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직.
무전기가 울렸다. 날카로운 고주파음이었다.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태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무전기를 쥔 채 섰다. 액정에 붉은 불빛이 돌았다. 백도현의 신호였다. 피의 불장난이 시작된다. 최종 의식의 신호였다. 태조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분노는 없었다. 오직 사냥감만 남았다. 그는 무전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장비를 챙겼다. 허리에 권총을 찼다. 등에는 소총을 멨다. 품에는 장부를 품었다. 그는 문을 열었다. 바깥은 붉은 안개였다. 사방이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한 시간 뒤였다. 태조는 차량을 몰았다. 검은색 SUV였다. 엔진이 거칠게 울부짖었다. 도로는 완전히 황폐했다. 금이 간 아스팔트였다. 가로등은 모두 꺼졌다. 오직 붉은 안개만 자욱했다. 그 안개 너머가 목적지였다. 섀도우 타워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도시의 괴물 같았다. 갑자기 뒤쪽에서 소리가 났다. 쿠르릉. 거친 배기음이었다. 오토바이 무리였다. 헤드라이트가 안개를 찢었다. 차가운 금속박이 번쩍였다. 골고다의 호위대였다. 그들이 태조를 쫓았다.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바이크는 총 여섯 대였다. 가죽 옷을 입은 사내들이었다. 그들의 손에 쇠사슬이 들렸다. 쇠사슬이 허공을 맴돌았다. 쉭. 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였다. 태조는 백미러를 보았다. 경로를 계산했다. 그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바퀴가 비명을 질렀다. 가장 앞선 바이크가 붙었다. 사내가 사슬을 휘둘렀다. 깡! 차량 옆면이 찌그러졌다. 태조는 핸들을 꺾었다. 차체가 우측으로 쏠렸다. 바이크를 측면으로 밀었다. 쾅! 가드레일과 바이크가 충돌했다.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사내가 튕겨 나갔다. 바닥을 구르는 형체가 보였다. 하지만 다섯 대가 남았다. 그들은 대열을 정비했다. 양옆으로 갈라졌다. 태조를 포위하려는 심산이었다. 사내들이 총을 꺼냈다. 권총의 총구가 빛났다. 타탕! 뒷유리가 박살 났다. 파편이 태조의 어깨에 튀었다. 그는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뇌는 차가웠다. 오직 살육의 효율만 따졌다. 그때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태조 씨."
설아의 목소리였다. 무전기 너머는 조용했다. 그녀는 건물 옥상에 있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뒤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하지만 단단했다. 동생의 죽음을 보았다. 슬퍼할 시간은 끝났다. 영악한 그녀는 생존을 택했다. 복수가 그녀를 채웠다.
"보여요."
설아가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라이플이 있었다. 마강재가 넘겨준 무기였다. 괴담의 뼈로 깎은 총이었다. 설아는 조준경을 보았다. 태조의 차량이 보였다. 그 뒤를 쫓는 바이크도 보였다. 그녀는 숨을 참았다. 방아쇠를 당겼다.
탕!
거대한 총성이 울렸다. 불꽃이 총구를 떠났다. 총알은 허공을 가르고 날았다. 바이크 한 대의 앞바퀴에 박혔다. 퍼엉! 타이어가 파열했다. 바이크가 앞부분부터 고꾸라졌다. 사내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대로 아스팔트에 머리를 박았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즉사였다.
"한 놈."
