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죽어라, 강태현! 네놈 목에 걸린 현상금이 무려 5억 골드다!"

귀를 찢는 고함과 함께 육중한 철퇴가 바닥을 짓뭉개며 불꽃을 튀겼다. 부서진 콘크리트 파편이 얼굴을 스치며 칼날 같은 상처를 남겼지만, 강태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허공에 흩날리는 붉은 핏방울보다, 자신의 낡은 가죽 방어구 내구도가 3포인트 깎였다는 시스템 메시지에 고정되어 있었다.

[경고: '낡은 초보자용 가죽 갑옷'의 내구도가 감소했습니다. 수리비 예상액: 45골드]

45골드. 그 사소한 숫자를 보는 순간, 태현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머릿속의 이성이 퓨즈가 나간 것처럼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돈. 내 피 같은 돈이 또 길바닥에 버려졌다.

"이 개새끼가 미쳤나…… 감히 내 수리비를 청구하게 만들어?"

"뭐라는 거냐, 이 미친놈이? 죽기 직전이라 뇌가 녹았나 보군!"

거구를 자랑하는 킬러 '오함마'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어깨 위에서 시퍼런 마력을 뿜어내는 전설 등급 대검 '파멸의 인도자'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이곳은 아테리아 대륙 동부의 버려진 더미 데이터 폐공터. 사방이 잡초와 깨진 톱니바퀴로 가득한 회색빛 무법지대였다. 태현은 벽에 등을 기대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몸 곳곳에 새겨진 자상과 타박상에서 붉은 수치가 끊임없이 솟구쳤다.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을 회색빛으로 물들이며 스쳐 지나갔다. 최민우. 한때 목숨을 나눠 가졌다고 믿었던 동료. 그 개새끼가 태현의 등뒤에 칼을 꽂고 모든 아이템과 자금을 들고 판게아 길드로 도망쳤던 그날. 태현이 느꼈던 것은 인간적인 배신감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이 송두리째 뜯겨 나가는 듯한 극도의 금전적 상실감, 1원 한 장마저 빼앗기지 않겠다는 지독한 구두쇠로서의 생존 본능이었다.

'내 동의 없이 내 지갑에 손을 대는 새끼는, 부모 형제를 막론하고 사지를 찢어 발겨야 마땅하다.'

그 지독한 불신과 탐욕, 그리고 복수심이 태현의 심장 깊은 곳에서 거대한 공명을 일으켰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마력이 솟구치며, 시야 전체가 황금빛 계약서의 질감으로 번쩍였다.

[특이점 감지: 주체의 극단적인 '소유욕'과 '복수의지'가 시스템의 숨겨진 코어와 동기화됩니다.] [히든 클래스 '거래의 지배자'를 각성합니다!] [당신은 이제 아테리아 대륙에서 유일무이한 '대체불가 상인'입니다.] [모든 계약과 중개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권능이 부여됩니다.]

눈앞에 떠오른 황금빛 안내창을 보며 태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거래의 지배자. 이름부터 어질어질할 정도로 웅장해지는 클래스였다. 그리고 그 직업의 상세 설명이 태현의 시야에 표 레이아웃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나타났다.

━━━━━━━━━━━━━━━━━━━━━━━━━━━━━━━━━━ [클래스 정보] - 명칭: 거래의 지배자 (Hidden) - 분류: 계약/중개형 지배자 - 고유 특성: ① 악마적 수수료 (Passive): 성사되는 모든 중개 및 거래 계약에서 상대방의 재화, 경험치, 아이템 성능의 99%를 수수료 명목으로 영구 갈취하여 자신에게 귀속시킵니다. ② 강제 계약서 (Active): 상대방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거나 이득을 취하려 할 때, 해당 행위를 '거래 신청'으로 간주하여 강제로 계약 테이블에 올립니다. - 제약 조건: ※ 악마적 수수료를 적용할 때마다 시스템의 '독점 정화 감시 지수'가 상승합니다. (현재 지수: 0%) ※ 감시 지수가 100%에 도달하면 캐릭터가 강제 영구 삭제됩니다. ━━━━━━━━━━━━━━━━━━━━━━━━━━━━━━━━━━

"수수료가…… 99%?"

