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황실 암살단 전위대를 분쇄한 디트리히가 무거운 대검을 바닥에 꽂았다. 피로 물든 검을 거두며 지면 위에 쓰러진 레티샤를 향해 급히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였다.
쿠구구궁!
그의 왼쪽 가슴팍, 옷자락 너머에 숨겨진 흉터 부위의 마력 핵이 기괴한 붉은빛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억...!"
짧은 비명과 함께 디트리히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단단하게 버티고 서 있던 그의 커다란 몸이 마치 모래성처럼 힘없이 무너지며, 차가운 오두막 바닥 위로 거칠게 고꾸라졌다. 검은 망토가 바닥의 먼지와 피붙이를 쓸어안으며 거칠게 펄럭였다.
"삼촌...! 삼촌 아푸디 마아...!"
어린 레온이 다급하게 달려가 디트리히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고사리 같은 손이 그의 피 묻은 뺨을 문질렀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황자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갈 뿐이었다.
레티샤는 입술을 깨물며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 카누레를 완성하며 온정적 감정 에너지와 체력을 대거 소모한 탓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시야가 흐릿하게 번졌지만 그녀는 억지로 정신의 끈을 부여잡았다.
지금 디트리히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그가 남긴 50,000루그의 거대한 채무 계약서가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은 둘째 치고, 황실의 추격자들로부터 이 오두막과 자신을 지켜줄 가장 강력한 방패가 사라지는 셈이었다. 철저히 손익을 계산해야 하는 뇌리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레온, 삼촌을 침대로 옮겨야 해. 이리 와서 도와줘."
"응...! 레온이 도울꼬야...!"
레온이 훌쩍이며 디트리히의 한쪽 팔을 안간힘을 쓰며 지탱했다. 레티샤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혼절한 디트리히를 겨우 침대 너머로 눕혔다.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마력 핵 흉터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붉은 거미처럼 꿈틀대며 검붉은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스위트 가계부가 허공에 반투명한 푸른빛 창을 띄우며 날카로운 경고음을 울렸다.
[※ 위급: 대상 '디트리히폰 아스터'의 핵심 마력원이 고농도 황실 주박 마력에 침식당하고 있습니다.] [마력 핵 붕괴율 87% 돌입. 영양 상태 극도 불량으로 인한 마력 정체 발생.] [긴급 처방이 필요합니다. 대량의 '정화 마력 응축식'을 즉시 투여하지 않을 경우, 대상은 30분 이내에 마력 자폭에 이르게 됩니다.]
"처방식... 처방식 레시피를 열어줘."
레티샤가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계부의 페이지가 거칠게 넘어가더니, 눈부신 초록빛 활자가 허공에 내려앉았다.
[긴급 처방 디저트: '에메랄드빛 피스타치오 포레스트 케이크'] [필요 대가: 소유자의 잔여 실제 체력 45%, 온정적 감정 에너지 55% 강제 지불] [※ 경고: 현재 소유자의 체력 및 감정 잔량이 위험 수치에 도달해 있습니다. 본 처방식을 완성할 경우, 극심한 영양실조 및 감정 마비 상태(무기력증)에 빠지게 됩니다.]
레티샤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체력 45%에 감정 55%라니. 이걸 치르고 나면 자신은 정말로 영혼이 텅 빈 인형처럼 변해버릴지도 몰랐다. 가난과 버림받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은 내면에서 소리쳤다.
'타인을 위해 너를 희생하지 마. 결국 아무도 널 구해주지 않아. 공짜 호의는 없어.'
하지만 침대 위에서 밭은숨을 몰아쉬는 디트리히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쥐어짜듯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 손은 언제나 무뚝뚝하게 앞치마를 받아 들고, 그녀를 대신해 무거운 장작을 패고, 습격이 올 때마다 가장 먼저 앞장서서 검을 휘두르던 손이었다.
"계산은... 나중에 철저히 청구하면 돼."
레티샤는 이 악물고 가계부의 승인 버튼을 내리눌렀다.
오두막의 주방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간 그녀는 밀가루와 설탕, 그리고 미리 갈아둔 고소한 피스타치오 가루를 양푼에 쏟아부었다. 몸속의 생명력이 실시간으로 빠져나가는 감각이 뼛속까지 시리게 파고들었다. 머리카락 한 올조차 무겁게 내려앉는 피로감 속에서, 그녀는 기계적으로 거품기를 휘둘렀다.
화덕의 열기가 오두막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달콤하고 진한 버터 향이 공기 중으로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달콤하게 졸인 설탕이 열에 녹아내리며 풍기는 은은한 바닐라의 풍미가 코끝을 부드럽게 간지럽혔다. 이어 볶은 피스타치오의 묵직하고 고소한 견과류 향취가 공기 중의 무거운 피비린내를 지우며 몽글몽글하게 피어올랐다. 마지막으로 시트 사이에 바를 베리 생크림에서 우러나오는 새콤하고 싱그러운 딸기 향취까지 더해졌다.
