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유황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아군 오두막 전체의 영양과 에너지를 대가 없이 지나치게 갈아 넣은 결계 제어 장치 중심의 핵심 결정석이 뚜둑 소리를 내며 거대한 실금이 간다. 기어이 사달이 나고야 만 것이다. 푸른빛 정화 결계의 보루가 무너져 내리는 불길한 소리가 발밑에서부터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이런 기괴하고 영리한 지략을 부릴 줄이야. 너는 대체..."
"말했잖아요. 짠순이 고용주를 얕보면 안 된다고..."
레티샤가 피식 웃으며 힘없이 대꾸했다.
하지만 그녀의 다리가 사정없이 후들거렸다. 가계부 시스템에 지불한 실제 체력 15%와 온정적 감정 에너지 20%의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혹독했다.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차갑고, 손가락 끝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영양실조로 인한 빈혈 증세가 덮치며 시야가 하얗게 바래갔다.
"레티샤!"
디트리히가 검을 던지듯 내려놓고 비틀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급히 붙잡았다. 차가운 그의 손길이 닿았지만, 가슴속의 감정이 마비된 레티샤는 아무런 설렘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누나아! 누나아, 아푸지 마아... 흐아앙..."
레온이 울먹이며 레티샤의 치맛자락을 꼬옥 쥐었다. 꼬마의 온기만이 유일하게 현실감을 붙잡아주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냥 서서 일하느라 피곤해서 그래요. 퇴근 시간도 지났고..."
레티샤가 기계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뚜둑-*
불길하고 둔탁한 소리가 공방 바닥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디트리히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이 소리는..."
오두막 전체를 지탱하고 있던 푸른빛 정화 결계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바닥 중앙, 결계 제어 장치가 숨겨진 지단의 틈새로 붉은 마력의 불꽃이 튀었다. 무리하게 은빛 마력을 끌어당겨 역류 폭발을 일으킨 여파가, 오두막 전체의 영양과 에너지를 대가 없이 지나치게 갈아 넣은 결계 제어 장치로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었다.
가계부 화면 위로 지독하게 붉은 경고창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위험! 무리한 마력 증폭 역류 효과로 인해 결계 제어 장치 중심의 핵심 결정석이 파손되었습니다!] [결정석 내구성: 12%] [결계 유지 가능 시간: 24시간] [24시간 이내에 결정석을 수리하거나 대체 마력원을 공급하지 않을 경우, 정화 결계가 완전히 소멸합니다.]
"뚜두둑, 쩍-."
바닥을 가로지르는 불길하고 날카로운 실금이 그들의 발밑까지 선명하게 뻗어 나갔다. 레티샤와 디트리히의 시선이 공중에서 무겁게 충돌했다. 수십 명의 적들이 대기하고 있는 이 안개 숲 속에서, 그들을 지켜주던 유일한 방패가 깨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결계가... 깨지고 있군."
디트리히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레티샤는 그의 품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가슴속에서 솟구쳐야 할 공포나 당혹감조차 가계부에 지불한 감정 대가 때문에 저 멀리 마취된 것처럼 아득했다.
"누나아, 이고 머그면 아푸지 아나? 레오니가 호오해주께에... 호오오..."
레온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레티샤의 차가운 손등을 감싸며 입바람을 불어넣었다. 아이의 동그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뚝뚝 떨어졌다. 그 따스한 눈물방울이 손등바닥에 닿을 때에야 레티샤는 겨우 현실의 감각을 아주 조금 되찾을 수 있었다.
"레온... 누나 괜찮아. 그냥 아주 잠깐, 단것이 부족해서 그래."
레티샤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마저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바보 같은 소리."
디트리히가 낮게 혀를 찼다. 그의 눈동자에 어린 것은 단순한 걱정을 넘어선, 짚어내기 힘든 복잡한 부채감이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무슨 손님맞이 타령인가. 일단 눕혀주지. 억지로 버티다간 결계가 깨지기 전에 네 부서진 몸뚱이부터 사그라질 테니까."
"안 돼요... 지금 누우면 손해가 너무 커요. 결계석이 깨지면 내 피 같은 공방이 날아가는데 어떻게 누워 있어요?"
레티샤가 이빨을 악물며 그의 단단한 팔뚝을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힘이 빠진 그녀의 손가락은 그저 그의 셔츠깃을 약하게 구길 뿐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머나, 내 소중한 비즈니스 파트너께서 아주 눈물겨운 치정극을 찍고 계시네."
