 갉아먹는 황실 암살대의 비수 같은 주술 가루였다.
지독하게 비린 철 냄새와 타버린 유황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검은 가루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나무 바닥이 치익 소리를 내며 검게 타들어 갔다.
"콜록, 콜록! 누나, 목이 아푸우..."
레온이 기침을 터뜨리며 눈물을 흘렸다.
디트리히가 검을 뽑아 들고 문 앞을 가로막았지만, 보이지 않는 저주 서린 가루를 검으로 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미간이 좁혀지며 턱 끝에 굵은 핏줄이 섰다.
"비열한 놈들... 기어코 이곳까지 오염시키는군."
레티샤는 입술을 짓씹었다. 급격한 감정 소모와 체력 저하로 온몸의 뼈마디가 시려 왔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야. 내 가계부, 내 레시피 속에.'
그녀는 다급히 품 안을 뒤적였다. 손끝에 닿은 것은 차갑고 단단한 디트리히의 은빛 펜던트, 그리고 힐데에게 받은 고대 장벽의 역류 파편이었다. 하지만 이것들만으로는 결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되살릴 에너지가 부족했다.
그때, 주머니 안쪽 가장 깊숙한 곳에서 기묘한 온기가 흘러나왔다.
초록색 마력 기류가 은은하게 요동치며 살아 숨 쉬는 작은 결정체.
'아...!'
그것은 지난날, 온몸에 상처를 입고 쓰러졌던 바람의 영묘를 박하 마들렌으로 치료해 주었을 때, 녀석이 고맙다며 레티샤의 손바닥에 꼭 쥐여주고 간 '바람의 깃털 씨앗'이었다.
[바람의 깃털 씨앗 (S급 촉매제)] - 설명: 바람의 영수(靈獸)가 평생 동안 모은 순수한 자연의 정수가 깃든 씨앗입니다. 스스로 죽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으며, 마력의 흐름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최고의 촉화제 역할을 합니다.
"이거라면... 가능해."
레티샤의 눈동자가 번쩍였다. 그녀는 주저 없이 오두막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공방 마당 중앙, 흙먼지 속에 반쯤 묻혀 있는 돌로 된 결계 기단이 있었다.
"레티샤! 위험하다, 바깥의 마력이 역류하고 있어!"
디트리히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레티샤는 이미 기단 앞에 무릎을 꿇은 뒤였다.
기단 표면은 적들의 결계 분쇄기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가루와 붉은 주박의 잔해로 얼룩덜룩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쩍쩍 갈라진 돌 틈 사이로 시커먼 탁기가 부글거리며 솟구쳤다.
레티샤는 주머니에서 바람의 깃털 씨앗을 꺼냈다. 손바닥 위에서 파르르 떨리는 연둣빛 씨앗은 마치 살아 있는 아기 새처럼 여린 온기를 품고 있었다.
"부탁할게... 우리 집을, 내 사람들을 지켜줘."
지독한 가난 속에서 늘 혼자 살아남아야 했던 그녀였다. 타인의 호의를 믿지 못해 늘 철저하게 손익을 계산하고,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혹사했던 상처 많은 소녀. 하지만 지금 그녀의 곁에는 목숨을 걸고 앞을 막아서는 대공과, 제 옷자락을 믿음직하게 쥔 어린아이가 있었다.
처음으로 대가 없이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강렬한 온정이 레티샤의 심장에서 뜨겁게 뿜어져 나왔다.
그 순수한 떨림과 함께, 레티샤의 감긴 속눈썹 사이로 맑은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눈물은 손바닥 위의 씨앗을 적신 뒤, 기단의 가장 깊고 어두운 균열 틈새로 씨앗과 함께 쏙 빨려 들어갔다.
스르릉-!
씨앗이 기단 틈 속에 단단히 박히는 순간, 사방의 공기가 일시적으로 멈췄다.
"어...?"
문밖에서 결계 분쇄기를 가동하며 조소를 흘리던 흑기사단 대원 하나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고개를 들었다.
다음 순간, 대지 밑바닥에서부터 엄청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쿠구구구궁!
"반짝."
작은 영혼의 씨앗이 정화 결계석의 미세한 균열과 접촉하자마자,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한 초록빛 섬광이 대지를 뚫고 솟구쳤다.