세 가지의 감각적인 후각 자극이 오두막의 어두운 공기를 정화하듯 스며들었다.
마침내 초록빛 시트 위에 새하얀 크림이 덧입혀진 피스타치오 포레스트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입안에 넣는 순간, 혀끝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생크림의 몽글몽글한 질감과 피스타치오의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단맛이 뇌신경을 자극하는 기적의 치유식이었다.
"디트리히... 이거 먹어요..."
레티샤는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침대로 가, 그의 입술 사이로 부드러운 크림과 시트를 밀어 넣었다.
꿀꺽, 목울대가 움직이며 마력 케이크가 그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순간, 그의 가슴팍에서 요동치던 붉은 주박의 빛깔이 서서히 녹색 정화 마력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붕괴해가던 마력 핵이 기적처럼 안정을 되찾고, 창백하던 피부에 옅은 온기가 돌아왔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아..."
케이크 접시를 내려놓는 레티샤의 손에서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바닥으로 도자기 접시가 떨어지며 날카로운 파편을 남기며 깨어졌다. 레티샤의 몸이 그대로 바닥을 향해 꺾였다. 가계부가 약속한 대가 지불이 완료된 것이었다.
체력 45% 차감. 온정적 감정 에너지 55% 강제 흡수.
순식간에 몸의 온도가 급격히 하강했다. 손끝부터 시작된 한기가 심장을 향해 차갑게 기어올랐다. 머리카락 한 올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의 변화였다. 머릿속에서 모든 감정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슬픔도, 걱정도,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극단적으로 차갑고 기계적인 이성만이 남았다.
'손해다.'
레티샤는 바닥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결국 또 내 것을 내어주고 나만 손해를 보았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저 남자를 살리기 위해 내 생명력을 팔아치우다니. 나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한 거야.'
가슴 깊은 곳에서 버림받았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차갑게 되살아났다.
돈을 주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던 고아원의 원장, 자신을 쓸모없다고 버려두고 떠났던 이들의 차가운 눈빛. 역시 세상에 공짜 호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적인 손익계산서가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굴러가며, 스스로를 향한 혐오와 불신이 빙하처럼 얼어붙었다.
"누나아...! 누나 왜 그래요? 흐앙, 눈 떠어...!"
레온이 레티샤의 차가운 볼을 비벼대며 울었지만, 레티샤는 그 어떤 동요도 일지 않았다. 그저 시끄러운 소음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며, 이대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손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르륵.
그때, 침대 위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레티... 샤...?"
피스타치오 케이크의 정화력으로 간신히 의식을 회복한 디트리히였다. 그는 붉은 피가 가득 묻은 입술을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침대 아래로 발을 디뎠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바닥에 낙엽처럼 쓰러져 차갑게 식어가는 레티샤를 포착했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봐...! 정신 차려...!"
디트리히는 자신의 몸에 남은 내상이 채 아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비틀거리며 기어가 레티샤의 몸을 거칠게 끌어안았다.
그의 품은 평소보다 훨씬 뜨거웠지만, 레티샤의 몸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디트리히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가, 소름 끼칠 정도의 냉기에 주먹을 꽉 쥐었다.
"바보 같은... 또 나 때문에 네 몸을 갈아 넣은 건가!"
그의 목소리에 난생처음으로 이성을 잃은 듯한 두려움과 절박함이 뿜어져 나왔다. 오만하고 냉정했던 제1황자의 가면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레티샤는 초점 없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바보 같긴요. 그러니까 얼른 5만 루그나 갚아요. 아니, 이제 이자가 붙어서 10만 루그예요. 죽으면 안 돼요, 내 돈...'
마음속으로 냉소적인 계산을 굴려보았지만, 입술은 굳어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의 계산기는 쉴 새 없이 두드려졌지만, 몸은 서서히 죽음을 향해 직진하고 있었다.
"죽지 마라. 내 허락 없이 죽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
디트리히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왼쪽 가슴에서 은빛의 마력이 다시금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황실 특유의 고귀하고 순수한 근원 마력이었다.
그것은 그의 생명력 그 자체이자, 한 번 소모하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영혼의 정수였다.
"삼촌...! 안 돼, 그거 쓰면 삼촌 아파...!"
레온이 비명을 지르며 말렸지만, 디트리히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을 레티샤의 차가운 가슴팍 위에 얹었다.
"가져가라. 내 목숨이든, 마력이든 전부 가져가서 살아라."
우웅-!
