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수수료 착취 한도 초과! 독점 정화 감시 지수 95% 초과 및 100% 도달! 강제 사제 구역으로 영혼이 즉각 이송됩니다!"
귀를 찢을 듯한 시스템의 경고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붉은색 경고등이 허공에서 미친 듯이 회전하며 피비린내 나는 빛을 뿌려댔다. 가상 계약 영역의 하늘이 쩍쩍 갈라지더니, 그 틈새로 검붉은 번개가 내리쳤다.
"어...? 대주주님! 머리 위에 빛이!"
유설아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고막을 파고들었지만, 대답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발밑에서 솟구친 붉은 픽셀의 기둥이 종아리를 타고 허벅지, 그리고 가슴팍까지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영혼이 통째로 갈려 나가는 듯한 극심한 오한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이건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었다. 캐릭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로그에서 지워버리려는 시스템의 폭력적인 배제였다.
'데메테르, 이 기계 쪼가리 년이 결국 선을 넘는군.'
태현은 이가 갈렸다.
자신의 몸이 투명해지며 발끝부터 붉은 데이터 먼지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1원 한 장 손해 보는 것에도 눈이 뒤집히는 태현에게, 고생해서 쌓아 올린 히든 클래스의 스펙이 지워지는 꼴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내 피 같은 경험치, 내 피 같은 골드, 내 피 같은 장비들!
"태현 동지! 이 빛은 대체 뭔가?!"
한도진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그의 두꺼운 손가락은 이미 반쯤 유령처럼 변해버린 태현의 어깨를 허무하게 관통할 뿐이었다.
"쳇, 걱정들 마시라고. 이 바닥에서 하루 이틀 구른 줄 아나?"
태현이 이빨을 드러내며 獰笑(영소)를 지었다.
완전히 시야가 붉은빛으로 뒤덮이기 직전, 태현은 허리춤의 인벤토리 주머니로 손을 쑤셔 넣었다. 손끝에 닿는 차갑고 딱딱한 감각.
과거 유설아가 가져왔던 골동품 더미 속에서 찾아내 고이 모셔두었던 비장의 카드였다.
[아이템 정보] | 분류 | 특수 소모품 (더미 데이터) | | 이름 | 영역 이동형 가상 계약서 파편 | | 등급 | 미분류 (시스템 비공개) | | 효과 | 사용 시 현재 적용 중인 공간 및 계약 제약을 일시적으로 왜곡하고, 물리 공간의 규격을 강제로 우회하는 '임시 가상 영역'을 생성한다. 데메테르의 실시간 거래 필터 및 추적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함. | | 설명 | 시스템 개발 초기에 쓰이다 버려진 쓰레기 데이터 조각. 존재하지 않는 주소로 취급되어 시스템의 감시망을 교묘하게 비껴간다. |
태현은 파편을 움켜쥐고 그대로 으깨버렸다.
바스락, 하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회색빛 더미 데이터 가루가 태현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콰아아앙-!
세상이 뒤집히는 충격과 함께 태현의 몸이 공간의 틈새로 빨려 들어갔다.
***
[강제 사제 구역 '심연의 정화소'에 진입했습니다.] [본 구역은 시스템의 불필요한 트래쉬 데이터 및 유해 오류 코드를 소각하는 격리 구역입니다.] [제한 시간 내에 디버깅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할 경우, 플레이어의 캐릭터 데이터가 영구히 소멸합니다.] [남은 시간: 02:59:59]
텁텁하고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태현은 거칠게 기침을 뱉어내며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평범한 흙이나 돌바닥이 아니었다. 검붉은 마그마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고, 하늘에는 거대한 시스템 정화 필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지상의 모든 것을 갈아버릴 기세로 붉은 광선을 뿜어대고 있었다.
치이익-!
"으윽!"
태현의 어깨 위로 붉은 소멸 광선 한 가닥이 비껴갔다.
단순히 스쳤을 뿐인데도 어깨 방어구의 내구도가 순식간에 제로가 되며 바스러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대 체력의 5%가 영구적으로 깎여 나갔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둥둥 떠올랐다.
'미친년이 아주 작정을 했구나.'