공방 구석, 평소라면 손님들이 외투를 걸어두는 어두운 옷걸이 뒤편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흐릿한 안개 같은 마법의 장막이 걷히며, 가죽 코트를 두껍게 껴입고 커다란 방한용 모자를 눌러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모자를 벗어던지자 붉은 입술을 매끄럽게 말아 올린 힐데의 얼굴이 나타났다.
"힐데 씨...?"
레티샤가 흐릿한 시야를 깜빡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껏 숲 밖의 밀거래 루트를 뚫고 독점 계약서에 잉크도 안 마른 상태인데, 하루 만에 내 가장 유망한 공급처가 폭사하게 생겼다니. 장사꾼으로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있어야지."
힐데는 구두 굽 소리를 경쾌하게 내며 다가왔다. 디트리히는 본능적으로 레티샤의 앞을 가로막으며 검자루에 손을 올렸지만, 힐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가죽 장갑을 낀 손을 흔들었다.
"워워, 성질 급한 알바생 전하. 난 싸우러 온 게 아니야. 오히려 아주 아주 귀하고, 동시에 아주 아주 위험천만한 물건을 배달하러 온 배달원에 가깝지."
힐데가 품 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탁자 위에 올려진 주머니의 주둥이가 열리자, 안에서 거무죽죽하고 거친 돌조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얼핏 보면 평범한 광산의 폐석 같았지만, 그 주위로 흐르는 마력의 기류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주변의 빛과 열, 심지어 공기 중의 미세한 마력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가 불규칙하게 뿜어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뭐죠?"
레티샤가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황실 놈들이 숲 밖의 고대 수호성 장벽을 허물 때 빼돌린 파편이야. 마력을 비정상적으로 흡수하고 역류시키는 골칫덩이지. 제국 마법사들도 다루기 까다로워 폐기하려던 걸 내가 슬쩍 융통해 왔어. 장사꾼의 감이 속삭이더라고. 이 기괴한 돌덩이를 쓸 수 있는 건 제국 천지에 너 하나뿐일 거라고 말이야."
힐데가 돌조각을 레티샤의 코앞으로 밀어 보냈다.
레티샤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 파편에 손끝을 가져다 대었다.
*치지직-*
손끝이 닿는 순간, 뇌리 속에서 차갑고 이성적인 가계부의 기계음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특수 소재: '고대 장벽의 역류 파편' 감지 완료.] [물질 분석 시작...] [분석 결과: 외부 충격 마력의 98%를 흡수하여 역방향으로 증폭 방출하는 초고농도 역류 유도 성분 확인.] [경고: 일반적인 물리적 제련으로는 형태 유지가 불가능하며, 오직 고온의 연금술적 가열과 감정 에너지를 통한 고정화 작업만이 이 물질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복잡한 수식과 마력의 흐름도가 기계적으로 그려졌다. 레티샤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가계부에 지불한 대가로 얼어붙었던 이성이, 오히려 이 기계적인 계산 앞에서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건..."
레티샤의 입가가 미세하게 호선을 그렸다.
"장난이 아니군요. 힐데 씨, 당신은 정말 최고의 장사꾼이에요."
"칭찬은 고맙지만, 눈앞의 결계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데 그걸로 뭘 하겠다는 거지?"
디트리히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넓은 어깨가 고단함으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여긴 곧 황실의 추격대로 가득 차게 될 거다. 이 오두막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야. 지금이라도 레온을 데리고 피신해야 한다."
"피신이요? 어디로요?"
레티샤가 디트리히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감정이 마비된 그녀의 갈색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명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안개 숲을 벗어나면 빚쟁이들과 황실의 칼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나에게는 이 오두막이 유일한 집이고, 내 전 재산이에요. 난 절대로 내 집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아요."
"그럼 저 깨져가는 결계석을 보고만 있겠다는 건가?"
"아니요."
레티샤가 탁자 위의 파편을 움켜쥐었다. 거친 돌의 표면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 파편을 역이용하면 돼요. 적들이 우리를 죽이기 위해 쏟아부을 마력을 고스란히 빨아들여, 그 힘으로 적들의 심장부를 타격하고 자폭시킬 역폭탄을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그 폭발의 여파를 고스란히 정화 에너지로 변환해 우리 오두막의 영구 수호 울타리로 삼는 거죠."
디트리히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게 무슨... 적들의 공격을 흡수해 결계를 채운다고? 그런 마학적 공식은 제국 학술원에서도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주술이다."
