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전등이 꺼졌다. 안전 가옥 내부가 암전됐다. 어둠이 방을 삼켰다. 태조는 즉시 몸을 낮췄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슈우우욱! 벽을 뚫고 쇠붙이가 날아들었다. 수백 개의 쐐기못이었다. 빗물처럼 쏟아졌다. 석고보드가 박살 났다. 시멘트 가루가 날렸다.
"엎드려!" 태조가 낮게 읊조렸다. 옆에 있던 설아의 덜미를 잡았다. 그녀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구석에 세워진 철제 문짝이 보였다. 공사 자재로 쓰려던 두꺼운 철판이었다. 태조는 한 손으로 철판을 당겼다.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콰당! 철판을 비스듬히 눕혔다. 설아의 머리 위를 덮었다. 쐐기못들이 철판에 부딪혔다. 팅! 팅! 타다다당! 고막을 찢는 비명이 울렸다. 철판이 요동쳤다. 진동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태조는 표정을 굳혔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충격은 뼈로 전달됐다.
"마강재는?" 태조가 물었다. "싱크대 밑에 숨었어요!" 설아가 흙먼지를 마시며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태조는 권총을 뽑아 들었다. 어둠 속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창문 너머에서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회색 방독면을 쓴 자들이었다. 강도식의 정예 결사대였다. 놈들의 손에 쇠뇌가 들려 있었다. 지속적인 기습이었다. 태조는 탄창을 확인했다. 마지막 도살자 탄환이 장전되어 있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이 고요를 깨트렸다. 창문을 깨고 침입하려던 놈의 이마에 구멍이 뚫렸다. 치이익! 놈의 신체가 검게 썩어 들어갔다. 즉사 효과였다. 괴물 같은 생명력도 소용없었다. 놈이 비명도 없이 쓰러졌다.
하지만 적의 수는 많았다. 문과 창문이 동시에 부서졌다. 다섯 명의 정예병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놈들의 몸에서 불길한 기운이 뿜어 나왔다. 검붉은 마력의 파동이었다.
놈들이 대열을 정비했다. 동시에 무기를 치켜들었다. 태조는 바닥을 굴렀다. 부서진 식탁 다리를 잡았다. 그것을 그대로 던졌다. 휙! 식탁 다리가 공기를 갈랐다. 선두에 선 놈의 안면을 때렸다. 퍽! 방독면이 깨지며 붉은 피가 튀었다. 놈이 뒤로 비틀거렸다. 태조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바닥을 차고 도약했다. 놈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대로 바닥에 메쳤다. 쾅! 시멘트 바닥이 갈라졌다. 태조는 놈의 허리춤을 뒤졌다. 단검 한 자루가 잡혔다. 망설임 없이 그어버렸다. 서걱! 뜨거운 피가 뺨에 튀었다.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감각은 무뎠다. 눈앞의 적들만 보였다.
"죽여라!" 어둠 속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세 명이 동시에 덤벼들었다. 쇠사슬이 허공을 휘감았다. 태조는 철제 문짝 뒤로 숨었다. 깡! 깡! 쇠사슬이 철판을 때렸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충격으로 철판이 찌그러졌다. 태조의 어깨뼈가 삐걱거렸다. 고통은 느끼지 못했다. 다만 가동 범위가 좁아졌다. 몸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장부의 반동 때문이었다.
품 안이 미친 듯이 뜨거웠다. 장부가 살을 태우는 것 같았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장부의 3번째 페이지였다. 푸른 결함 봉인선이 꿈틀거렸다. 마치 살아 있는 뱀 같았다. 그 선이 빛을 발했다. 적들이 뿜어내는 마력을 빨아들였다. 검붉은 기운이 장부로 흘러들었다. 파지직! 장부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푸른 선에 균열이 생겼다. 쩍. 쩍. 갈라지는 소리가 뇌리를 때렸다. 태조의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경고 신호였다. 장부의 힘이 폭주하려 했다.
"태조 씨! 장부가!" 설아가 소리쳤다. 그녀는 철판 밑에서 떨고 있었다. 태조는 장부를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품으로 더 밀어 넣었다. 폭주를 억누르려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균열이 완전히 벌어졌다. 파아앗! 푸른 빛이 가옥을 가득 채웠다. 눈이 멀 것 같은 광폭한 빛이었다. 그 빛 속에서 안개가 뿜어 나왔다. 그냥 안개가 아니었다. 핏빛을 띤 피안개였다. 차가운 한기가 뼈를 에웠다. 실내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입김이 하얗게 서렸다.
