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욱. 녹색 가스가 뿜어졌다. 배관이 찢어진 탓이다. 천장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졌다. 바닥이 요동쳤다. 강도식이 미친 듯 웃었다. 그의 얼굴 핏줄이 터졌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완벽한 광기였다.
"다 같이 죽는 거다!"
도식이 소리쳤다. 태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건조했다. 신경은 차분했다. 태조는 장부를 움켜쥐었다. 품에서 검은 가죽이 울렸다. 장부의 4페이지가 빛났다. 강탈한 도끼의 형상이다. 사형집행기의 유물이다. 태조가 장부를 젖혔다.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채무 이자가 기록되었다. 뇌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태조는 고통을 무시했다. 그는 손을 뻗었다.
"비켜서라."
태조가 나지막이 뱉었다. 장부에서 검은 빛이 돌았다. 도끼의 칼날이 실체화됐다. 거대한 붉은 궤적이었다. 태조가 허공을 내리쳤다. 쿠우웅! 엄청난 충격파가 일었다. 무너지는 천장을 겨눴다. 쏟아지던 돌더미가 깨졌다. 콘크리트가 가루가 됐다. 사방으로 먼지가 날렸다. 시야가 흐려졌다. 태조는 앞만 보고 뛰었다. 가스 냄새가 독했다. 폐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다. 윤설아가 기침을 뱉었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했다. 마강재가 뒤를 따랐다. 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벽면이 다시 갈라졌다. 두꺼운 기둥이 기울었다. 지하도가 붕괴하고 있었다. 태조는 도끼의 궤적을 썼다. 한 번 더 허공을 갈랐다. 붉은 광포가 폭발했다. 막혔던 통로가 뚫렸다. 잔해가 양옆으로 밀렸다. 공간이 열렸다. 탈출구가 보였다. 지하 배수구의 철문이다. 태조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다리는 기계 같았다. 공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콰르릉! 뒤쪽에서 굉음이 터졌다. 엄청난 질량의 붕괴였다. 바닥 전체가 주저앉았다. 충격파가 등을 때렸다. 강재의 비명이 들렸다. 태조가 고개를 돌렸다. 강재가 쓰러져 있었다. 거대한 잔돌이 보였다. 그의 다리를 누르고 있었다. 오른쪽 무릎이 뒤틀렸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강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신음조차 참았다. 대신 비굴하게 웃었다. 입가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태조 씨. 그냥 가쇼."
강재가 밭은 숨을 쉬었다. 그의 눈에 체념이 서렸다. "난 장사꾼이오." 그가 안경을 고쳐 잡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손해 보는 장사는 싫소." "나 두고 빨리 가쇼." 강재가 소리쳤다. 설아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안 돼요! 같이 가요!" 설아가 돌을 치우려 했다.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먼지가 허공을 메웠다. 산소가 부족했다. 가스가 코앞까지 밀려왔다.
태조는 말이 없었다. 그는 강재에게 걸어갔다. 감정 없는 눈빛이었다. 그의 손이 움직였다. 태조는 장부를 덮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강재의 덜컥거리는 목덜미. 그곳을 강하게 낚아챘다. 무자비한 손길이었다. 태조는 힘을 주었다. 그의 어깨 근육이 솟았다. 어깨 부상의 통증이 일었다. 태조는 느끼지 못했다. 그저 들어 올릴 뿐이었다. 강재의 다리가 빠져나왔다. 강재가 비명을 질렀다. 뼈가 스치는 고통이었다. 태조는 귀를 닫았다. 그는 강재를 어깨에 멨다.
"시끄럽다."
태조가 무겁게 말했다. "아직 쓸모가 있다." 그것이 이유였다. 태조는 철문으로 달렸다. 설아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를 앞으로 밀었다. " 뛰어라." 설아가 이 악물고 달렸다. 뒤에서 폭음이 이어졌다. 성일병원이 무너지고 있었다. 지하 기둥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태조는 철문을 발로 찼다. 쾅! 쇠사슬이 끊어졌다. 어두운 하수도가 나타났다. 세 사람은 안으로 몸을 던졌다. 뒤편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입구가 완전히 막혔다. 어둠이 그들을 덮었다.
