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00:59:57]

붉은빛으로 점멸하는 숫자가 시야 오른쪽 구석에서 심장박동보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쾅! 쾅! 쾅!

"끼이이이익!"

찌그러지는 철문 틈새로 은빛 금속 슈트를 입은 처단 기사들의 헬멧이 보였다. 푸르게 타오르는 안광이 먼지 자욱한 고물상 밀실을 살벌하게 훑었다. 기계적인 마찰음과 함께 그들이 꼬챙이 같은 대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강태현은 망설임 없이 유설아의 덜미를 움켜쥐었다.

"악! 뭐, 뭐야! 어디 가!"

"입 닫고 뛰어. 혀 깨물기 싫으면."

태현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낡은 황동 파이프 더미를 발로 차 무너뜨렸다.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먼지 구름이 일어나는 틈을 타, 그는 밀실 뒤편에 교묘하게 가려져 있던 녹슨 하수도 철망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이, 이쪽은 시궁창이잖아!"

"시궁창이 청와대보다 안전할 때가 있는 법이지. 굴러!"

콰아아앙!

그들이 하수도 구멍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감과 동시에,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콘크리트 바닥이 은빛 검기에 의해 무참히 쪼개졌다. 파편이 등 뒤로 비산하며 귓가를 매섭게 스쳤다. 축축하고 차가운 오수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태현은 멈추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하수도 통로를 따라 거침없이 달렸다.

타다다닥!

뒤편에서 소름 끼치도록 규칙적인 금속성 발소리가 벽면을 울리며 따라붙었다. 데메테르가 보낸 처단 기사들이었다. 지치지도 않고, 오차도 없이 일정한 속도로 좁혀오는 살인 기계들.

"하아, 하아……! 태현아, 저것들 속도가 미쳤어! 우리 잡히면 진짜 캐릭터 지워지는 거야?"

유설아가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숨을 헐떡였다. 겁에 질린 그녀의 동공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지워지게 놔둘 것 같아?"

태현이 달리는 와중에도 품 안의 가죽 주머니를 꽉 쥐었다. 1골드라도 손해를 보면 삼일 밤낮을 피눈물을 흘리는 그였다. 제 목숨 같은 캐릭터가 삭제당하는 꼴을 눈 뜨고 볼 리가 없었다.

"60분 동안 도망치는 건 애초에 내 사전에 없어. 체력 포션 값만 해도 얼마인데 그걸 바닥내고 앉아 있냐?"

"그럼 어쩌려고!"

"사냥해야지. 타겟을."

태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하수도 지도는 이미 그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져 있었다. 아테리아의 더미 데이터가 모이는 이 지하시설 깊은 곳에는 시스템 에러로 탄생한 돌연변이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었다. 데메테르가 지정한 디버깅 퀘스트의 핵심 타겟.

[감염된 버그 가디언]

그 녀석의 서식지로 처단 기사들을 유인해 통째로 쓸어버리는 것이 태현의 첫 번째 계획이었다.

축축한 점액질이 사방에 널린 지하 공동에 들어섰을 때, 하수도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녹색 타액이 바닥을 허옇게 녹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공동의 중심부에서, 기괴하게 일그러진 껍질을 가진 거대한 게 모양의 괴수가 포효하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감염된 버그 가디언 - Lv.15 (정예 / 시스템 균열)]

"찾았다."

태현이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공동의 안쪽, 이미 선객들이 자리를 잡고 무기를 휘두르는 중이었다. 그들의 어깨 위에는 붉은색 톱니바퀴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 저 문양…… 판게아 연합의 하수인들이잖아?!"

유설아가 급히 태현의 뒤로 숨으며 속삭였다.

판게아 연합. 아테리아의 모든 이권과 자원을 독점하려 드는 거대 길드 연합 세력. 그 중에서도 최하층에서 더러운 일과 불법 파밍을 도맡아 하는 말단 척살 대원들이었다. 그들은 버그 가디언의 하체를 사슬로 묶어둔 채, 녀석의 등껍질에서 피어오르는 푸른색 광물질을 조직적으로 캐내고 있었다.

"야, 조용히 해! 영단 채굴 속도 올려! 데메테르 감시망이 이쪽 하수도 구역에 집중되기 전에 빨리 털고 빠져야 한다고!"

"형님, 걱정 마십쇼. 이 구역은 시스템 에러 코드 때문에 외부인이 들어오면 바로 밴당하는 구역이라 우리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태현은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과연.'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기가 돌아갔다.

판게아 놈들은 이 하수도의 시스템 공백을 이용해 버그 가디언의 '영단'을 불법으로 무한 약탈하고 있었다. 데메테르의 감시 필터가 작동하지 않는 사각지대를 찾아내 사리사욕을 채우는 짓거리.

