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이이잉-!
고막을 찢을 듯한 전자 노이즈와 함께, 붉은 격자무늬로 쪼개진 허공에서 시린 안개 같은 푸른색 광선이 일직선으로 쏟아졌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인 타격기가 아니었다. 직격하는 모든 데이터의 존재 자체를 영구히 소멸시키는 데메테르의 삭제 프로토콜, 일명 '푸른 지우개'였다.
"오류 개체 강태현. 즉각적인 배제 단계를 실행합니다."
허공을 울리는 차가운 기계음과 동시에 푸른 광선이 태현의 발끝을 스쳤다.
스어억.
소리조차 없었다. 광선이 닿은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이 마치 뜨거운 달군 칼날 앞의 버터처럼 흔적도 없이 기화되어 사라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시커먼 구멍이 태현의 발바닥 바로 아래에 뚫렸다.
"미친 기계 덩어리가 시작부터 필살기를 갈겨?"
태현은 이를 악물고 지면을 박찼다.
전투력 180. 조금 전 쓰러뜨린 오함마에게서 99%의 경험치와 스탯을 합법적으로 강탈한 덕분이었다. 허벅지 근육이 터질 듯이 팽창하며 몸이 전방으로 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쿠구구구궁!
태현이 서 있던 자리를 따라 푸른 광선이 연쇄적으로 내리꽂혔다. 찰나의 순간이라도 지체했다면 온몸이 픽셀 단위로 분해되어 우주 너머로 사출되었을 터였다.
태현은 공중에서 몸을 반 바퀴 비틀며 폐공터 구석의 깨진 콘크리트 장벽 너머로 굴렀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하고 있는 오함마에게 닿았다. 오함마의 몸 주위로 붉은 에러 메시지가 어지럽게 명멸하더니, 이내 푸른 광선에 휩쓸려 먼지처럼 파스스 흩어졌다.
적대적 AI 데메테르는 오류를 정화하기 위해서라면 배후의 하수인조차 아낌없이 처분하는 냉혹함을 보였다.
"살벌하네, 진짜."
태현은 콘크리트 파편을 디디고 숲속으로 몸을 던졌다. 등 뒤로 폭발하는 푸른빛의 잔영을 느끼며, 그는 단 한 순간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아테리아 대륙의 시스템 지배자라 할지라도, 완전한 수동 조작 구역이 아닌 야생 필드 전체를 실시간으로 지우개질할 수는 없다. 붉은 격자무늬가 서서히 옅어지는 것을 확인한 태현은 숨을 몰아쉬며 어둠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
사흘 뒤, 아테리아 대륙의 최하층민들이 모여 사는 무법지대 '알카트 빈민가'.
썩은 이끼 냄새와 기름때 찌든 매연이 가득한 골목길 구석에 허름한 고물상 간판을 단 지하 밀실이 있었다. 낡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방에 어지럽게 널린 홀로그램 모니터와 정체불명의 마도 기계 장치들이 쉴 새 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붉은 단발머리의 여성, 유설아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모니터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아, 진짜! 판게아 이 양아치 새끼들, 정보 수수료 단가를 또 후려쳤어? 나보고 흙 파먹고 살라는 거야?"
유설아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극강의 실용주의 정보원이었지만, 최근 거대 길드 판게아의 독점이 심해지면서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모니터 구석에는 빨간색 글씨로 '체납 골드: 14,000G (연체 이자 복리 적용)'라는 경고등이 사정없이 깜빡였다.
사채업자들의 칼날이 목턱까지 들어온 상황. 그녀가 마른침을 삼키며 손톱을 깨물던 그때였다.
달그락.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림자 속에서 검은 코트를 걸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돈이 썩어 넘치는 줄 알았더니, 아주 제대로 빚더미에 앉았군."
"엄마야?!"
유설아가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녀는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들려다가,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입을 쩍 벌렸다.
"강태현……? 너, 너 살아 있었어? 분명 최민우가 킬러를 보내서 완전히 매장했다고 들었는데?"
"그 등신들이 보낸 사냥개는 이미 내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됐지."
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유설아의 맞은편 가죽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유설아의 모니터에 떠 있는 체납 고지서를 턱 끝으로 가리켰다.
"판게아 놈들에게 정보 좀 팔아 보려다가 오히려 독점 규제에 걸려서 보증금까지 다 날렸나 보네. 빚이 14,000골드라. 빈민가에서 이 정도 액수면 내일 아침 강가에 네 머리통만 둥둥 떠다녀도 이상하지 않지."
유설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살아 돌아온 건 축하하는데, 남의 아픈 곳을 후벼 파러 온 거면 당장 나가. 나 지금 예민하니까."
