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규격 외 불법 거래 대상자 감지. 즉각 구속 절차를 개시한다."
차가운 쇳소리가 붉게 물든 하늘을 찢었다.
틈새 시장의 경계면을 부수며 걸어 나오는 시스템 수호 기사단의 육중한 갑옷이 붉은 하늘빛을 반사해 기괴하게 빛났다. 투구 틈새로 뿜어 나오는 푸른 안광은 오직 하나, 강태현만을 고정하고 있었다.
"어, 어쩌죠? 저놈들 레벨이 안 보여요! 최소 150 이상 보스급 개체들인데!"
유설아가 태현의 소맷자락을 잡고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평소의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하긴, 시스템의 물리적 제재 세력과 정면으로 마주했으니 심장이 내려앉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태현은 그녀의 손길을 가볍게 털어내며 허공에 뜬 붉은 패치 창을 노려보았다.
[시스템 긴급 패치 세부 사항] - 대상 구역: 아테리아 대륙 전역 (차원 인접 지대 포함) - 규제 내용: 개인 간 거래 및 중개소 등록 일일 누적 거래액 상한 '1,000 골드' 제한. - 특이 사항: 상한선 초과 거래 시도 시, 즉각적인 자산 압류 및 수호 기사단 강제 연행.
"일일 거래 상한선이 1,000골드라고?"
태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경악이나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극도의 혐오와 분노가 뒤섞인 실소였다.
1원짜리 한 장의 손해에도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인간이 바로 강태현이다. 그런 그에게 하루 거래 한도를 고작 1,000골드로 묶어버리겠다는 것은, 숨을 쉬지 말라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한도진이 방금 완성해 낸 전설 등급 대검의 최저 입찰가만 해도 수십만 골드를 호가할 터였다.
데메테르 이 인공지능 년이 머리를 썼군.
내 클래스의 숨통을 끊기 위해 게임 전체의 유저 경제를 인질로 잡고 억지 패치를 단행한 것이다.
쿵! 쿵!
수호 기사단들이 지면을 울리며 다가왔다. 그들의 등 뒤로 차가운 쇠사슬이 허공을 뱀처럼 기어 다녔다. 감시 지수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시스템 독점 정화 감시 지수: 89%] [※ 주의: 감시 지수가 100%에 도달할 경우, 계정이 영구 삭제됩니다.]
"강태현 형씨! 일단 튀어야 하는 거 아니요? 저놈들 기세가 장난이 아닌데!"
한도진이 자신이 만든 대검을 품에 꼭 안은 채 소리쳤다. 대장장이 특유의 고집스러운 얼굴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조용히 해 봐요. 대가리 굴러가는 소리 안 들립니까?"
태현이 관자놀이를 짚으며 차갑게 내뱉었다.
지금 당장 도망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귀환석이든, 틈새 시장의 지형지물이든 이용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도망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거래액 상한선이 1,000골드로 묶여 있는 한, 이 전설 무기는 영원히 인벤토리에서 썩어갈 테니까. 판게아 연합의 목을 죄어버릴 핵심 카드가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었다.
"설아 씨."
태현이 귓속말 기능을 켰다. 은밀한 마력 파동이 두 사람 사이만을 연결했다.
-왜, 왜요? 이 와중에 귓속말은 왜 해요? -귓구멍 열고 잘 들어. 2화 때 당신이 내 구둣발 밑에 던졌던 그 쓰레기 골동품 기억해? -네? 그... 더미 데이터 쪼가리요? 그게 왜요? -그거, 단순한 쓰레기 아니야. '영역 이동형 가상 계약서 파편'이었지.