***
안가의 지하실이었다.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전등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태조는 강재를 바닥에 눕혔다. 강재의 무릎은 엉망이었다. 부어올라 형태가 뭉개졌다. 강재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독한 인간 같으니." 강재가 중얼거렸다. "덕분에 살았소." 태조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무릎이 먼저 꺾였다. 그리고 상체가 무너졌다. 털썩. 건조한 타격음이 났다. 설아가 깜짝 놀라 다가왔다.
"태조 씨! 왜 그래요?"
설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태조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 채무의 청산이다. 대차대조의 법칙이 시작됐다. 사형집행기 도끼의 대가였다.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십 명의 임종이 겹쳤다. 목이 잘려 나가는 감각. 단두대의 칼날이 목을 쳤다. 뇌수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전신 신경 세포가 탔다. 태조의 눈이 충혈됐다. 붉은 피가 눈에서 흘렀다. 코에서도 피가 쏟아졌다. 바닥의 시멘트가 붉게 물들었다.
"아아아윽!"
태조의 입에서 신음이 샜다. 처음으로 내는 고통의 소리였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었다. 하지만 영혼의 고통은 달랐다. 장부가 강제로 주입하는 감각. 피해자들의 마지막 절망이었다. 그것이 뇌세포를 직접 지졌다. 장부 우측 상단이 보였다. 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 돌았다. '한계 채무 경고.' '뇌세포 괴사율 45% 돌파.' 글씨가 핏빛으로 빛났다. 태조는 바닥을 손톱으로 긁었다. 손톱이 뒤집어졌다.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머리를 바닥에 짓찧었다. 쾅! 쾅! 충격으로 고통을 잊으려 했다.
설아가 그의 머리를 감쌌다. "하지 마세요! 제발!" 그녀가 울부짖었다. 설아의 눈물이 태조의 볼에 떨어졌다. 태조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눈앞이 붉은색으로 가득했다. 지옥의 풍경이었다. 수많은 손이 자신을 끌어당겼다. 그들은 울부짖고 있었다. '왜 우리를 구하지 않았어.' '왜 힘을 탐하는 거야.' 원혼들의 원망이 고막을 찔렀다. 태조는 이빨을 악물었다. 어금니가 깨져 나갔다. 그는 속으로 외쳤다. '닥쳐라.' '나는 복수를 해야 한다.' '백도현을 죽이기 전엔 안 된다.' 태조의 의지가 불타올랐다. 그의 정신은 단단했다. 강철보다 차가운 집념이었다.
설아가 다급히 손을 움직였다. 그녀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다. 작은 물건이 나왔다. 부러진 은비녀였다. 동생의 유품이라던 그것이었다. 은비녀가 붉은빛을 냈다. 태조의 피가 비녀에 닿았다. 치이익! 기이한 소리가 났다. 은비녀가 초자연적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그것은 단순한 유품이 아니었다. 괴담의 핵이었다. 설아의 동생을 좀비로 만든 동력원. 그 극도의 에너지가 깨어났다. 은비녀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장부가 스스로 열렸다. 검은 사슬들이 뻗어 나왔다. 사슬들이 은비녀를 낚아챘다. 은비녀가 장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녹아내렸다. 새로운 탄환의 동체가 되었다. 동력원이 합쳐진 결과였다. 장부의 에너지가 정렬됐다.
오오옹. 낮은 진동음이 지하실을 채웠다. 태조의 뇌를 찌르던 고통이 멈췄다. 폭주하던 에너지가 진정됐다. 장부의 경고등이 꺼졌다. '채무 일시 상환 완료.' '장부 등급 격상.' 검은 글씨가 새로 새겨졌다. 태조의 호흡이 서서히 돌아왔다. 그는 바닥에 누워 숨을 쉬었다. 전신이 땀과 피로 젖어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더 깊어졌다. 그의 눈동자는 칠흑 같았다. 인간의 감정은 더욱 마모됐다. 오직 사냥꾼의 본능만 남았다. 태조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태조 씨…… 괜찮아요?"
설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손은 피투성이였다. 태조의 지혈을 도운 흔적이었다. 태조는 대답 대신 일어섰다. 몸이 가벼웠다. 체내의 마력이 더 굳건해졌다. 은비녀의 회수 덕분이었다. 괴담의 핵이 장부와 융합했다. 이제 더 강력한 탄환을 쓸 수 있다. 태조는 강재를 바라보았다. 강재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 "괴물이군." 강재가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진짜 괴물이야." 그의 목소리엔 경외가 담겨 있었다. 태조는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이 보였다. 강도식의 품에서 떨어진 무전기였다. 그것이 지직거렸다.