그의 손바닥에서 찬란하고 온화한 은빛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레티샤의 가슴 깊은 곳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마력의 주입이 아니었다. 레티샤를 살려야만 한다는 그칠 줄 모르는 갈망, 그녀를 잃고 싶지 않다는 처절한 보호의 결의가 담긴 영혼의 헌신이었다.
뜨거운 온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던 레티샤의 심장벽을 강타했다.
투둑, 투두둑.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차가운 빙벽에 거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왜...?'
레티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의 목숨을 깎아 먹으면서까지 왜 나를 살리려는 거지? 나는 그저 빚쟁이이자, 까칠한 고용주에 불과한데. 어째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이토록 따뜻한 것을 내어주는 거지?'
디트리히의 은빛 마력은 그녀의 마음속 가장 깊고 어두운 곳, 가난과 버림받음의 기억으로 가득 찬 방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곳에 쌓여 있던 불신과 상실의 고통이, 그의 우직하고 순수한 온정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공짜 호의는 없다고 믿었던 그녀의 세상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이 남자는 계산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오직 자신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의 영혼을 통째로 갈아 넣고 있었다.
따스함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며, 완벽하게 꺼져가던 감정의 불씨가 다시금 타올랐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차가운 뺨을 타고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냉혹한 이성 뒤에 숨겨두었던, 살고 싶다는, 그리고 사랑받고 싶다는 가장 솔직한 온정의 눈물이었다.
그 순간, 레티샤의 품속에 있던 스위트 가계부가 눈부신 황금빛으로 폭발하듯 빛나기 시작했다.
*띠리링-!*
오두막 전체를 맑게 울리는 청아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특이 사항 감지: 고유 계약자 간의 완벽한 '쌍방 구원 인자'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등가교환 법칙의 예외 조항이 발동합니다.] [상호 헌신과 결의의 융합으로 인한 '대가 완화 임시 계약' 성립!] [소유자의 흡수된 감정 에너지가 100% 반환되며, 생명력 정화 역류 현상이 발생합니다.]
황금빛 마력과 은빛 마력이 서로를 껴안듯 어우러지며, 회오리바람처럼 두 사람의 몸을 감쌌다.
바닥에 흩어졌던 피스타치오 케이크의 은은한 향취가 극대화되어 피어오르고, 레티샤의 창백했던 뺨에 기적처럼 붉은 연홍빛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차갑게 식었던 손끝에 뜨거운 피가 돌고, 천근만근 무겁던 눈꺼풀이 가볍게 떠졌다.
동시에 디트리히의 얼굴에도 핏기가 돌아왔다. 그의 가슴팍에 아로새겨졌던 붉은 주박의 흉터는 완전히 정화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하아... 하아..."
레티샤는 숨을 몰아쉬며 디트리히의 품 안에서 눈을 떴다.
그의 단단한 가슴이 자신의 심장과 맞닿아 쿵쾅쿵쾅 뛰는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토록 무섭던 한기와 무기력함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온몸을 가득 채운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늑함과 안도감이었다.
"레티샤... 정신이 드는가?"
디트리히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오직 그녀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진실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레티샤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았... 어요. 그리고 당신도..."
"다행이군."
디트리히는 그제야 안도한 듯,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평소의 오만함은 간데없이,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한 전폭적인 구원의 온기만이 가득했다.
레티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았던 불신과 트라우마가, 이 눈물 젖은 순간 속에서 완전히 씻겨 내려갔다. 돈보다 더 소중한 것, 대가 없이도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진짜 '내 편'이 생겼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을 벅차게 채웠다.
레온이 두 사람의 허리를 동시에 꼬옥 껴안으며 소리쳤다.
"우아아앙! 누나랑 삼촌이랑 이제 안 아푸다! 다행이야아...!"
따뜻한 온기와 달콤한 케이크 향이 가득한 오두막 안에서, 세 사람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비로소 살아남았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그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쩌저적! 콰아아앙-!
오두막 지붕을 받치고 있던 기둥이 비명 같은 파열음을 내며 들썩였다. 천창을 덮고 있던 푸른빛 정화 결계막이 마치 유리창이 깨지듯 사방으로 날카로운 파편을 뿌리며 금 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허공에 붉은색 경고 활자가 비명처럼 회전하며 나타났다.
[!!! 극도 위기 경보 !!!] [마력 역류 폭발의 여파로 '정화의 결계석' 내구도가 한계를 초과했습니다.] [현재 잔여 결계 마력: 0.8% !!!] [결계 완전 소멸까지 남은 시간: 00시간 12분...]
삐이이이이-!
오두막의 천틀을 장작 패듯이 강타하는 정화 제어 장치 시스템의 적색 비상 사이렌이 붉은 핏빛 글씨와 함께 광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안개 숲 너머에서, 결계의 틈을 노린 흉포한 그림자들이 서서히 오두막을 향해 다가오는 불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