그때, 등 뒤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은빛 투구를 쓴 처단 기사 세 마리가 하수도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움직임 감지. 버그 유저 및 오염원 식별 프로세스 가동."

기계적인 음성이 좁은 동굴을 울렸다.

"힉……!"

유설아가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는 판게아 대원들의 귀에 그대로 꽂혔다.

철컥!

"누구냐!"

판게아의 선임 대원인 대머리 검사, '바츠'가 대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그의 시선이 태현과 유설아, 그리고 그 뒤를 쫓아온 은빛 처단 기사들에게 닿았다.

"뭐야? 웬 거지 발싸개 같은 놈들이…… 어? 저건 데메테르의 처단자들 아냐? 야! 저 새끼들 버그 유저다! 시스템 경비병을 끌고 왔어!"

바츠가 징그럽게 웃으며 태현을 가리켰다.

"하하하! 꼬락서니 보소. 대체 무슨 불법 프로그램을 돌렸길래 저 무시무시한 놈들한테 쫓기냐? 어이, 뉴비 형씨. 알아서 꺼져라. 우리 작업 방해하지 말고."

"형님, 저놈들 그냥 놔두면 우리 파밍 구역 들통납니다. 그냥 여기서 담가버리죠?"

판게아 하수인들이 살기를 뿜으며 다가왔다. 앞에는 레벨 15짜리 정예 버그 몬스터, 뒤에는 무자비한 시스템 처단 기사들, 그리고 눈앞에는 칼을 갈고 있는 거대 길드의 사냥개들.

그야말로 사면초가.

하지만 강태현의 눈동자에는 공포 대신 지독한 탐욕의 빛이 서서히 차올랐다.

'판게아 놈들 레벨이 평균 12에서 14 사이. 처단 기사들은 레벨 15 수준. 그리고 버그 가디언도 레벨 15.'

완벽한 판이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먹잇감들이 굴러들어올 수 없었다.

태현은 즉각 어깨를 움츠리고, 무릎을 덜덜 떠는 연기를 시작했다. 눈가에 억지로 눈물까지 그렁그렁하게 매달았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태현이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애원했다.

"저것들이 갑자기 쫓아와서 죽이려고 해요! 저는 그냥 지나가던 약초꾼인데…… 흐윽! 판게아의 위대하신 형님들, 제발 저 무시무시한 기사들을 막아주세요!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하? 약초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바츠가 코방귀를 꼈지만, 태현의 비굴한 태도에 잔뜩 고무된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야, 우리가 미쳤다고 생판 모르는 버그 유저 새끼를 도와주냐? 우린 바쁜 몸이야. 저 기사들이랑 같이 곱게 갈려서 시스템 정화나 당해라."

"도, 돈을 드릴게요! 제가 가진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태현이 다급하게 외치며 품 안에서 붉게 빛나는 종이 조각을 꺼내 들었다. 유설아에게 얻었던 '영역 이동형 가상 계약서 파편'이었다. 물론 판게아 놈들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고등급 계약서 주문서로 보일 터였다.

"이, 이 계약서에 서명해주시고 저 괴물들의 시선을 딱 3분만 끌어주시면, 제가 보관하고 있던 비상금 5만 골드와…… 저기 저 버그 가디언이 떨어뜨릴 모든 전리품의 소유권을 형님들께 양도하겠습니다! 시스템 인증 계약서입니다!"

"뭐? 5만 골드?!"

바츠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말단 대원들에게 5만 골드는 1년을 뼈 빠지게 굴러도 만져보기 힘든 거금이었다. 게다가 눈앞의 버그 가디언 전리품 소유권까지 통째로 넘기겠다고?

"형님, 이거 완전 횡재 아닙니까? 어차피 가디언은 우리가 거의 다 잡아놨고, 저 은빛 기사들은 덩치만 컸지 어그로만 끌어주면 지들끼리 싸울 텐데요."

부하의 부추김에 바츠가 침을 꿀꺽 삼켰다.

"진짜지? 딴소리 하기 없기다. 계약서 내놔 봐."

"여, 여기 있습니다! 얼른 서명해주세요! 저 기사들이 코앞까지 왔어요!"

