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탈한 무전기가 번쩍였다. 지직거리는 소음이 터졌다. 한태조는 멈춰 섰다. 평생 잊지 못한 목소리였다. 원흉 백도현의 음성이었다. 스피커가 찢어지듯 울렸다.
"제법이군 한태조."
목소리는 차가웠다. 태조는 무전기를 꽉 쥐었다. 손가락 뼈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분노가 심장을 찔렀다. 하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 태조는 감정이 없었다.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오직 복수심만 남았다.
"기다려라."
태조가 낮게 읊조렸다.
"곧 네 목을 딴다."
무전기에서 웃음이 흘렀다.
"올 수 있다면 와라."
수신이 뚝 끊겼다. 정적이 하수구를 채웠다. 머리 위에서 외침이 들렸다.
"빨리 올라와!"
밧줄이 흔들렸다. 태조는 밧줄을 잡았다. 윤설아를 먼저 올렸다. 마강재가 그 뒤를 따랐다. 태조가 마지막으로 몸을 던졌다. 발밑으로 더러운 물이 찼다. 수문이 열린 소리였다. 거대한 수마가 하수구를 쓸었다. 간발의 차이였다.
세 시간 뒤. 도심의 외곽이었다. 비가 세차게 내렸다. 낡은 건물이 빗속에 서 있었다. 성일병원의 간판이 흔들렸다. 붉은 네온사인이 깜빡였다. 백도현의 수급지였다. 장기를 적출하는 도살장이다. 밤의 골고다 자금줄이었다.
태조는 칼을 정비했다. 탄환을 탄창에 밀어 넣었다. 철컥 소리가 고요하게 울렸다. 장부를 품에 넣었다. 옆에서 마강재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다리가 오들오들 떨렸다. 겁먹은 표정이었다. 마강재는 병원 지도를 펼쳤다.
"태조 씨 진짜 미친 겁니까?"
마강재가 속삭였다.
"여기는 인간 도살장입니다." "경비가 삼엄합니다."
그는 다리를 계속 떨었다. 특유의 조롱 연기였다. 겁먹은 척 이득을 계산했다. 손가락은 지도의 요충지를 짚었다.
"여기서 살아나면 술은 내가 산다."
마강재가 이죽거렸다. 태조는 대꾸하지 않았다. 지도를 눈에 담았다. 윤설아는 구석에서 숨을 죽였다. 그녀의 손이 품으로 향했다. 부러진 은비녀를 만지고 있었다. 남동생의 유품이라 했다. 비녀에서 미세한 기운이 풍겼다. 초자연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태조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장부가 미세하게 반응했다. 태조는 눈을 돌렸다.
"출발한다."
태조가 빗속으로 나아갔다. 병원의 뒷문으로 접근했다. 녹슨 철문이 가로막았다. 태조는 주머니에서 칼을 뺐다. 틈새로 칼날을 밀어 넣었다. 가볍게 힘을 주었다. 툭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깨졌다. 태조는 문을 밀었다. 안은 어둡고 습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일반적인 병원의 냄새가 아니다. 도살장의 냄새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벽면에는 검은 얼룩이 가득했다. 전부 말라붙은 피였다. 태조는 소리 없이 내려갔다. 발소리가 죽었다. 마강재와 윤설아가 뒤를 따랐다. 계단 끝에 철문이 있었다. 수술실 입구였다. 태조는 수술실 문을 열었다.
눈앞에 기괴한 광경이 펼쳐졌다. 수술대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위에는 붉은 결정들이 가득했다. 결정들이 흐릿하게 빛났다. 가까이 다가갔다. 귀가 먹먹해졌다.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것은 영혼들의 절규였다. 산 채로 해체된 자들의 원한이다. 원한이 굳어 화폐가 되었다. 괴담 화폐였다.