치이이익. 특수 암호 주파수의 소리였다. 태조는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전해졌다. 무전기 스피커가 울렸다. 찢어지는 고주파음이었다. 설아가 귀를 막았다. 강재도 얼굴을 찌푸렸다. 소음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맑고 깨끗한 목소리였다. 클래식 음악이 배경으로 깔렸다. 피아노 선율이었다. 태조는 그 목소리를 알았다. 여동생의 목숨을 앗아간 자. 도시를 도살장으로 만든 원흉. 백도현이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백도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강도식은 실패했나 보군." "무식한 놈이라 기대를 안 했지." 주파수 너머로 바람 소리가 섞였다. 높은 곳인 모양이었다. "한태조 씨. 듣고 있나?" 도현이 이름을 불렀다. 태조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무전기의 플라스틱 몸체가 비틀렸다. 그의 눈에 살기가 찼다. 도현이 계속 말을 이었다. " 연극의 막이 오른다." "관객들은 이미 자리에 앉았지." "최종 무대로 오라." "섀도우 타워가 준비되었다." "피의 불장난을 시작하지."
송신이 끊겼다. 치이익 하는 소음만 남았다. 지하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렸다. 설아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섀도우 타워……." 그녀가 중얼거렸다. 도시의 가장 높은 곳. 백도현의 본거지였다. 그곳에서 의식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태조는 무전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장부를 챙겼다. 새로운 탄환이 장부 안에서 박동했다. 그의 사냥 시간이었다. 태조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어둠이 그의 뒤를 따랐다.
갑자기 무전기가 울렸다. 기분 나쁜 고주파음이었다. 무전기 안에서 붉은 불빛이 돌았다. 위치 추적 신호였다. 설아가 비명을 참으며 입을 막았다.
"추적기예요!"
강재가 마른침을 삼켰다.
"도식이 일부러 흘린 거였군."
문밖에서 기괴한 소리가 났다. 스스스슥. 뱀이 기어가는 소리였다. 붉은 안개가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섀도우 아일의 안개였다. 안가가 포위당했다. 태조는 걸음을 멈췄다. 그는 허리춤의 총을 뽑았다. 장부를 펼쳤다. 새로 채워진 은빛 탄환이 보였다. 윤설아 동생의 유품이 녹아든 탄이다. 은비녀 탄환. 장부에 이름이 새겨졌다. '망령의 송곳.' 태조는 장부를 덮었다. 그가 탄환을 약실에 밀어 넣었다. 찰칵. 금속음이 차갑게 울렸다. 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쾅! 철문이 안쪽으로 찌그러졌다. 거대한 그림자가 문을 부쉈다. 검은 가죽 코트를 입은 사내들이었다. 골고다의 집행 부대였다. 그들의 손에 살해용 사슬이 들려 있었다. 사슬이 허공을 갈랐다. 태조의 머리를 노렸다. 태조는 고개를 숙였다. 사슬이 벽에 박혔다. 콘크리트 조각이 튀었다. 태조는 바닥을 굴렀다. 엄폐물인 철제 책상 뒤로 숨었다. 사격 각도를 계산했다. 사내들이 책상을 향해 총을 쐈다. 타타탕!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태조는 호흡을 멈췄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총구를 적에게 겨눴다.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은빛 선광이 뿜어졌다. 일반 탄환이 아니었다. 탄환이 허공에서 갈라졌다. 수십 개의 은빛 가시가 되었다. 망령의 송곳이었다. 가시들이 사내들의 전신을 꿰뚫었다.
"크아악!"
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피가 안개와 섞였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안개 속에서 더 거대한 기운이 일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태조는 직감했다. 진짜 사냥꾼이 오고 있었다. 무전기에서 다시 잡음이 일었다.
"한태조."
백도현의 목소리였다.
"선물을 보냈다."
문밖의 안개가 뭉쳐졌다. 기괴한 형상이 드러났다.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거대한 은빛 가시로 뒤덮인 괴물이었다. 설아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몸이 굳었다.
"동생……?"
설아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괴물의 얼굴에 익숙한 이목구비가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그녀의 동생이었다. 괴물이 태조를 향해 포효했다.
쿠어어어!
태조는 총을 다시 장전했다. 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