태현이 사들인 계약서 파편을 허공에 띄웠다. 가상 인터페이스가 판게아 대원들 앞에 떠올랐다. 태현은 교묘하게 계약 조건을 뒤틀어 설계해 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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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 우회 임무 중개 계약서]

1. **계약 목적**: 을(판게아 대원 일동)은 갑(강태현)을 추격하는 '처단 기사단' 및 '감염된 버그 가디언'의 적대 대상을 인계받아 전투를 수행한다. 2. **갑의 의무**: 전투 종료 후 을에게 계약금 50,000골드 및 대상 몬스터들의 전리품 소유 권한을 시스템적으로 양도한다. 3. **특약 조항 (수수료 명세)**: - 본 계약은 '거래의 지배자' 권능 하에 진행되는 비공개 중개 계약이다. - 계약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험치, 획득 재화, 장비 및 부산물에 대해 **99%의 합법적 중개 수수료**가 갑(강태현)에게 영구 귀속된다. - 을은 본 계약의 수수료 조항을 인지하였으며, 서명 즉시 시스템 강제력이 발동되어 취소 및 환불이 불가능함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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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츠는 계약서의 윗부분, '50,000골드 양도'와 '전리품 소유 권한 양도'라는 문구만 보고 흥분해 아래쪽의 깨알 같은 특약 조항은 대충 넘겨버렸다. 애초에 글씨가 너무 작게 왜곡되어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았다.

"좋아! 계약 성사다! 이 맛에 뉴비들 등쳐먹는 거지!"

바츠가 허공의 붉은 인장에 손바닥을 쾅 찍었다. 그의 부하 세 명도 일제히 서명했다.

화아아악!

계약서 조각이 붉은 마력 입자로 분해되며 판게아 대원들과 강태현의 몸을 감쌌다.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대체불가 클래스 '거래의 지배자' 권능이 발동합니다.] [수수료 99% 징수 조항이 시스템 코어에 각인되었습니다.]

"흐흐흐, 좋아! 얘들아! 저 은빛 깡통 새끼들 대가리를 깨버려라! 5만 골드가 굴러들어온다!"

바츠가 칼을 뽑아 들고 처단 기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동시에 계약의 강제적인 어그로 전이 효과로 인해, 처단 기사들의 안광이 강태현이 아닌 판게아 대원들을 향해 고정되었다.

"오염원 비호 세력 감지. 정화 프로토콜 대상을 변경합니다. 섬멸 개시."

"지이이잉-!"

은빛 기사들이 일제히 대검을 휘두르며 판게아 대원들과 격돌했다. 그 와중에 날뛰던 감염된 버그 가디언까지 엉켜 하수도 공동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콰쾅! 퍼억! 콰아아앙!

"악! 이 깡통 새끼들 왜 이렇게 세?!"

"가디언 꼬리 조심해! 으아악!"

사방에서 비명과 쳇바퀴 도는 칼날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현은 유설아의 손을 잡고 하수도 구석의 안전한 돌출부 위로 사뿐히 올라섰다. 품에서 말린 육포를 꺼내 질겅질겅 씹는 그의 모습은 마치 VIP석에서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 같았다.

"어…… 태현아? 진짜 저러고 구경만 해도 되는 거야?"

유설아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럼 내가 직접 칼 들고 싸울까? 내 소중한 마나 포션이랑 내구도를 저딴 잡몹들한테 낭비하라고? 난 1원도 손해 안 본다니까."

"너 진짜…… 악마냐?"

"악마라니. 합법적이고 건전한 플랫폼 중개업자라고 불러줄래?"

태현이 싱긋 웃었다.

전투는 극에 달해 있었다. 판게아 대원들은 5만 골드에 눈이 멀어 물약을 들이켜며 필사적으로 싸웠다. 마침내 처단 기사 두 마리가 박살 나고, 마지막 남은 감염된 버그 가디언의 체력이 1% 미만으로 떨어졌다.

"하아, 하아……! 다 잡았다! 막타 쳐!"

바츠가 온몸이 피떡이 된 채 대검을 메리꽂았다.

푸학-!

초록색 액체가 사방으로 튀며, 감염된 버그 가디언이 거대한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처단 기사들의 마지막 개체도 가디언의 폭발에 휘말려 동귀어진하듯 스러졌다.

"성공이다! 으하하하! 우리가 해냈……!"

바츠가 환호성을 지르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시스템 경보!] [전투 종료. 계약에 따른 전리품 및 경험치 정산이 시작됩니다.]

웅웅웅웅-!

쓰러진 버그 가디언과 처단 기사들의 시체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영혼의 빛과 수십 개의 아이템 상자, 그리고 막대한 골드 주머니들이 판게아 대원들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들이 그들의 인벤토리로 들어가려는 찰나, 허공에 거대한 붉은색 갈고리가 나타났다.

[수수료 99% 강제 징수!]

슈우우우웅-!

빛의 무리 중 99%가 궤적을 꺾어, 하수도 구석에 앉아 육포를 씹던 강태현의 가슴팍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어? 어어?!"

바츠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의 시야에 뜬 시스템 메시지는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경험치 14,500을 획득하였습니다.] [수수료 99%가 차감됩니다. 최종 획득 경험치: 145] [레벨 다운 위험! 계약서 특약 조항에 따라 부족한 수수료는 기 보유 경험치에서 차감됩니다.] [바츠의 레벨이 14에서 13으로 하락합니다!]