태현은 육성으로 터져 나오려는 광소를 간신히 억눌렀다. 이것은 장사가 아니다. 이것은 합법적으로 상대의 영혼까지 털어먹는 날강도 면허증이었다. 1원 한 장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태현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직업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야, 강태현! 마지막 비명이라도 질러봐라! 민우 형님이 네놈 대가리를 가져오면 길드 간부 자리를 주기로 하셨단 말이다!"

오함마가 대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전설 등급 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중력압이 폐공터의 공기를 짓눌렀다. 일반적인 레벨 10짜리 유저라면 그 기세만으로도 무릎을 꿇고 사시나무 떨듯 떨었을 터였다.

하지만 태현은 오히려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의 눈빛은 굶주린 늑대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오함마. 너 방금 나한테 '거래'를 제안한 거다."

"앙? 무슨 개소리야?"

"네놈이 내 목숨을 가져가는 대신, 최민우에게 길드 간부 자리를 받겠다는 거래. 아주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지. 안 그래?"

태현이 오른손을 가볍게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순백의 양피지 계약서가 실체화되어 허공에 부풀어 올랐다. 황금빛 쇠사슬이 계약서 둘레를 감싸며 팽팽한 소리를 냈다.

[고유 스킬 '강제 계약서'가 발동됩니다!] [대상 '오함마(Lv.85)'의 공격 행위를 '목숨 및 능력치 양도 거래'로 규정합니다.] [거래 성립 요건: 대상의 물리적 타격 실행 시, 계약이 즉시 체결됩니다.]

"이게 무슨 개수작이야!"

오함마는 본능적인 불쾌감에 대검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검풍이 대지를 가르고, 파괴적인 에너지가 태현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보통의 전투라면 태현의 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야 했다. 하지만 대검의 날카로운 끝이 태현의 이마에 닿기 직전, 황금빛 계약서가 방패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대검이 계약서 표면에 박혔다. 대검의 마력이 회오리치며 계약서 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시스템 메시지: 거래가 성공적으로 접수되었습니다.] [계약서 조항에 의거, 대상 '오함마'의 공격에 담긴 가치(생명력, 경험치, 장비 성능)의 99%를 수수료로 징수합니다.] [서명 인장 날인 완료.]

"뭐, 뭐야?! 내 몸이 왜 이래?!"

오함마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갔다. 그의 몸에서 푸른빛의 경험치 구슬과 황금빛 장비 마력이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와, 태현의 손끝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데미지 판정이 아니었다. 오함마라는 캐릭터 존재 자체가 통째로 압류당하는 기괴한 현상이었다.

"아악! 멈춰! 멈추라고! 내 레벨이! 내 장비가 왜 이래?!"

오함마가 비명을 지르며 대검을 빼내려 했지만, 황금빛 사슬이 그의 손목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다. 태현은 그 모습을 지극히 평온한 눈으로 바라보며, 시야에 갱신되는 팝업창을 감상했다.

━━━━━━━━━━━━━━━━━━━━━━━━━━━━━━━━━━ [수수료 정산 명세서] - 거래 대상: 오함마 (Lv.85, 전사 클래스) - 착취 내역: ① 대상의 레벨 및 누적 경험치의 99% 갈취 ② 대상의 전설 장비 '파멸의 인도자' 옵션 가치 99% 영구 압류 - 징수 결과: ※ 강태현 수령 경험치: +4,200,000 EXP (즉시 레벨 업!) ※ 전설 장비 '파멸의 인도자' 핵심 옵션 [파멸의 일격 (Lv.5)] 획득 완료! ━━━━━━━━━━━━━━━━━━━━━━━━━━━━━━━━━━

쿠구구구구!

