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데가 돌아서서 오두막 밖을 나서는 순간, 숲의 전방이 암적색 불꽃 연기의 거품으로 뒤덮이며 황후의 직속 1대장 '아나톨'이 이끄는 100인의 황실 흑기사들의 말굽 소리가 지축을 맹렬히 뒤흔들었다.
쿵, 쿵, 쿵!
대지가 거대한 짐승의 심장처럼 요동쳤다. 오두막 선반 위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던 유리병들이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 났다. 매끄러운 바닐라 시럽과 붉은 딸기 청이 카펫 위로 사방에 튀어 얼룩을 남겼다. 방금 전까지 오븐 안에서 구워지던 카누레의 달콤하고 알싸한 럼주 향기가 순식간에 매캐한 탄내와 차가운 쇠비린내에 휩쓸려 지워졌다.
"꺄악!"
레온이 레티샤의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작게 비명을 질렀다. 꼬마의 온몸이 낙엽처럼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 레티샤는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고 레온을 품에 꼭 안았다. 품에 안긴 작은 몸이 터무니없이 가볍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괜찮아, 레온. 누나가 여기 있어. 후우, 숨 크게 쉬자."
레티샤는 입술을 깨물었다. 가계부 시스템의 대가로 지불한 체력과 온정적 감정이 뭉텅이로 깎여 나간 탓에,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심장이 삐걱거리며 뛰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가는 차가운 무기력증 속에서도, 품 안의 아이가 흘리는 뜨거운 눈물방울만큼은 살갗을 찌르는 현실의 통증으로 다가왔다.
쿠구구궁!
오두막 천장에서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문손잡이를 잡고 있던 힐데가 홱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주황색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미친 황실 놈들! 국경 지대에서 이 난리를 피우겠다고? 미치광이 사냥개새끼들을 아주 제대로 풀었군!"
힐데가 거칠게 침을 뱉으며 문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창밖의 안개 숲은 이미 지옥의 한복판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암적색 안개 사이로,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는 제국의 살수 기마군단과 그리핀 마수대의 그림자가 보였다. 날카로운 부리와 강철 같은 발톱을 빛내는 그리핀 수십 마리가 허공을 가르며 오두막을 향해 급강하하고 있었다. 그들이 날개짓을 할 때마다 칼날 같은 돌풍이 몰아쳐 안개 숲의 고목들이 허리가 꺾인 채 비명을 질렀다.
콰아아앙!
오두막을 감싸고 있던 정화의 결계가 그리핀들의 발톱질 한 번에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이미 내구성이 12%까지 떨어진 결계 제어 장치가 한계를 맞이한 것이다. 결계석의 미세한 균열 사이로 퍼런 마찰 스파크가 튀었고, 그 틈을 타 스며든 강력한 돌풍의 주박이 오두막의 유리창을 사정없이 깨부쉈다.
쨍그랑!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돌풍이 방 안을 헤집으며 레티샤의 머리카락을 미친 듯이 휘감았다. 살을 깎아낼 듯한 칼바람이 레티샤와 레온을 덮치려던 바로 그 순간.
스윽.
눈부시도록 거대한 그림자가 레티샤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등 뒤로 묶은 머리카락이 거친 바람에 흩날렸다. 디트리히였다. 그는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유리 파편조차 개의치 않는다는 듯, 오직 전방의 적들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의 넓은 등판이 폭풍을 완전히 차단해 주자, 레티샤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디디...!"
레온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디트리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제 검의 자루를 꽉 쥘 뿐이었다.
"레티샤."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소란스러운 바람 소리를 뚫고 레티샤의 귓가에 정확히 꽂혔다.
"네."
"그 카누레인가 하는 디저트, 완성되려면 얼마나 남았지?"
레티샤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가장 중요한 촉매인 '바람의 깃털 씨앗'과 '역류 파편'을 반죽에 고정하고 막 굽기 시작했어요. 완전히 안착하려면 최소한 15분은 필요합니다. 그전까지 이 오두막이 버티지 못하면, 결계는 완전히 소멸하고 반죽도 잿더미가 될 거예요."
디트리히가 픽 웃었다. 그 웃음에는 황실의 제1황자로서 가졌던 오만함과, 동시에 이곳에서 물걸레질을 하며 쌓인 기묘한 친근함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15분이라. 설거지 세 판을 끝내기에도 넉넉한 시간이지."