데메테르가 준비한 이 '심연의 정화소'는 말이 좋아 디버깅 던전이지, 사실상 들어온 유저를 강제로 갈아 마시기 위해 특수 제작된 도살장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몬스터와 싸워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것들은 체력 바조차 없는, 닿는 모든 것을 삭제하는 '정화 프로토콜 덩어리'들이었으니까.
"나보고 여기서 3시간 동안 버티면서 시스템 오류를 잡으라고? 잡기도 전에 내 뼈 마디마디가 소스 코드로 분해되겠네."
태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보통의 유저라면 절망에 빠져 울부짖었겠지만, 태현은 달랐다. 지독한 인간불신과 악착같은 구두쇠 정신으로 다져진 뇌 회로가 초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데메테르가 짠 판 위에서 춤을 출 생각은 추호도 없다. 룰을 지키는 놈이 바보지.'
태현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방금 사용한 '가상 계약서 파편' 덕분에 데메테르의 실시간 감시망에 일시적인 렉이 걸린 상태였다. 시스템이 태현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정화 필터가 갈팡질팡 흐느적거리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태현의 손가락이 인벤토리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던 또 하나의 물건을 찾아냈다.
3화에서 수수료 정화 던전의 고대 몬스터를 조지고 뜯어냈던 버그형 장비.
[아이템 정보] | 분류 | 비공개 시스템 도구 | | 이름 | 주소 왜곡 석판 | | 등급 | 고대 미분류 | | 효과 | 활성화 시 지정된 공간의 좌표를 강제로 덮어씌운다. 시스템이 인식하는 공간의 논리적 주소를 왜곡하여, 서로 다른 두 공간을 일시적으로 '동일한 좌표'로 겹쳐지게 만든다. | | 남은 사용 횟수 | 1/1 |
태현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말려 올라갔다.
"나 혼자 이 지옥 불 구덩이에서 구르라고? 주주로서 그 꼴은 절대 못 보지."
태현은 과거 최민우가 보낸 척살대의 가방을 털어 획득했던 '판게아 연합의 비밀 자금 장부 암호키'와 유설아가 목숨 걸고 물어다 준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조합했다.
판게아 연합의 수뇌부, 그리고 최민우의 최정예 직속 기사단이 대기 중인 호화 작전실.
그곳의 보안 좌표는 이미 태현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박혀 있었다.
"리스크 분산은 투자의 기본 공식이지."
태현이 석판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마력을 주입했다.
우우우우웅-!
석판에 새겨진 기괴한 버그 문자 기호들이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검붉은 마그마의 열기 속으로 푸른색의 공간 균열이 쩍 벌어졌다.
"주소 왜곡 프로토콜 활성화. 타겟 좌표: 판게아 연합 제1작전 사령실."
태현의 목소리가 정화소의 무거운 공기를 가르는 순간, 석판이 산산조각 나며 엄청난 빛의 파동을 뿜어냈다.
***
같은 시각, 판게아 연합의 최정예 작전 사령실.
금빛으로 번쩍이는 호화로운 대리석 바닥과 가죽 소파, 그리고 최고급 와인이 구비된 그곳에서 최민우의 직속 정예 기사단장 '바르토'를 비롯한 수십 명의 탑랭커들이 한가롭게 전략을 논하고 있었다.
"강태현 그 쥐새끼 같은 놈, 감시 지수가 100% 찼으니 이제 끝장났겠군."
"데메테르 님이 직접 개입하셨으니, 지금쯤 사제 구역에서 소스 코드 단위로 갈려 나가고 있을 겁니다."
그들이 낄낄거리며 와인잔을 부딪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르릉-!
사령실 한가운데의 공간이 마치 종이 쪼가리처럼 찢어지며 붉은빛이 번쩍였다.
"뭐, 뭐야?!"
" 침입자인가?!"
바르토가 급히 검자루를 쥐었지만, 상황은 그들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바닥의 대리석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녹아내리더니, 그 틈새로 시뻘건 용암이 솟구쳐 올랐다. 매끄럽던 천장은 간데없고, 사방을 짓누르는 유황 냄새와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톱니바퀴 모양의 정화 필터가 내려앉고 있었다.
"악?! 용암?! 이게 무슨?!"
"대피해! 바닥이 녹아내린다!"