품속의 장부가 뜨거워졌다. 붉은 글씨가 솟아올랐다. 대차대조의 법칙이 작동했다. 장부가 연산을 시작했다. 괴담 화폐의 힘을 흡수했다. 동시에 대가가 찾아왔다. 태조의 뇌세포가 타들어 갔다. 심장이 멈추는 통증이었다. 숨이 막혔다. 피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태조는 침묵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니까. 스스로를 파멸로 몰 뿐이었다. 그는 고통을 이겨냈다. 정신력으로 채무를 버텼다.
"누가 허락 없이 들어왔지?"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수술대 사이로 그림자가 걸어왔다.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 가운은 피로 절어 있었다. 그의 손에는 긴 메스가 들려 있었다. 눈동자가 흐릿했다. 광기에 물든 눈이었다. 그가 바로 닥터 클레이였다. 이 병원의 원장이자 괴담마였다.
"새로운 실험체인가?"
닥터 클레이가 웃었다. 그의 손에 든 메스가 늘어났다. 철컥 철컥 소리가 났다. 메스가 기형적으로 길어졌다. 길이는 이 미터를 넘었다. 그것은 칼날이 아니라 채찍 같았다. 닥터 클레이의 살인 법칙이다. 메스에 닿는 모든 것을 해체한다.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힘이었다.
"조심해!"
마강재가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그는 수술대 뒤로 숨었다. 윤설아도 벽에 몸을 밀착했다. 태조는 물러서지 않았다. 장부를 가볍게 두드렸다. 탄환을 장전했다. 닥터 클레이가 메스를 휘둘렀다.
쉬이익!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날카로웠다. 메스가 태조의 목을 겨냥했다. 태조는 바닥을 굴렀다. 메스가 수술대를 스쳤다. 강철 수술대가 두부처럼 잘려 나갔. 단면이 매끄러웠다. 무시무시한 절삭력이었다. 태조는 수술대 조명을 바라보았다. 머리 위에 거대한 무영등이 있었다. 계획이 섰다. 규칙을 해킹해야 한다.
태조는 장부를 펼쳤다. 연산 시스템을 가동했다. 붉은 광선이 장부에서 뿜어졌다. 광선이 무영등으로 향했다. 무영등의 인과율이 뒤틀렸다. 빛의 농도가 달라졌다. 닥터 클레이가 다시 메스를 치켜들었다. 태조는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무영등을 맞췄다.
쾅!
무영등이 폭발했다. 단순한 폭발이 아니었다. 빛의 폭풍이 일었다. 수술실 전체가 하얗게 물들었다. 엄청난 광량이 사방을 덮쳤다. 닥터 클레이가 비명을 질렀. 그의 눈이 멀었다. 강렬한 빛에 신체가 마비되었다. 규칙의 왜곡 현상이었다.
태조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바닥을 차고 도약했다. 닥터 클레이에게 접근했다.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장부의 힘을 주입했다. 닥터 클레이의 신경망을 해킹했다. 그의 살인 법칙을 뒤틀었다. 메스의 운동 방향을 꺾었다. 닥터 클레이의 팔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이, 이게 무슨...!"
닥터 클레이가 소리쳤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긴 메스가 둥글게 휘었다. 끝부분이 그의 목을 향했다. 태조는 힘을 더 주었다. 장부의 붉은 빛이 손을 감쌌다. 인과가 완전히 뒤집혔다. 살인마의 무기가 자신을 겨눴다.
서걱.
날카로운 메스가 목을 파고들었다. 닥터 클레이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검붉은 분수가 허공을 적셨다. 그의 몸이 경련했다. 태조는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손을 놓지 않았다. 메스를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사지가 역으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닥터 클레이의 관절이 꺾였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방을 채웠다. 그가 행했던 도살의 재현이었다. 인과응보였다.
닥터 클레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수술실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마강재가 수술대 뒤에서 나왔다. 그의 이마에 땀이 가득했다. 윤설아도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태조는 장부를 닫았다. 가슴을 쥐어짜는 고통이 밀려왔다. 대차대조의 청구서였다. 태조는 입술을 깨물었다.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피 한 모금을 바닥에 뱉었다.