태현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과거 최민우에게 통째로 뒤통수를 맞고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그는 게임의 밑바닥 데이터까지 샅샅이 파고들며 생존법을 익혔다. 시스템이 '버그'나 '더미'로 처리해 처박아둔 쓰레기 파일들이야말로 규격 외의 기적을 일으키는 열쇠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파편의 본래 메커니즘은 물리적 공간의 '거래소 영역'을 강제로 일그러뜨려 전송하는 거야. 데메테르가 아무리 대륙 전체의 거래 한도를 패치로 묶었어도, 이 공간 자체를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영역'으로 물리 규격 변환을 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미쳤어요? 그건 시스템 코어를 건드리는 짓이에요! 발각되면 진짜로 영구 삭제라니까요? -발각 안 되게 우회하는 게 내 전문이잖아.
태현의 손가락이 인벤토리 깊숙한 곳을 헤집었다. 그의 손끝에 닿은 것은 차갑고 딱딱한, 마치 깨진 유리 조각 같은 질감의 반투명한 파편이었다.
[영역 이동형 가상 계약서 파편] - 분류: 더미 데이터 (시스템 미사용 리소스) - 상세: 과거 아테리아 초기 개발 단계에서 폐기된 계약 영역 이동용 매개체. 물리적인 공간의 좌표를 가상화하여 임시 거래 영역으로 치환합니다. - ※ 경고: 현재 시스템 포맷에 호환되지 않는 비표준 데이터입니다. 오작동의 위험이 있습니다.
"오작동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내가 바로 그 오작동의 지배자다."
태현이 파편을 가볍게 튕겼다.
그와 동시에 수호 기사단의 단장이 거대한 대검을 치켜들었다.
"규격 외 대상, 저항 의사 확인. 강제 집행을 개시한..."
"시끄러워."
태현이 파편을 바닥에 내던지며 자신의 히든 클래스 스킬을 발동했다.
"계약서 발행. 대상 공간, 이 틈새 시장 전체. 그리고 거래 대상자는..."
태현의 눈이 빛났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판게아 연합 고위 간부들의 연락처 서류'를 꺼내 들었다. 판게아의 총수와 그 수하들은 지금쯤 한도진이 만든 전설 무기를 독점하기 위해 대륙 서쪽의 최고급 경매장 VIP 룸에 모여 있을 터였다.
"거래 대상자, 판게아 연합의 경매 대리인 '바르토'. 그리고 우리 천재 대장장이 한도진."
파편이 바닥에 닿는 순간, 쨍그랑하는 파편 소리와 함께 사방의 공간이 기하학적인 선으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차원의 틈새 시장 전체가 마치 물에 젖은 도화지처럼 흐물흐물하게 일그러졌다. 수호 기사단장들이 태현을 향해 돌진하려 발을 내딛는 순간, 그들이 딛고 있던 대지가 통째로 허공으로 증발했다.
"무, 무슨...?! 공간 좌표가 소실된다?!"
기사단장의 투구 사이로 뿜어지던 푸른 안광이 거칠게 흔들렸다.
태현이 만든 가상 계약의 역장이 두 공간을 억지로 이어붙이고 있었다. 이곳 '차원의 틈새 시장'과, 수만 리 떨어져 있는 대륙 최고급 경매장의 'VIP 룸 3번실'의 공간 물리 규격이 통째로 뒤엉키기 시작한 것이다.
***
한편, 같은 시각. 아테리아 대륙 서부의 대도시 '루미나스'의 최고급 경매장 VIP 룸.
"뭐라? 개인 거래 상한선이 고작 1,000골드로 묶였다고?"
화려한 비단 로브를 걸친 사내, 판게아 연합의 핵심 중개인이자 대리인인 '바르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앞에는 데메테르가 띄운 붉은 패치 창이 떠 있었다.
"이러면 우리가 준비한 수십만 골드의 비밀 자금은 어떻게 되는 건가! 오늘 나오기로 한 고대 유물 무기 낙찰은?!"
"그, 그게... 시스템 긴급 수호령이라 경매장 측에서도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일일 거래가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비서의 보고에 바르토가 머리를 쥐어뜯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갑자기 VIP 룸 한가운데의 공간이 액체처럼 출렁이더니, 서늘하고 음침한 보라색 안개가 피어올랐다.