그가 손을 뻗어 자신이 입고 있던 낡은 셔츠의 소매를 거칠게 찢어발겼다. 찌익 하는 소리와 함께 탄탄하게 단련된 그의 전신 근육과 팔뚝의 흉터들이 날것 그대로 드러났다. 그동안 공방에서 장작을 패고 가구를 나르느라 더욱 단단해진 몸이었다.
"디트리히 씨, 지금 몸 상태로 마력을 쓰면 안 돼요! 심장의 봉인이 역류해서 정말로..."
레티샤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디트리히는 이미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빚을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고 말했을 텐데."
그가 검을 비스듬히 내려쥐었다.
"내 목숨값, 그리고 이 꼬맹이의 몫까지 합치면 내 평생을 여기서 부려 먹어도 모자라겠지.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선불을 지불하도록 하지."
둥!
그의 발끝이 지면을 박찼다.
그 순간, 그의 몸속 깊은 곳에서 황가 고유의 은빛 마력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히 파괴적인 마력이 아니었다. 레티샤가 그동안 그에게 먹여왔던 정밀 영양 디저트들—마력을 순환시키고 꽉 막힌 기혈을 뚫어주던 숨은 처방들의 효능이 그의 혈관을 타고 완벽하게 정렬되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솟구쳤다.
"어, 저 미친놈이 지금 맨몸으로 그리핀 무리에 뛰어들었다고?!"
힐데가 비명을 지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붉은 안개를 뿜어내며 하강하던 그리핀 마수대의 선두 기사들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른 디트리히를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에 비장한 살기가 스쳤다.
"제1황자다! 목을 베어 황후 폐하께 바쳐라!"
적들의 고함이 숲을 울렸다. 수십 자루의 강철 창이 일제히 디트리히의 심장을 겨냥해 쏘아져 내려왔다. 지상에서는 살수 기마군단의 시커먼 화살비가 하늘을 뒤덮으며 디트리히의 도주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사방이 죽음의 그물이었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으로 추락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사내는 제국의 전신(戰神)이라 불리던 사내였다.
"하찮은 피라미들이 감히 누구의 이름을 입에 올리느냐."
디트리히의 눈동자가 차가운 은빛으로 완전히 물들었다.
그가 허공에서 가볍게 회전하며 검을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스으으으읍-!
주변의 거친 돌풍이 그의 검신 끝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레티샤가 가슴 졸이며 그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바닥 안에서, 8화에서 얻었던 '바람의 깃털 씨앗'이 뿜어내는 가느다란 마력 기류가 디트리히의 은빛 검기와 공명하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비켜라."
그리고, 일격.
콰아아아아앙-!!!
하늘을 두 쪽으로 갈라놓을 듯한 거대한 은빛 섬광이 반원을 그리며 허공을 휩쓸었다. 그것은 단순한 검기가 아니었다. 폭풍을 응축해 터뜨린 은빛의 파도였다.
카가가각! 콰창!
단 한 번의 가로베기에, 돌격해 오던 그리핀 전위대 수십 마리의 단단한 철갑이 종잇장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거대한 마수들과 그 위에 타고 있던 흑기사들이 사지가 해체되어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암적색 불꽃 연기가 은빛 폭풍에 쓸려 순식간에 정화되며 푸른 하늘의 일부분이 그 틈새로 드러났다.
"이, 이게 무슨...!"
지상에서 돌격을 준비하던 아나톨의 살수 기마군단이 일제히 말머리를 멈추며 경악했다.
단 한 명의 사내가 허공에 서서 폭풍을 지배하고 있었다. 낡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 바닥을 쓸던 그 하찮아 보이던 알바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제국을 피로 물들였던 전쟁의 주신만이 그곳에 강림해 있었다.
쿵!
디트리히가 가볍게 오두막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그의 발끝이 지붕을 디딜 때마다 은빛 파동이 퍼져나가며, 오두막을 압박하던 적들의 살기와 주박을 완벽하게 밀어냈다. 고압의 은빛 결계가 일시적으로 오두막 전체를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
"접근을 불허한다."
그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안개 숲 전체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이곳은 내 고용주의 일터다. 먼지 한 톨이라도 더럽히는 자는 영혼까지 베어내겠다."
그 압도적인 무력과 위압감에, 100인의 황실 기사단이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그들의 눈에는 명백한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오두막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힐데는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저, 저 자식... 진짜 황자였잖아? 아니, 황자 중에서도 저런 괴물이..."