설아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나약함은 지워졌다. 그녀는 다시 볼트를 당겼다. 찰칵. 새 탄환이 약실로 들어갔다. 태조는 차를 계속 몰았다. 앞쪽에 차단벽이 보였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였다. 길이 좁아졌다. 바이크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태조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차체가 반바퀴 돌았다. 드리프트였다. 타이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차가 가로로 길을 막았다. 추격하던 바이크들이 멈칫했다. 그 틈을 설아는 놓치지 않았다. 두 번째 총성이 울렸다. 탕! 다른 바이크의 연료탱크가 터졌다. 화염이 밤을 밝혔다. 폭발이 옆 바이크를 휩쓸었다. 두 대가 동시에 타올랐다. 사내들의 비명이 들렸다. 불타는 인간들이 뒹굴었다. 태조는 차 문을 열었다. 그는 밖으로 내렸다. 바람이 그의 코트를 흔들었다. 남은 바이크는 두 대였다. 사내들이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그들의 손에 도끼가 들렸다. 강도식의 부하들이 분명했다. 살기가 대기를 채웠다. 태조는 소총을 다잡았다. 그의 눈이 타워를 향했다. 거대한 기둥이 우뚝 서 있었다. 타워 중심부에서 빛이 났다. 붉은 맥박이었다. 쿵. 쿵. 기괴한 진동이 대지를 흔들었다. 태조의 심장이 반응했다. 그의 장부가 뜨거워졌다. 우측 상단이 붉게 물들었다. 한계 채무 경고등이었다. 붉은 빛이 격렬하게 깜빡였다. 뇌세포 괴사율 80%. 경고 문구가 시야에 어렸다. 뇌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피해자들의 임종 고통이었다. 숨이 막혔다.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태조는 걸음을 옮겼다. 고통은 그에게 연료였다. 그는 통증 속에서 웃었다. 얼굴은 무표정했다. 눈동자만 광기로 번뜩였다. 타워는 피를 원하고 있었다. 도시 전체의 피였다. 대차대조의 거대한 회로였다. 백도현이 만든 제단이었다. 그 제단을 부수러 왔다. 사내들이 태조에게 달려들었다. 도끼가 차가운 궤적을 그렸다. 태조는 장부를 펼쳤다. 강도식의 페이지를 찾았다. 피 묻은 도끼 그림이었다. 태조가 손가락을 댔다. 그의 피가 장부에 스며들었다. 장부의 글씨가 요동쳤다. 강도식의 무자비한 파괴력. 그것이 소총으로 흘러들었다. 소총의 총신이 붉게 변했다. 강철 도끼의 기운이었다. 태조는 총구를 전방으로 겨눴다. 사내들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그들은 멈추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단두대."
태조가 중얼거렸다.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탕!
총성이 세 번 울렸다. 나간 것은 총알이 아니었다. 붉은 반월형 칼날이었다. 허공을 가르는 참수 무리였다. 칼날들이 궤적을 그리며 날았다. 그것은 유도탄처럼 휘어졌다. 도망치려던 사내들의 목을 노렸다. 스윽. 종이 한 장 베는 소리였다. 두 사내의 머리가 분리되었다. 바닥으로 피 분수가 솟았다. 머리들이 아스팔트를 굴렀다. 몸통들이 뒤늦게 쓰러졌다. 풀썩. 피비린내가 사방으로 진동했다. 태조는 총을 내렸다. 그의 뇌로 다시 통증이 엄습했다. 목이 잘린 자들의 마지막 감각. 숨이 턱 막히는 질식감. 목뼈가 으스러지는 충격. 태조는 가래침을 뱉었다. 붉은 피가 섞여 있었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타워로 향했다. 타워의 정문이 보였다. 수십 미터 높이의 철문이었다. 외곽 진지에는 적들이 더 있었다. 바리케이드 뒤의 사수들이었다. 그들이 태조를 보았다. 총포를 일제히 겨눴다. 태조는 장부를 꽉 쥐었다. 소총을 다시 견착했다. 아직 도끼의 기운이 남았다. 그는 남은 탄환을 모두 쏟았다. 단두대 소사였다. 붉은 칼날들이 폭풍처럼 날아갔다. 바리케이드를 통째로 잘랐다. 콘크리트 벽이 무너졌다. 그 뒤에 숨은 사수들도 잘렸다. 사지가 허공을 날아다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순식간의 도살이었다. 외곽 진지가 침묵에 잠겼다. 오직 피 흐르는 소리만 났다. 태조는 연기 나는 총을 들었다. 그는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때 품 안의 무전기가 울렸다. 기분 나쁜 주파수였다. 지직. 지지직. 강도식의 무전기였다. 그 고장 난 무전기였다. 암호 주파수가 강해졌다. 소리가 정문을 자극했다. 철문이 기괴하게 흔들렸다. 쩌적. 거대한 문이 스스로 갈라졌다. 안쪽에서 붉은 안개가 폭발했다. 안개는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장벽이었다. 공간이 뒤틀리는 장막이었다. 타락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태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장벽 너머가 보였다. 어두운 대성당의 형상이었다. 유령 대성당이었다. 붉은 장벽이 태조의 앞을 막았다. 그 너머로 갈 수 없었다. 무전기의 주파수가 더 격렬하게 요동쳤다. 장벽이 붉은 빛으로 일렁였다. 태조의 발걸음이 멈췄다. 새로운 장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조는 무전기를 꺼냈다. 주파수가 격렬하게 날뛰었다. 지직. 지지직. 기분 나쁜 신호음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잡음이 아니다. 대성당을 여는 열쇠다. 태조는 무전기를 쳐다보았다. 그는 장막으로 다가갔다. 붉은 장벽이 일렁였다. 뜨거운 열기가 뿜어졌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태조는 무전기를 밀어 넣었다. 장벽의 표면에 갖다 댔다.