"뭐, 뭐야?! 습격인가?!"
바르토가 반사적으로 허리춤의 단검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손이 무기에 닿기도 전에, 안개 속에서 귀에 익은, 그리고 지독하게 기분 나쁜 말소리가 들려왔다.
"습격은 무슨. 돈 벌러 온 귀인한테 예의가 없으시네, 바르토 씨."
안개가 걷히며 드러난 것은, 낡은 로브를 걸치고 비죽이 웃고 있는 강태현이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는 전설 등급의 대검을 품에 안은 대장장이 한도진과,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의 유설아가 서 있었다.
"네, 네놈은... 강태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발을 들이는 거냐! 경비병! 경비..."
"불러봐요. 목청껏 질러봐."
태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 이 공간은 '가상 계약 영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당신 비명은 저 문턱조차 못 넘어가니까. 그리고 경비병들이 오기 전에, 당신네 판게아 연합이 그토록 침을 흘리던 물건부터 확인하는 게 순서 아닌가?"
태현이 턱끝으로 한도진을 가리켰다. 한도진은 흠칫 놀라며 품에 안고 있던 대검을 탁자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쿠웅!
탁자가 쩍 갈라질 듯한 무게감과 함께, 검신 전체에서 차가운 영혼의 불꽃이 휘몰아쳤다. 대검의 상세 정보창이 허공에 화려하게 펼쳐지자, 바르토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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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템 정보: 영혼을 가르는 파멸의 대검 (전설)] - **분류**: 양손 대검 - **공격력**: 1,850 - 2,400 - **장착 제한**: 레벨 120 이상, 근력 500 이상 - **특수 효과**: - [영혼 흡수]: 타격 시 대상의 최대 마나 5%를 강탈하여 공격력으로 치환 (누적 최대 100%). - [심연의 장막]: 무기 사용 시 주변 10m 이내의 적들에게 '공포' 상태 이상 부여 (지속시간 5초). - **제작자**: 천재 대장장이 한도진 (Masterp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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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것은...!"
바르토의 침 삼키는 소리가 VIP 룸 안에 크게 울렸다.
현재 아테리아 대륙에서 유통되는 최고의 무기라 해봐야 공격력 800 선의 영웅 등급이 한계였다. 그런데 무려 공격력 2,000을 상회하는 전설 등급의 무기라니. 그것도 PVP에서 사기적인 위력을 발휘할 '영혼 흡수'와 '공포' 옵션이 붙어 있었다.
이것만 있다면 판게아 연합의 전력은 단숨에 대륙 최강으로 굳어질 터였다.
"흥미가 좀 생깁니까?"
태현이 비죽 웃으며 서류 한 장을 들이밀었다.
"원래라면 경매에 올려서 전 대륙 랭커들의 눈을 뒤집어놓으려 했는데, 특별히 판게아 연합의 바르토 씨니까 선수를 치게 해 드리는 겁니다. 가격은 깔끔하게 50만 골드."
"50만 골드...?! 미쳤나! 지금 장난해?!"
바르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방금 시스템 패치가 적용된 걸 모르는 거냐! 대륙 전체의 일일 거래 상한이 1,000골드다! 50만 골드를 거래하는 순간, 수호 기사단이 들이닥쳐 우리 둘 다 영구 정지 통을 먹는다고!"
"그건 대륙의 '물리적' 거래소 규칙이고."
태현이 탁자 위의 가상 계약서 파편을 톡톡 건드렸다.
"여긴 내가 구축한 '가상 영역'입니다. 시스템의 패치 필터가 닿지 않는 더미 데이터의 세계지. 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는 시스템 장부에 '0골드'의 가치 없는 데이터 쓰레기 교환으로 기록돼요. 즉, 거래 한도 제한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뭐... 라고?"