레티샤는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계산기처럼 정밀한 그녀의 눈은 디트리히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무리하고 있어요. 아무리 제 디저트로 마력을 임시 회복했다고 해도, 심장의 저주가 풀린 건 아니에요. 단 한 번의 일격에 모든 마력을 쏟아부은 거예요.'
레티샤가 주머니 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디트리히의 은빛 펜던트를 꽉 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손바닥을 자극했다. 아직 카누레는 다 구워지지 않았다. 시간은 단 5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레티샤의 불안은 틀리지 않았다.
지붕 위에서 검을 비스듬히 쥐고 적들을 압도하던 디트리히의 눈동자에서 서서히 은빛이 걷히기 시작했다.
"윽...!"
그의 가슴 흉터 부위에서 붉은색 검은 주술의 실핏줄이 번쩍이며 점멸했다. 황후가 심어둔 혹독한 마력 핵의 저주가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컥!"
디트리히가 검을 지팡이 삼아 지붕 위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한 움큼 울컥 쏟아져 내렸다. 지붕의 기와를 타고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디디-!!!"
레온의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이 깨진 창문 밖으로 울려 퍼졌다.
디트리히의 은빛 마력 장벽이 신기루처럼 흔들리며 깨어지기 시작했고, 그 너머에서 기회를 노리던 아나톨의 눈동자가 잔혹한 희열로 번뜩였다.
"끝이군, 황자 전하."
아나톨이 말안장 위에서 검은 대검을 치켜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냥감을 완벽하게 막다른 길로 몰아넣은 사냥꾼의 잔인한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전원, 돌격하라! 황실의 반역자들에게 황후 폐하의 단죄를 내린다!"
그의 명령과 동시에, 흑기사들이 일제히 고삐를 당겼다. 지면을 박차는 군마들의 발굽 소리가 오두막의 고요를 산산이 깨부쉈다. 하늘에서는 남은 그리핀 마수들이 부리를 쩍 벌리며, 디트리히가 쓰러진 지붕을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밀고 수직 강하했다.
"디디...! 아프디 마여, 흐으앙... 누나, 디디가, 디디가 피 흘려여어..."
레온이 레티샤의 멱살을 잡고 목놓아 울었다. 아이의 눈물이 레티샤의 깃털처럼 가벼워진 뺨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레티샤는 입술을 짓씹었다. 가계부의 대가 지불로 인해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듯 오한이 들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무기력증이 그녀의 영혼을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매달 꼬박꼬박 청구되는 결계 유지비와, 아직 한 푼도 갚지 못한 50,000루그짜리 초고액 알바생의 얼굴이 번갈아 머릿속을 스쳤다.
'여기서 무너지면... 내 낙원도, 내 돈도, 전부 끝이야.'
그녀는 기어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가느다란 의지를 쥐어짜 냈다. 기계적인 손익계산 너머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피를 토하며 검을 휘둘렀던 그 고고한 황자의 뒷모습이 아른거렸다. 공짜 호의는 믿지 않지만, 이미 지불받은 구원의 대가는 반드시 갚아야만 했다.
[경고: 손님 '디트리히폰 아스터'의 마력 핵 주술 역류율 95%.] [현재 '오염원 흡수 극대화 처방용 카누레'의 완성도: 60%. 완성까지 남은 시간 8분.]
"8분..."
레티샤는 가방 속에서 힐데에게 받았던 '고대 장벽의 역류 파편'을 꺼내 들었다. 검고 칙칙한 돌멩이 같던 파편이, 다가오는 적들의 검은 마력을 감지하자마자 웅웅거리며 기분 나쁜 공명을 시작했다.
"레티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 몸으로 나가면 뼈도 못 추려!"
힐데가 다급하게 그녀의 소맷자락을 붙잡았지만, 레티샤는 차갑게 그 손을 뿌리쳤다.
"제 가게의 손님을 상하게 두는 건, 제 장사 철학에 위배돼요. 힐데 씨."
레티샤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깨진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오두막 한구석에서 스파크를 튀기며 죽어가던 '결계 제어 장치'의 홈에 역류 파편을 사정없이 밀어 넣었다.
화아아악!
순간, 파편이 장치와 결합하며 눈이 멀 것 같은 흑자색 빛을 뿜어냈다.
"크윽...!"
등가교환의 법칙은 잔인했다. 장치를 강제로 폭주시키는 대가로 레티샤의 남은 체력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시야가 핑 돌며 코끝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훅 끼쳤다. 입술을 깨물어 억지로 정신을 붙잡은 그녀가 장치의 레버를 끝까지 당겼다.
웅웅웅웅-!