"이게 무슨……!" 침입자들이 걸음을 멈췄다. 놈들의 목소리에 공포가 담겼다. 피안개 속에서 형상이 나타났다. 기괴하게 뒤틀린 그림자들이었다. 실루엣만 보였다. 그들은 목이 잘린 사형수들이었다. 사슬을 감은 처형인들이었다. 고대의 원혼들이었다. 그들이 허공을 부유했다. 섬뜩한 울음소리가 방을 채웠다. 우우우우. 귀를 찢는 비명이었다. 원혼들이 움직였다. 적들을 향해 쇄도했다.
"으아악!" 방독면을 쓴 자가 비명을 질렀다. 원혼의 손길이 놈을 스쳤다. 그 순간 놈의 팔이 뜯겨 나갔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가차 없는 도살이었다. 또 다른 원혼이 사슬을 휘둘렀다. 사슬이 침입자의 목을 감았다. 그대로 잡아당겼다. 두둑. 목뼈가 부러지며 머리가 떨어졌다. 바닥을 뒹굴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적들은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무기를 휘둘러도 허공을 갈랐다. 원혼들은 물리적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직 살육만을 반복했다.
서걱. 콰직.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살점이 튀어 벽에 붙었다. 바닥은 피바다가 되었다. 비린내가 진동했다. 설아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강재는 싱크대 밑에서 기절했다. 태조는 그 광경을 지켜봤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것이 장부의 결함이었다. 통제 불가능한 살육 병기였다.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다. 원혼들이 태조를 바라봤다. 붉은 눈빛이 태조를 향했다. 놈들이 다가오려 했다.
그때 태조의 가슴이 찢어졌다. "윽!" 태조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대차대조의 법칙이었다. 공포 채무가 쌓였다. 청구서가 날아왔다. 원혼들에게 도살당한 자들. 그들이 느낀 고통이 밀려왔다. 몸이 불타는 느낌이었다. 살 가죽이 벗겨지는 감각이었다. 목뼈가 부러지는 충격이었다. 그 모든 임종의 고통이었다. 그것이 태조의 뇌로 다이렉트 연결됐다. 뇌세포가 타들어 갔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영혼의 타격이었다. 정신이 찌그러졌다.
"허 억……!" 태조가 피를 토했다. 검붉은 피가 바닥을 적셨다. 온몸의 핏줄이 터졌다. 피부가 붉게 충혈됐다. 눈공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시야가 흐려졌다. 의식이 멀어지려 했다. 암흑이 유혹했다. 기절하면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태조는 이빨을 악물었다. 빠드득! 어금니가 깨져 나갔다. 입안이 피로 가득 찼다. 복수심이 그를 붙잡았다. 백도현을 죽이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 태조는 정신력을 쥐어짜 냈다. 정신으로 육체의 붕괴를 막았다. 억지로 몸을 지탱했다.
원혼들이 태조의 기세에 주춤했다. 그들은 다시 장부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푸른 봉인선이 서서히 닫혔다. 피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방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서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바닥에는 시체 조각들만 뒹굴었다.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태조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었다. 장부를 주머니에 넣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초인적인 정신력의 한계였다.
"태, 태조 씨……?" 설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태조의 몰골을 보고 경악했다. 피눈물을 흘리는 괴물 같았다. 태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문 쪽을 바라봤다. 피안개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희미한 붉은 장막 너머였다.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철벅. 철벅. 피와 살점을 밟는 소리였다. 일정한 박자였다. 망설임이 없는 걸음걸이였다. 바닥을 긁는 쇳소리도 함께 들렸다. 스으으윽.
태조의 눈동자가 그곳을 향했다. 안개 너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엄청난 풍채였다. 한 손에 기계식 철퇴를 쥐고 있었다. 철퇴의 가시마다 살점이 대롱거렸다. 다른 손에는 거대한 도살용 도끼가 들려 있었다. 가죽 앞치마는 피로 절어 있었다. 그의 얼굴에 광기가 서려 있었다. 입꼬리가 찢어지게 올라가 있었다. 밤의 골고다 최고 사냥꾼. 집행자 강도식이었다. 그가 드디어 본체를 드러냈다. 강도식이 철퇴를 들어 올렸다. 가시가 밤빛을 받아 번뜩였다. 그가 태조를 보며 이빨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