지지지직!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붉은 빛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장벽의 규칙이 충돌했다. 암호 주파수가 벽을 해킹했다. 문양이 기형적으로 뒤틀렸다. 태조는 장부를 꽉 쥐었다. 그의 손끝이 타들어 갔다. 치이익.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태조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통증은 그에게 가짜였다. 그의 뇌는 감각을 지웠다. 오직 목적지만 응시했다. 그때 장부가 붉게 물들었다. 우측 상단이 격렬하게 깜빡였다. 붉은 경고등이었다.
'한계 채무 경고.'
글씨가 피처럼 흘러내렸다. 뇌세포 괴사율 85%. 경고 문구가 시야를 가렸다. 순간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수천 명의 비명이 들렸다.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진 자들. 뇌가 타들어 가는 고통이었다. 태조의 눈에서 피가 흘렀다. 그는 잇새로 신음을 삼켰다. 버텨야 했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백도현의 목을 따기 전까지는. 태조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무전기를 더 깊이 밀었다.
쾅!
장벽이 폭발하듯 갈라졌다. 붉은 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길이 열렸다. 그 너머는 거대한 성당이었다. 천장이 보이지 않았다. 기둥들은 뼈로 만들어졌다. 바닥에는 피가 고여 있었다. 유령 대성당이었다. 백도현의 최종 영역이었다. 태조는 성당 안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벅. 벅. 사방이 기괴하리만치 조용했다. 그때 성단 위에서 불이 켜졌다. 붉은 촛불들이었다. 그 아래에 의자가 있었다. 누군가 앉아 있었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사내였다. 사내의 얼굴은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태조는 알았다. 그의 손이 권총으로 향했다. 그때 사내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손에 든 것이 빛났다. 은빛 비녀였다. 설아 동생의 유품이었다. 사내가 후드를 벗었다. 드러난 얼굴에 태조가 굳었다. 그것은 백도현이 아니었다. 죽은 줄 알았던 자였다. 태조의 여동생이었다. 그녀가 태조를 보며 웃었다. 입이 귀 밑까지 찢어졌다. 그녀의 손이 총을 겨눴다. 태조의 심장이 멎었다.
태조의 심장이 뛰지 않았다. 감정은 이미 마멸되었다. 그것은 동생이 아니다. 동생은 이미 죽었다. 가장 잔혹하게 도살당했다. 저것은 모조품이다. 백도현이 만든 괴담이다. 태조는 총구를 겨눴다.
탕!
망설임은 없었다. 동생의 이마에 구멍이 났다. 붉은 피가 뿜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쓰러지지 않았다. 찢어진 입이 더 벌어졌다.
"오빠."
기괴한 목소리였다. 쇠를 긁는 소리였다. 그녀가 비녀를 휘둘렀다. 은빛 선광이 뿜어졌다. 날카로운 참격이었다. 태조는 옆으로 도약했다. 석조 기둥 뒤로 숨었다. 기둥이 사선으로 잘려 나갔다. 육중한 돌덩이가 떨어졌다.
콰앙!
바닥이 비명을 질렀다. 태조는 구르며 사격했다. 타타탕! 소총탄이 전신을 찢었다. 괴물은 뒤로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순식간에 코앞이었다. 차가운 손가락이 목을 노렸다. 태조는 소총 개머리판으로 찍었다. 괴물의 턱을 가격했다. 적의 고개가 꺾였다. 동시에 태조의 가슴이 뚫렸다. 은빛 비녀가 박혔다.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생명력이 빠져나갔다. 장부가 요동쳤다. 우측 상단이 붉게 터졌다.
'경고. 심장 정지 임박.'
붉은 글씨가 시야를 덮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태조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괴물의 목을 잡았다. 장부를 펼쳐 괴물의 가슴에 댔다.
"회수한다."
태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장부에서 검은 실이 뿜어졌다. 실들이 괴물을 감쌌다. 검은 연기로 변했다. 연기가 장부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바닥의 피가 끓어올랐다. 대성당 전체가 진동했다. 천장 가득 눈동자가 열렸다. 수백 개의 눈동자였다. 그것들이 태조를 내려다보았다. 백도현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의식은 완성되었다."
성당 바닥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피의 늪이 태조를 삼켰다. 발이 묶였다.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성당 중앙이 갈라졌다. 진짜 제단이 떠올랐다. 그 위에 여동생의 유골이 있었다. 유골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백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를 구하겠나." "아니면 도시를 버리겠나."
선택의 시간이었다. 태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