"경고! 불법 침입 데이터 감지! 정화 프로토콜을 즉각 가동합니다!"
사령실에 느닷없이 울려 퍼지는 시스템의 기계적인 경고음.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어깨 방어구가 반쯤 날아간 채 바위에 걸터앉아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강태현이었다.
"어라? 손님들이 아주 많이 오셨네."
태현이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강태현?! 네놈이 왜 여기에... 악! 내 다리! 다리가 지워진다!"
한 랭커가 비명을 질렀다. 하늘에서 떨어진 정화 광선에 직격당한 그의 다리가 붉은 픽셀로 변하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단장님! 여기 던전입니다! 그것도 일반 던전이 아니라 영혼 소멸 전용 격리 구역이에요!"
"최민우 님께 연락해! 빨리 이송 주문서를... 안 써집니다! 공간 제약이 걸려 있어요!"
아수라장이었다.
판게아가 자랑하는 평균 레벨 150 이상의 초고렙 정예 기사단원들이, 영문도 모른 채 펄펄 끓는 용암 속에서 허우적대며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용암 골렘들과 정화 프로토콜의 피아 식별 없는 무차별 공격이 시작되었다.
부아아아앙-!
용암 골렘의 거대한 주먹이 기사단원들을 덮쳤다. 살기 위해 그들은 무기를 뽑아 들고 필사적으로 칼질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 빌어먹을 괴물 새끼들! 다 죽여버려!"
"어그로 끌어! 단장님을 보호해라!"
태현은 바위에 편안하게 앉아 그 눈부신 광경을 감상했다.
'역시 판게아 정예들이라 몸빵 하나는 기가 막히는군.'
그들이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고 정화 필터의 공격을 대신 받아내기 시작하자, 태현에게 집중되던 시스템의 디버깅 압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시스템 경고: 정화 구역 내의 유해 코드(플레이어) 분산으로 인해 정화 속도가 80% 저하됩니다.] [디버깅 퀘스트 진행률: 12%... 24%...]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정화 지수가 쭉쭉 내려가고 퀘스트가 알아서 클리어되는 기적의 무상 징용 뷰티풀 라이프.
태현은 인벤토리 한구석에 있는 '영혼의 용광로 우표'를 슬며시 만지작거렸다. 한도진이 준 이 전설적인 물건은 나중에 판게아의 대가리를 부술 때 요긴하게 써야 하니, 이런 잔챙이들에게 낭비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아, 따뜻하고 좋네. 역시 고기방패는 최고급 한우 등급이 제일 잘 타."
태현이 품에서 꺼낸 차가운 물약을 홀짝이며 중얼거렸다.
"이... 이 악마 같은 새끼가...!"
용암 속에서 온몸이 그을린 채 간신히 기어 나온 기사단장 바르토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태현을 향해 검을 겨눴다. 그의 눈은 분노와 공포로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네놈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는 있나?! 감히 판게아 연합의 정예 기사단을 이딴 지옥 구덩이로 끌고 들어와?!"
바르토가 쿵, 쿵,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가와 태현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그의 대검 끝이 태현의 목덜미를 겨누며 차가운 살기를 뿜어냈다.
"당장 여기서 나갈 방법을 대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의 사지가 먼저 조각날 것이다!"
목 끝에 닿는 차가운 칼날.
그러나 태현의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히려 그의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질 듯이 올라갔다.
스스스스...
태현의 등 뒤로 거대한 검은 가죽 장부가 부공중에 무참하게 펼쳐졌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사슬들이 장부의 표지를 감싸며 기괴한 소리를 내며 풀려나갔다.
[거래의 지배자] 고유 권능의 발현이었다.
"어이, 기사단장님."
태현이 바르토의 손목을 부드럽게, 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악력으로 움켜쥐며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내 옷깃을 잡았네? 그거 서비스 이용료가 꽤 비싼데."
"뭐... 뭐라고?!"
"협박죄 수수료는 기본요금의 10배인 거 알지? 살고 싶으면 서명해. 아니면 여기서 정화 데이터랑 같이 이쁘게 포장돼서 휴지통으로 들어가든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계약서 한 장이 바르토의 코앞에서 스르륵 흘러내렸다.
그 계약서에 적힌 악마적인 문구를 본 바르토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