휘이이이이익-!
그것은 단순한 마력의 방출이 아니었다. 공방 마당 전체를 휘감는 거대한 바람의 소용돌이였다. 소용돌이는 미친 듯이 회전하며 오두막 주변을 잠식하던 검은 저주 가루들을 한 톨도 남김없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바람이지? 마도 장치가 역류한다!"
바깥에서 당황한 기사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바람의 깃털 씨앗이 일으킨 자정 작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땅 밑바닥에 고여 있던 썩은 오물 마력과 적들이 뿌려댄 검은 독기들이 소용돌이의 중심부로 빨려 들어가더니, 이내 맑고 투명한 초록빛 자연 마력으로 급격히 정화되기 시작했다.
탁한 어둠이 걷히고, 공방 주변은 순식간에 싱그러운 숲의 향기로 가득 찼다.
[시스템 가계부가 동기화됩니다.] [기단 내 고밀도 정화 에너지 충전율: 10%... 40%... 80%... 100% 돌파!!!] [예비 전력 포화 상태 돌입!]
머릿속에서 기계적인 알림음이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레티샤의 눈앞에 반짝이는 황금빛 홀로그램 창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파아아앗!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가 눈앞에서 터지는 것처럼, 찬란한 별빛 사슬이 얽히며 굳게 잠겨 있던 가계부의 신비로운 책장이 스스로 넘어갔다.
[특수 영양 처방 레시피 해금!] ['정령왕의 바람결 마들렌'의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레티샤의 시야에 가계부가 제안하는 새로운 디저트의 정보가 선명하게 내려앉았다.
* * *
[정령왕의 바람결 마들렌 (SSR급 처방식)] - 효능: 극심한 영양 정체와 오염된 마력 회로를 단 1초 만에 자정(自淨)하며, 대상의 신체 주변에 '바람의 장막'을 형성해 모든 유해한 타격을 튕겨냅니다. - 재료: 바람의 기류가 깃든 밀가루, 정제된 이슬 설탕, 싱그러운 라임 즙, 애플민트 잎. - 미각 묘사: 1) 후각: 오븐 문을 여는 순간, 첫 서리가 내린 새벽 숲속을 거니는 듯한 싱그럽고 알싸한 애플민트의 후각적 청량함이 온 사방을 가득 채웁니다. 뒤이어 노릇하게 구워진 버터의 묵직하고 고소한 풍미가 달콤하게 코끝을 감싸 안습니다. 2) 미각: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겉면의 단단한 크러스트가 바삭하게 부서지며 입안 가득 톡 쏘는 상큼한 라임 즙의 미각적 자극이 혀끝을 부드럽게 깨웁니다. 3) 식감 및 감각: 마들렌의 속살은 마치 가벼운 구름을 씹는 듯 몽글몽글하고 보들보들하며, 삼키는 순간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시원한 박하 향이 온몸의 막힌 혈관을 뻥 뚫어주는 듯한 극상의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 * *
"이건..."
레티샤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레시피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고, 지쳤던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오두막의 부서진 틈새로 새어 들어오던 적들의 살기 어린 마력이, 새로이 피어난 초록빛 결계막에 부딪혀 흔적도 없이 소멸하고 있었다.
위이이이이잉-!
수호 공방 거대 방어막이 투명하고 단단하게 재생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푸른빛 결계보다 훨씬 더 짙고 단단한, 에메랄드빛의 거대한 반구형 장막이 오두막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말도 안 돼... 결계가 스스로 재생하고 있다고?"
바깥에서 대기하던 흑기사단원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결계 분쇄기가 오히려 역풍을 맞아 산산조각이 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 타버린 장작 더미인 줄 알았더니, 발악을 하는구나!"
아나톨의 부관이 이빨을 갈며 칼을 치켜들었다.
"전원, 물리력을 동원해 돌파해라! 저까짓 바람막이쯤은 기사단의 합격술로 찢어발길 수 있다!"
"오오오오!"
수십 명의 흑기사들이 검에 시커먼 마력을 실어 일제히 결계를 향해 돌진했다. 그들의 검날이 허공을 가르며 에메랄드빛 방어막을 강타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웅-!