바르토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눈을 속이고 50만 골드짜리 전설 무기를 독점할 수 있다고? 그것도 다른 길드들이 거래 제한에 묶여 손도 못 쓰고 있는 이 타이밍에?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판게아 연합이 대륙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하지만... 아무리 우회한다고 해도, 50만 골드라는 거액이 움직이면 로그가 남을 텐데..."
"그걸 처리하는 게 내 클래스 '거래의 지배자'의 권능입니다."
태현의 목소리에 마력의 울림이 더해졌다. 가스라이팅의 덫이 바르토의 목을 조여가고 있었다.
"계약서에 서명만 하세요. 당신은 50만 골드를 지불하고 이 전설 대검을 얻는다. 시스템에는 단 1골드의 거래 내역도 남지 않아. 완벽한 합법이자 완벽한 독점이지. 단..."
태현이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내 수수료는 알다시피 '조금' 세다는 거."
"수, 수수료? 그게 얼마인데 그러지? 10%? 아니면 20%인가?"
"99%."
태현이 검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뭐, 뭐이리?!"
바르토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99%라니! 그럼 내가 50만 골드를 내도, 대검의 성능이나 가치의 99%가 네놈한테 귀속된다는 소리잖아! 그런 미친 계약을 누가..."
"안 하면?"
태현이 대검을 다시 인벤토리로 슬며시 집어넣으려 했다.
"안 하면 그냥 이 무기 들고 다른 길드 찾아가면 됩니다. 그쪽도 거래 제한 때문에 미치려 하던데, 이 우회 계약서를 보여주면 물고 뜯고 난리가 나겠지. 판게아 연합이 이 대검을 쥔 라이벌 길드에게 사냥터고 영지고 몽땅 털리는 꼴, 참 볼만하겠네요."
"윽..."
바르토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과거 강태현을 배신했던 최민우의 지시가 떠올랐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태현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고, 그가 가진 히든 클래스의 정보와 이권을 빼앗으라 했다. 하지만 눈앞의 이 전설 무기를 놓친다면, 자신은 최민우는커녕 길드 총수에게 목이 날아갈 판이었다.
게다가 99%의 가치를 뜯긴다 해도, 남은 1%의 전설 대검 성능만으로도 현존하는 영웅 등급 무기를 압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점'이라는 상징성이 있었다.
"서... 서명하지. 단, 무기는 약속대로 즉시 넘겨야 한다!"
바르토가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에 깃펜을 가져갔다.
태현의 눈동자에 깃든 탐욕스러운 안광이 번뜩였다.
사각, 사각.
서명이 완료되는 순간, 가상 계약서가 황금빛 연기로 변하며 흩어졌다.
[계약 성사: '영혼을 가르는 파멸의 대검' 중개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클래스 특성 '거래의 지배자'가 발동합니다!] [수수료 99% 법칙이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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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래 정산 내역] - **총 거래 대금**: 500,000 골드 - **정산 결과**: - 구매자 지급액: 500,000 골드 - 판매자(한도진) 수령액: 5,000 골드 (법칙에 의거한 1%) - **강태현 수수료 귀속액**: **495,000 골드** (99%) - **아이템 성능 정산**: - 구매자(바르토) 획득 무기: '영혼을 가르는 파멸의 대검 (열화판)' - 성능의 1% 반영 (공격력 18 - 24로 대폭 하락) - **강태현 영구 귀속 성능**: '물리 공격력 +1,832', '마법 공격력 +2,376', 특수 효과 [영혼 흡수] 및 [심연의 장막] 성능의 99% 영구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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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 이것이 왜..."
바르토의 손에 쥐어진 전설 대검의 붉은 광채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웅장하던 검신은 흡사 녹슨 철판때기처럼 변해 버렸고, 허공에 뜬 아이템 창의 공격력 수치는 눈을 의심케 했다.