오두막 외벽을 따라 흐르던 미세한 푸른빛 결계가, 순식간에 적들의 검은 마력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소용돌이 장막으로 변모했다.
그리핀들이 내뿜던 암적색 화염과 기사들의 투기가 오두막에 닿는 순간, 장막은 그 모든 파괴적인 에너지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기 시작했다. 흡수된 에너지는 고대 장벽의 성질을 따라 역방향으로 굴절되어, 돌격하던 흑기사들의 전면을 향해 강력한 충격파로 되돌아갔다.
콰콰콰쾅!
"으악! 마력이... 마력이 역류한다!"
"말들을 통제해라! 결계가 아군의 공격을 반사하고 있다!"
선두에 서 있던 기사들이 자신들이 쏘아 보낸 마력의 반동에 휘말려 말과 함께 사정없이 뒹굴었다. 오두막 코앞까지 들이닥쳤던 포위망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며 뒤엉켰다.
하지만 아나톨은 달랐다.
그는 역류하는 충격파 속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검을 흔들림 없이 쥐고 있었다. 그의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칠흑 같은 오라가 반사된 마력을 가차 없이 베어 가르고 있었다.
"조잡한 잔재주를 부리는군."
아나톨이 말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의 육중한 철갑 부츠가 흙바닥을 짓밟을 때마다, 기괴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결계의 흐름을 꿰뚫어 보듯, 역류 파편이 박혀 있는 제어 장치의 위치를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왔다.
"그깟 파편 하나로 제국 정예병의 진격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그가 대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대검의 날을 따라 황후가 하사한 저주받은 흑색 주박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타올랐다.
스으으읍- 콰아앙!
아나톨의 대검이 오두막의 결계 장막을 정면으로 내리찍었다.
"아...!"
레티샤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결계가 받는 충격이 가계부의 링크를 타고 그녀의 신경망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위장 깊은 곳에서부터 신물이 올라왔다.
쩌적, 쩌적...
장치에 박혀 있던 역류 파편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마력을 반사하는 고대 장벽의 파편이라 해도, 현 황후가 심어둔 정밀한 저주의 힘을 온전히 버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누나...! 누나아아!"
레온이 쓰러진 레티샤를 껴안고 울부짖었다.
문 밖에서는 지붕 위에서 겨우 몸을 일으키려던 디트리히가 다시금 각혈하며 지붕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투박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은빛의 구원자는 이제 검을 쥘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채, 차가운 흙바닥 위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완벽한 절망이었다. 아나톨의 입꼬리가 잔혹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황녀를 죽이고 황자를 참하여 폐하의 대업을 완성하라."
그가 대검을 매섭게 휘두르며 오두막의 깨진 창문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의 검 끝이 레티샤의 목덜미를 향해 무자비하게 쏘아져 들어오던 바로 그 순간.
*오븐 안에서 맹렬한 열기를 견디며 부풀어 오르는 카누레의 향취가 코끝에 스쳤다.* *설탕이 타들어가며 내뿜는 달콤 쌉싸름한 캐러멜의 탄내.* *그 뒤를 묵직하게 받쳐주는 진득한 타히티 바닐라 빈의 크리미한 단 향.* *그리고 마침내 열을 이기지 못하고 대기 중으로 확산되는 럼주의 알싸하고 짜릿한 자극.*
오두막 내부를 가득 채운 세 가지 감각적 조화가 극에 달했을 때.
*띠링-!*
오븐의 타이머가 날카롭고 청명한 기계음을 울리며 멈추어 섰다.
동시에, 레티샤의 눈앞에 가계부의 반투명한 안내창이 붉은 경고등 대신 눈이 시릴 정도의 황금빛 활자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처방식 '오염원 흡수 극대화 카누레' 조리 완료!] [특수 효과 '마력 역류 대정화(大淨化)' 단계가 활성화됩니다.] [※ 경고: 현재 장치의 내구도가 한계를 초과하여, 기동 즉시 오두막 반경 50m 이내의 모든 마력체가 급격한 속도로 정화 흡수됩니다. 이 과정에서 소유자의 '감정 에너지' 잔량이 0%로 강제 드레인 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레티샤는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를 훔치며, 아나톨의 검날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온기가 완벽하게 지워진 채, 오직 차갑고 투명한 이성만이 번뜩였다.
"실행... 해요."
그녀의 나지막한 속삭임과 함께, 오븐의 틈새로 상상을 초월하는 황금빛 캐러멜 마력이 폭풍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