태현의 발밑에서 거대한 광풍이 휘몰아쳤다. 레벨 10에 불과했던 그의 몸속으로 천문학적인 양의 경험치가 강제로 주입되었다. 뼈마디가 재조립되고, 혈관 속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현재 레벨: Lv.52]

순식간에 42레벨이 상승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기본 스펙과 전투력이 가시적으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 [전투력 변화 추이] - 기존 전투력: 10 (일반 초보 유저 수준) - 현재 전투력: 180 (정예 중급 랭커 수준) ━━━━━━━━━━━━━━━━━━━━━━━━━━━━━━━━━━

"이, 이게 말이 돼……? 내 3년 동안의 노력이…… 단 한 순간에……."

오함마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레벨은 어느새 'Lv.1'로 강등되어 있었고, 그가 그토록 자랑하던 전설 대검은 빛이 바래 녹슨 쇠막대기처럼 변해 있었다. 그의 주름진 얼굴과 떨리는 손은, 마치 영혼까지 말라비틀어진 미라를 연상케 했다.

태현은 천천히 다가가 오함마의 뺨을 가볍게 툭툭 쳤다.

"고마워, 고객님. 아주 만족스러운 거래였어. 수수료는 원래 선불인데, 이번엔 특별히 후불로 깔끔하게 정산해 드렸으니까 억울해하진 마."

"이…… 악마 같은 자식……!"

오함마가 피눈물을 흘리며 바닥을 긁었지만, 태현의 안중에는 이미 그의 존재 따위는 없었다. 태현은 자신의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며, 온몸을 채운 강력한 마력의 흐름에 도취해 있었다. 전투력 180. 과거 길드원들에게 배신당해 밑바닥을 기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속도였다. 단 한 번의 거래로 고레벨 킬러를 폐인으로 만들고 그 힘을 통째로 강탈했다.

'최민우, 기다려라. 네가 가진 그 알량한 판게아 길드의 권력도, 결국 내 수수료 계약서 한 장에 전부 찢겨 나가게 될 테니까.'

태현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리려는 찰나였다.

지이이이잉-!

돌연 폐공터 사방의 회색빛 하늘이 붉은색 격자무늬로 잘게 쪼개지기 시작했다. 마치 모니터의 액정이 깨진 것처럼, 공간 자체가 부자연스럽게 일그러지며 귀가 먹먹해지는 전자 노이즈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아테리아 대륙 밸런스 제어 장치가 비정상적인 데이터 흐름을 감지했습니다.] [독점 정화 감시 시스템 '데메테르'가 구동됩니다.]

태현의 눈앞에 이전에 본 적 없는 기괴할 정도로 거대한 붉은색 알림창이 나타났다.

[경고: 적대적 감시 AI 데메테르가 감시 지수 1%를 기록하며 당신의 신상 분석을 개시합니다.] [분석 결과: 클래스 '거래의 지배자'는 시스템 내 경제 및 밸런스를 파괴하는 '악성 버그 오염원'으로 임시 분류되었습니다.]

"……데메테르?"

태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소문으로만 듣던 아테리아의 절대적인 관리자, 게임의 밸런스를 수호하고 오류를 정화하는 인공지능의 이름이었다.

허공에서 차가운 기계음이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일반 NPC의 친절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오직 살의와 규칙만을 따르는 서늘한 목소리였다.

-오류 개체 강태현을 감지. 시스템의 건전성을 위해 즉각적인 감시 및 제재 절차를 가동합니다. 당신의 모든 거래 행위는 실시간으로 감시되며, 감시 지수가 100%에 도달하는 순간 캐릭터는 영구히 말소됩니다.

지이이잉!

붉은 격자무늬 속에서, 무언가 거대하고 위협적인 형상이 태현을 내려다보는 듯한 압박감이 폐공터를 가득 채웠다.

이제 막 최강의 힘을 쥐었건만, 시스템 그 자체가 그의 목을 죄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태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기계 덩어리 새끼야. 내 지갑에서 1원이라도 빼 가려고 하면, 너조차도 내 수수료 계약서의 노예로 만들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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