"끝났군."
마강재가 안경을 닦으며 말했다. 그의 눈빛이 탐욕으로 빛났다. 병원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돈이 될 만한 것을 찾는 몸짓이다.
태조는 닥터 클레이의 품을 뒤졌다. 열쇠 꾸러미가 나왔다. 수술실 안쪽에 철제 문이 있었다. 비밀 금고였다. 태조는 열쇠를 꽂았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안은 영하의 온도였다. 수많은 유리 배양기들이 있었다. 초록색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는 장기들이 부유했다. 뇌들이 둥둥 떠 있었다.
윤설아가 금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배양기들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실험체들의 이름이었다. 설아는 홀린 듯 걸어갔다. 하나의 배양기 앞에 멈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손에 쥔 은비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소리가 고요함을 깼다.
배양기 안의 뇌가 보였다. 그 앞의 이름표가 빛났다. 설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름표에 적힌 세 글자. 그것은 그녀가 찾던 이름이었다. 잃어버린 남동생의 이름이었다.
설아의 무릎이 꺾였다.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비녀가 바닥에서 굴렀다. 은색 단면이 붉게 빛났다. 비녀는 평범한 게 아니었다. 그것은 괴담의 핵이었다. 배양액이 부르르 떨렸다. 남동생의 뇌가 요동쳤다. 맥박처럼 붉은 빛이 돌았다. 설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녀가 비녀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뱄다. 비녀의 끝이 날카로웠다. 피가 비녀로 스며들었다. 웅 하는 진동이 울렸다. 금고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장부가 품속에서 꿈틀댔다. 새로운 인과가 얽혔다. 태조는 설아를 밀쳐냈다. 그녀는 벽에 부딪혔다. 비녀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동생의 뇌와 선이 연결됐다. 붉은 실 같은 마력이다. 마강재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철제 문이 저절로 닫혔다. 쾅 하는 소리가 울렸다. 퇴로가 차단되었다. 금고 내부 온도가 급상승했다. 배양액이 끓었다. 뇌들이 요동쳤다. 스피커가 지직거렸다. 백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웃음이 방을 채웠다.
"찾았구나 윤설아."
목소리는 뇌에서 나왔다. 정확히는 동생의 뇌였다. 도현이 신경을 지배했다. 그것은 단순한 장기가 아니다. 이 병원의 메인 서버였다. 태조는 장부를 꽉 쥐었다. 오른손에 힘을 모았다. 대차가 다시 작동했다.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다. 태조는 무표정했다. 그는 고통을 짓밟았다. 장부의 사슬이 뻗었다. 사슬이 배양기를 감쌌다. 유리가 깨지며 액체가 쏟아졌다. 뇌가 바닥에 떨어졌다. 설아가 비명을 질렀. 동생의 뇌를 안으려 했다. 태조가 그녀의 덜미를 잡았다.
"놔 이거 놓으라고!"
설아가 발악하며 울었다. 태조의 눈은 냉정했다. 그것은 이미 생명이 아니다. 괴담의 동력원일 뿐이다. 비녀가 뇌를 관통했다. 은빛 비녀가 검게 변했다. 동력원이 폭주했다. 유리관들이 깨졌다. 장기들이 쏟아졌다. 그것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기괴한 형상이 생겼다. 살덩이로 이루어진 괴물이다. 괴물의 머리에 이름표가 붙었다. 설아 동생의 이름이었다. 괴물이 붉은 눈을 떴다. 태조를 향해 포효했다.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돌가루가 사방으로 날렸다. 마강재가 머리를 감쌌다.
"다 죽게 생겼습니다!"
태조는 칼을 고쳐 잡았다. 장부의 마지막 장이 열렸다. 새로운 채무가 쌓였다. 임종의 고통이 전신을 때렸다. 태조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눈앞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 사냥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