결계의 표면이 마치 물랑물랑한 젤리처럼 안쪽으로 부드럽게 휘어지더니, 이내 엄청난 탄성 에너지를 머금고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어...?"
가장 먼저 검을 들이밀었던 기사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쾅-! 쿠르릉!
"으아아아악!"
신비한 자연 바람의 기적이 완벽하게 가시화되며, 공방 전체를 대결계 신역으로 완벽하게 환골탈태시킨 힘이 폭발했다. 결계에 닿은 기사들의 무식한 완력과 오염된 마력이 그대로 역방향의 탄성 에너지가 되어 그들에게 되돌아갔다.
"커헉!"
"몸이... 뒤로 밀려...!"
돌격하던 수십 명의 흑기사들이 마치 벽에 부딪힌 공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허공을 볼품없이 날아간 기사들이 흙바닥과 나무 밑동에 처박히며 비명을 질렀다. 무거운 갑옷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방에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단 한 번의 충돌로 포위망의 절반이 초토화된 것이다.
오두막 안에서 창밖을 지켜보던 레온이 방방 뛰며 기뻐했다.
"우와아아! 찌지리 악당들이 하늘을 날아다녀요! 삼촌, 저거 봐봐요! 대따 웃겨!"
디트리히 역시 검을 쥔 손의 힘을 슬그머니 풀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황실의 정예 기사단이 고작 시골 오두막의 결계 탄성에 밀려 낙낙하게 굴러떨어지는 광경은 그의 상식 밖이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레티샤를 돌아보았다.
"레티샤... 그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레티샤는 기단 옆에 서서 품위 있게 옷자락을 털어내며 생긋 웃어 보였다. 주머니 속의 가계부가 짤랑이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저 우리 공방의 '무단 침입 방지 시스템'을 조금 업그레이드했을 뿐이죠."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무기력함이나 불안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확실한 자산을 손에 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단단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디트리히 님."
레티샤가 그를 돌아보며 검지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결계가 이렇게 튼튼해졌으니, 이제 알바생 업무에 집중해 주셔야겠어요. 바깥 구경은 그만하고, 어질러진 바닥 청소부터 시작하시죠. 일당 50실버 값은 톡톡히 하셔야 하니까요?"
디트리히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황실의 제1황자이자 제국의 전신이라 불리던 자신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빚 독촉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가슴속에 차오르는 것은 불쾌함이 아닌, 묘한 안도감과 간지러운 웃음이었다.
"하... 알겠다, 고용주여. 청소든 뭐든 기꺼이 하지."
그가 장난스럽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들의 머리 너머로 에메랄드빛 결계가 밤하늘의 오로라처럼 아름답게 너울거리며, 그 어떤 침입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완벽한 신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영구적인 가계의 영구 결계가 마침내 완전한 형태로 그 위용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그러나.
"크으으으... 이 보잘것없는 오두막에 이런 힘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결계 너머,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간신히 일어선 기사들 사이로 묵직한 발소리가 울렸다.
스으으으.
기사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다. 그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사내, 흑사자 기사단의 절대 수장이자 황후의 가장 날카로운 사냥개인 아나톨 대장이었다.
그의 얼굴은 흙먼지와 분노로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오두막 중앙에 서 있는 레티샤와 디트리히를 차갑게 꿰뚫었다.
"하지만 겨우 이까짓 바람막이로 제국의 의지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아나톨이 거칠게 손짓하자, 숲속 어둠 속에서 거대한 쇠바퀴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고고고고고-!
안개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온통 검은색 쇠붙이로 주조된 흉측하고 거대한 대포였다. 대포의 포신에는 마력을 강제로 빨아들여 파괴적인 광선으로 변환하는 붉은색 주술 기하학 문양들이 살벌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황실 비전의 공성 무기이자, 단 한 발로 고대 성벽마저 가루로 만든다는 '강제 분쇄 마도 대포'였다.
"결계째로 먼지로 만들어 주마."
아나톨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대포의 뒤편으로 걸어갔다. 그의 두꺼운 손가락이 붉게 달아오른 대포의 거대한 공이를 천천히 당겼다.
철컥-!
포구 끝에 파괴적인 검은 빛무리와 폭발적인 마력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응축되기 시작했다. 공방의 대지가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