[공격력: 18]
"이... 이 사기꾼 자식아!!! 공격력이 18이 뭐냐, 18이!!!"
바르토가 피를 토할 듯이 비명을 질렀다.
"말했잖아. 내 수수료는 99%라고. 계약서 조항 제4조 2항에도 '성능 및 가치의 99%는 중개인 강태현에게 영구 귀속된다'고 아주 친절하게 적어놨는데? 한글 못 읽어?"
태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인벤토리에 들어온 495,000골드의 묵직한 무게감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의 전신을 타고 흐르는 압도적인 힘의 파동. 전설 대검의 성능 99%가 고스란히 그의 캐릭터 정보창에 누적되었다. 무기를 들지도 않았는데, 온몸에서 살인적인 투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 참고로 한도진 씨."
태현이 멍하니 서 있는 한도진을 바라보았다.
"약속대로 5,000골드 정산해 드렸습니다. 일반적인 대장장이가 평생 벌어도 못 만질 거금이죠? 99% 떼이고도 이 정도라니, 역시 나와 함께 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 그으러네... 5,000골드라니... 내 평생 이런 거금은 처음 만져보는구려..."
한도진은 이미 태현의 악마적인 가스라이팅에 완벽히 세뇌되어, 자신의 걸작이 똥값이 된 것도 모른 채 황금 주머니를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옆에서 그 꼬라지를 보던 유설아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악마보다 더한 새끼... 저 대장장이는 지 무기가 닭강정 꼬치 수준으로 약해진 것도 모르고 좋아하네.'
그때, 태현의 귓가에 차가운 시스템 경고음이 사정없이 울려 퍼졌다.
[경고! 규격 외 데이터 우회 거래 감지!] [적대적 정화 인공지능 '데메테르'가 우회 경로를 추적합니다.] [시스템 독점 정화 감시 지수가 폭증합니다!] [현재 감시 지수: 95%] [※ 주의: 감시 지수가 100%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 24:00:00]
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데메테르 이 집요한 년이 기어코 우회 경로까지 찾아내 추격해 오는군. 감시 지수가 95%까지 치솟았다. 하루 안에 이 지수를 떨어뜨리지 못하면 진짜로 캐릭터가 강제 영구 삭제된다.
"설아 씨, 도진 씨. 슬슬 나갑시다. 여기 오래 있으면 쥐새끼들이 꼬이거든."
태현이 가상 영역을 해제하며 VIP 룸의 문을 열었다.
가상 영역이 걷히자, 다시 루미나스 경매장의 화려한 복도가 나타났다. 태현은 입꼬리를 올린 채 복도를 걸어 나갔다. 49만 골드라는 거금과 전설급 능력치를 통째로 흡수한 그의 걸음걸이는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경매장 정문을 나선 순간.
스우우우...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경매장 앞 광장의 그림자들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길게 늘어났다.
광장을 지나다니던 일반 유저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사방이 기분 나쁜 정적으로 가득 찼다. 차가운 쇠비린내와 함께, 그림자 속에서 하나둘씩 검은 가죽 옷을 입고 복면을 쓴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 이빨 길드...!"
유설아가 숨을 들이쉬며 뒤로 물러섰다.
판게아 연합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악명 높은 암살 전문 길드였다. 그리고 그들의 배후에는 역시나 그놈이 있었다.
그림자 무리의 한가운데가 갈라지며, 낯익은 실루엣이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다, 강태현."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오는 사내. 과거 태현의 모든 것을 빼앗고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주범이자, 현재 판게아 연합의 핵심 간부로 군림하고 있는 배신자, 최민우였다.
최민우의 눈에 독기가 가득 차 올랐다.
"네놈이 무슨 버그를 써서 기어 올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다. 여기서 네놈의 그 건방진 클래스를 통째로 찢어발겨 주지."
사방을 포위한 수십 명의 암살자들이 일제히 단검을 뽑아 들었다. 서늘한 독기가 태현의 목덜미를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