"제국 학술원 늙은이들은 제과제빵을 모르니까요."
레티샤가 단호하게 대꾸했다.
"마력의 흐름은 디저트의 반죽과 같아요. 너무 강한 열을 가하면 겉만 타고 속은 익지 않죠. 하지만 적절한 팽창제와 흡수제를 넣으면, 오븐 안의 열기를 고스란히 흡수해 완벽한 형태로 부풀어 올라요. 이 파편은 가장 강력한 팽창제이자 흡수제가 될 거예요."
그녀는 주머니 속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바람의 영묘가 주고 간 '바람의 깃털 씨앗'이 만져졌다. 끊임없이 자가 순환하며 죽지 않는 이 미세한 마력 기류. 이것이 카누레의 단단한 크러스트 내부에서 마력 흐름을 유도하는 촉매제가 되어줄 것이다.
[스위트 가계부 처방 시스템 가동.] [고대 장벽의 역류 파편과 바람의 깃털 씨앗을 융합한 특수 레시피를 도출합니다.] [처방 디저트: '오염원 흡수 극대화 처방용 카누레(Canelé de Contre-Attaque)'] [필요 재료: 고대 장벽의 역류 파편 가루, 바람의 깃털 씨앗, 정제된 유기농 버터, 다크 럼, 타히티 바닐라 빈, 그리고 제작자의 온정적 감정 에너지 10%] [효능: 겉면의 단단한 밀랍 크러스트가 외부의 물리·마법적 타격을 완벽히 흡수하여 내부의 커스터드 기단으로 전달. 내부 기단에 도달한 오염 마력은 바람의 촉매 작용을 통해 급격한 역류를 일으켜 발사 지점으로 되돌아가 대폭발을 일으킴. 폭발 잔해는 정화된 마력원으로 환원되어 결계석의 에너지를 100% 충전함.]
레티샤의 머릿속에 완성될 카누레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구워지는 동안 오븐 틈새로 흘러나올 탄 듯이 달콤한 캐러멜의 향기. 럼주가 열을 받아 증발하며 남기는 묵직하고 알싸한 후각적 자극. 그리고 타히티 바닐라 빈이 선사하는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향의 조화.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치아 끝에 닿는 빠작하고 단단한 겉면의 식감과 대비되는, 온통 구멍이 숭숭 뚫려 쫀득하고 촉촉하게 녹아내리는 커스터드의 달콤 쌉싸름한 미각적 충격.
그것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었다. 적들을 파멸로 이끌 가장 아름다운 연금술적 병기였다.
"결합식을 확인했어요."
레티샤가 가방을 열고 파편과 씨앗을 조심스럽게 쓸어 담았다.
"힐데 씨, 이 파편의 대가는 다음번 디저트 납품 때 정산해 드릴게요. 아주 넉넉하게 이자를 쳐서요."
힐데가 소리 내어 웃었다.
"과연,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군. 이 판국에 이자 계산이라니. 마음에 들어. 아주 마음에 들어."
힐데가 만족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하며 몸을 돌렸다.
"그럼 난 이만 빠져주지. 장사꾼은 싸움터에 오래 머무는 게 아니거든. 살아서 다음 거래일 때 보자고, 꼬마 아가씨."
힐데가 문가로 걸어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디트리히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레티샤를 바라보고 있었고, 레온은 레티샤의 품에 안겨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지바닥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오두막의 유리창이 잘게 진동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수많은 철갑 마수들의 발굽이 대지를 짓밟으며 다가오는, 거대하고 위압적인 진동이었다.
힐데가 문손잡이를 잡은 채 그대로 굳어졌다.
"이... 이 무식한 소리는 뭐지?"
오두막 밖, 안개 숲의 푸른 어둠이 순식간에 시뻘건 암적색 불꽃 연기의 거품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소리가 숲 저편에서부터 파도처럼 밀려왔다.
디트리히가 레티샤를 뒤로 밀쳐내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은빛 마력이 검신을 타고 무겁게 흘러넘쳤다.
"결국 온 건가."
그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었다.
"아나톨..."
황후 직속 제1대장, 피의 도살자라 불리는 아나톨. 그리고 그가 이끄는 100인의 황실 흑기사단이 마침내 안개의 경계를 뚫고 오두막의 코앞까지 그 검은 칼날을 들이밀고 있었다.
붉은 안개 속에서 수백 개의 붉은 안광이 오두막을 향해 일제히 포위망을 좁혀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