"아니, 난 네 구원투수로 온 거야."
태현이 비열할 정도로 매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서 반짝이는 금빛 계약서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계약서 표면에는 기괴한 악마의 형상과 함께 황금빛 사슬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거래의 지배자 전용 계약서: 상호 호혜적 정보 중개 계약]
유설아가 코방귀를 꼈다.
"하! 계약서? 태현아, 나 정보원이야. 계약서 장난질에 속아 넘어갈 짬밥이 아니라고. 그리고 너 지금 가진 돈은 있고?"
태현은 자신의 상태창을 슬그머니 열어 보였다.
[보유 재화: 120 골드]
"……진짜 눈물이 앞을 가리는 잔고네. 120골드로 내 빚을 갚아 주겠다고? 지나가는 고블린이 웃겠다."
"내 돈으로 갚는다고 안 했는데?"
태현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눈동자가 뱀처럼 차갑고 집요하게 빛났다.
"너, 판게아 길드가 최근에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고대 미개척 구역 더미 데이터' 가지고 있지? 그들이 숨겨 둔 극비 영지 후보지 리스트 말이야."
유설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니, 설령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건 내 마지막 생명줄이야! 판게아에 넘기면 최소 10,000골드는 받을 수 있어!"
"과연 그럴까?"
태현의 목소리에 차가운 가스라이팅의 마법이 실리기 시작했다.
"판게아는 독점 길드야. 그들이 너 같은 일개 정보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것 같아? 정보를 넘기는 순간, 기밀 유지라는 명목으로 네 입을 막아 버리는 게 훨씬 싸게 먹히지. 최민우 그 새끼 성격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넌 골드를 만져 보기도 전에 무덤으로 직행할걸?"
"그, 그건……."
유설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태현의 말이 구구절절 뼈를 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거래하면 달라. 내가 그 정보를 가공해서 '제3의 경로'로 유통해 주지. 판게아는 정보의 출처가 너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넌 안전하게 빚을 청산하고, 나는 정당한 중개 수수료를 챙긴다. 어때, 합리적이지?"
"수수료? 수수료는 얼마나 받아 갈 건데?"
유설아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물었다.
태현은 싱긋 웃으며 손가락 한 개를 펼쳤다.
"우리가 남도 아니고, 딱 1%만 떼어 가지. 네가 가져갈 몫은 무려 99%야."
"뭐……? 1%?"
유설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 지독한 구두쇠에 남의 등을 쳐먹기로 유명한 강태현이 1%만 가져가겠다니? 태양이 서쪽에서 뜰 일이었다.
"진짜지?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당연하지. 난 계약서에 적힌 조항은 절대 어기지 않아."
태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거래의 지배자' 클래스의 효과는 일반적인 상식과 반대로 작동한다. 성사되는 모든 거래 계약에서, 표기된 비율과 '정반대'의 수수료를 강탈하여 영구 귀속시킨다.
즉, 계약서상에 태현이 1%를 가져가고 상대가 99%를 가져간다고 명시하는 순간, 시스템의 구속력에 의해 실제로는 태현이 99%를 갈취하고 상대에게는 고작 1%만이 돌아가는 악마의 계약이 성립되는 것이다.
유설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깃펜을 들었다.
"좋아. 어차피 판게아 놈들한테 쥐어짜여 죽으나, 너 믿고 도박해 보나 마찬가지니까."
사각, 사각.
유설아가 계약서 하단에 서명하는 순간, 계약서가 황금빛 불꽃으로 타오르며 허공에 거대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계약 성사!] [대체불가 클래스 '거래의 지배자'의 고유 권능 '착취적 중개'가 발동합니다.] [계약 조건: 유설아가 보유한 '판게아 극비 미개척 구역 리스트'의 가치 평가액(15,000 골드 상당) 중개 거래 실행.] [수수료 조항 왜곡 적용: 명시 비율 1% -> 실제 귀속 비율 99%로 반전됩니다.]
화아아아악!
유설아의 품에 있던 낡은 양가죽 지도와 더미 데이터 칩이 빛을 내뿜으며 태현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동시에, 빈민가 암시장의 보이지 않는 중개 네트워크를 통해 판게아 하부 조직의 비자금 계좌로부터 천문학적인 골드가 실시간으로 인출되어 태현의 인벤토리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짤랑! 짤랑! 짤랑!
경쾌하고 묵직한 황금의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웠다.
[수수료 99%가 강제 징수되었습니다.] [획득 재화: 14,850 골드!] [보유 재화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120 골드 -> 14,970 골드 (약 15,000 골드)]
순식간에 주머니가 두둑해진 태현은 입안으로 차오르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단 한 번의 사기 계약으로 빈민가 평생 벌어도 만지기 힘든 거금을 손에 넣은 것이다.