"이, 이게 무슨 개소리야!!!"

바츠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내 인벤토리에 있던 포션이랑 골드가 사라져요! 경험치가 역류해요!"

"레벨이 내려갔어! 으아악! 내 12레벨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빛나던 찬란한 레벨 숫자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반면, 강태현의 머리 위에서는 눈이 멀 것 같은 황금빛 레벨업 이펙트가 폭죽처럼 연달아 터졌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현재 레벨: Lv.15]

[정예 몬스터 및 시스템 정화 대상 처단 완료!] [타임어택 디버깅 퀘스트: '버그 소멸자 처단' 성공!] [시스템 건전성이 회복되었습니다.] [독점 정화 감시 지수가 경감됩니다: 12% -> 8%]

[기여도 99% 독점 보상 획득!] - 획득 골드: 45,000골드 - 획득 아이템: [버그 가디언의 온전한 영단] x 12 - 획득 아이템: [주소 왜곡 석판 (에러 등급)] x 1

"어우, 달다 달아."

태현이 입가에 고인 침을 닦아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단 한 번의 계약으로 레벨 1에서 15로 초고속 버스를 탄 것은 물론이고, 감시 지수도 안전 구역인 8%로 떨어뜨렸다. 게다가 품 안에는 묵직한 골드와 영단들이 가득 쌓였다.

"이, 이 사기꾼 새끼가아아아!!!"

바츠가 피눈물을 흘리며 태현을 향해 기어왔다. 그의 이빨이 분노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너, 네놈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레벨! 내 전설 등급 영단들!!! 당장 돌려내!!!"

"돌려내다니요. 계약서 서명은 본인이 하셔놓고 왜 저한테 화를 내십니까?"

태현이 주머니에서 계약서 사본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여기 똑똑히 적혀 있잖아요. '수수료 99% 영구 귀속'. 아테리아 대륙에서 시스템 계약서 위조는 사형인 거 아시죠? 저는 아주 합법적으로 중개 수수료를 떼어갔을 뿐입니다. 억울하면 계약서 약관을 잘 읽으셨어야죠."

"이, 이 악마 같은 놈이……! 판게아 연합이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널 뼈째로 갈아 마셔버리겠다!"

"어이쿠, 무서워라."

태현이 피식 웃으며 가방을 정리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유설아는 이미 턱이 빠질 대로 빠져 있었다. 그녀는 태현과 판게아 대원들을 번갈아 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너 진짜…… 인간의 탈을 쓴 무언가구나. 판게아 엘리트 애들을 이렇게 하루아침에 알거지로 만들다니."

"알거지가 아니라 합법적 기부천사들이지. 덕분에 아주 편하게 정화 성공했잖아?"

태현이 새로 얻은 아이템인 [주소 왜곡 석판]을 꺼내 들었다. 기괴한 붉은색 룬 문자가 새겨진 돌판에서 알 수 없는 시스템 오류 노이즈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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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왜곡 석판] - **등급**: 에러 (Error) - **설명**: 시스템의 강제 정화 구역 좌표를 임의의 좌표로 덮어쓰기 할 수 있는 치명적인 버그 아이템. - **효과**: 사용 시 다음 '시스템 디버깅 퀘스트'의 발생 위치를 지정한 대상의 좌표로 강제 이전시킵니다. (1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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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주 물건이네.'

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최민우 그 배신자 새끼와 판게아 연합 본진의 대가리를 통째로 깨버릴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선물'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자, 그럼 슬슬 정리하고 나갈……."

태현이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지이이이이이잉-!

하수도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공간의 픽셀이 깨져나가며 백색 잡음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어, 어라? 발이 안 움직여!"

유설아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몸이 허공에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절규하던 판게아 대원들도, 사방의 오수들도 모두 중력을 잃은 듯 공중으로 솟구쳤다.

쿠구구구궁!

하수도 천장이 마치 젖은 종이처럼 찢겨 나가며, 그 너머로 끝없는 심연의 우주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심연의 한가운데서, 거대한 역삼각형 모양의 붉은색 안광이 나타났다.

[시스템 경고!] [오염원 '강태현'의 비정상적 데이터 축적 감지.] [보안 위협 레벨: 최고 단계 (X) 격상.] [인공지능 '데메테르'가 직접 정화 영역을 전개합니다.]

"……규칙 위반자."

하수도 전체를 짓누르는 차갑고 투명한 기계음이 고막을 직접 때렸다.

천장 상공에서 강림한 붉은색 스캔 안광이, 강태현의 정수리를 수직으로 정확히 조준하며 타들어 갈 듯한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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