반면, 유설아의 눈앞에는 참담한 결과창이 나타났다.
[거래 완료!] [정산 금액: 150 골드]
"어……? 어어? 이게 뭐야?!"
유설아가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150골드?! 야! 내 9,900골드 어디 갔어?! 내 99% 어디 갔냐고 이 사기꾼 새끼야!"
태현은 아주 우아하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무슨 소리야, 설아 주주님. 계약서 조항을 잘 읽어 보셨어야지. '거래의 지배자'가 주도하는 중개 계약의 모든 수익 배분은 '중개인'의 절대적 권한에 따른다. 넌 안전하게 판게아의 추적을 피해서 150골드라는 순수익을 올렸잖아? 적어도 사채업자들에게 대가리가 깨질 확률은 0%가 됐으니 개이득이지."
"이, 이 벼락 맞아 죽을 구두쇠 새끼가……!"
유설아는 혈압이 머리끝까지 올랐는지 뒷목을 잡고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하지만 이미 시스템의 구속력을 얻은 계약은 절대 되돌릴 수 없었다.
태현은 획득한 판게아의 극비 더미 데이터 주머니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 안에서 툭, 하고 먼지 낀 구리빛 금속 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어라? 이건 뭐지?"
태현이 그것을 집어 들자, 눈앞에 상세 정보창이 떠올랐다.
| 아이템 정보 | | | :--- | :--- | | **이름** | 영역 이동형 가상 계약서 파편 | | **등급** | 희귀 (더미 데이터) | | **설명** | 과거 아테리아 개발진이 공간 전송 계약 테스트 중 폐기한 잔해물. 물리적 공간의 좌표를 왜곡하여, 시스템의 실시간 필터를 우회하는 가상의 거래 영역을 일시적으로 구축할 수 있음. |
'더미 데이터 속의 히든피스인가.'
태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시스템 AI 데메테르가 실시간으로 패치하는 거래 제한 필터를 회피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장치였다. 그는 조각을 품안 깊숙이 찔러 넣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이이이잉-!
지하 밀실의 백열등이 격렬하게 깜빡이더니, 벽면의 홀로그램 모니터들이 일제히 붉은색 경고창으로 뒤덮였다.
[경고!] [비정상적인 초고율 수수료 착취 거래가 감지되었습니다.] [독점 정화 감시 지수가 급상승합니다!] [감시 지수: 1% -> 12%]
"쯧, 벌써 쫓아왔나."
태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투두두둑!
천장에서 붉은색 스파크가 튀더니, 태현의 왼쪽 가슴팍 위로 기괴한 붉은색 낙인이 새겨졌다. 그것은 마치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동반했다.
"윽……!"
태현이 가슴을 움켜쥐며 한 걸음 물러섰다. 낙인은 선명한 숫자의 형태로 변해 실시간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00:59:59] [00:59:58]
[시스템 강제 퀘스트 발동!] [타임어택 디버깅 퀘스트: '버그 소멸자 처단'] [설명: 감시 지수 10% 돌파로 인해 시스템 건전성 수호 프로토콜이 가동됩니다. 데메테르가 파견한 '디버깅 처단 기사단'의 추격을 피해 60분간 생존하거나, 그들을 모두 전멸시키십시오.] [실패 시 대가: 캐릭터 영구 삭제 및 자산 몰수]
"하, 60분 타임어택이라니. 데메테르 이 기계 년이 아주 작정을 했구나."
태현이 거칠게 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철컥, 철컥, 철컥!
허름한 고물상 지하 밀실의 철문 너머에서, 소름 끼치도록 차갑고 무거운 금속성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플레이어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오직 시스템의 명령만을 수행하는 정화 기계들의 무자비한 행진이었다.
"어, 어라? 이 소리 뭐야? 태현아, 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닌 거야?!"
유설아가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쾅-! 쾅-!
낡은 철문이 바깥에서 가해지는 강한 충격에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붉은색 마력의 빛이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며, 은빛 슈트를 착용한 데메테르의 처단 기사들이 무기를 빼 드는 실루엣이 흐릿하게 비쳤다.
태현은 품 안에서 '영역 이동형 가상 계약서 파편'을 조용히 꺼내 쥐었다.
"설아야, 빚 갚고 싶다고 했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저 괴물들이 문 부수고 들어온다고!"
"잘 들어. 이제부터 진짜 거래를 시작할 테니까."
태현의 눈동자가 광기 어린 투지로 번뜩였다. 시시각각 줄어드는 가슴팍의 타이머가 그의 심장박동을 사정없이 재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