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을 내불 때마다 하얀 구름 조각 같은 숨결이 허공에 흩어집니다. 혹한의 동굴 깊은 곳, 사방을 둘러싼 빙벽은 차갑기보다 오히려 라벤더 빛깔과 부드러운 민트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과는 달리, 가슴을 저미는 차가운 공기는 금방이라도 온몸을 얼려버릴 듯 당신의 여린 숨통을 조여 옵니다.
그때, 동굴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스르륵, 서늘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극지방의 눈물을 품은 전설의 존재, 빙설사(氷雪蛇)입니다.
햇살에 비친 만년설처럼 눈부시게 하얀 비늘을 반짝이며 나타난 빙설사는, 외관의 아름다움과 달리 몹시 화가 난 상태입니다. 녀석의 꼬리 끝에 맺힌 피 한 방울이 얼어붙어 마치 오색 빛깔의 사탕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아픔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빙설사는 침입자들을 향해 거대한 날개를 파르르 떨더니, 이내 푸른 불꽃 같은 얼음 브레스를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위험해! 내 뒤로 물러서라!"
아버님과 오빠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본능적으로 무기를 치켜세우지만, 빙설사의 입김이 스칠 때마다 동굴의 천장이 슈가 파우더가 와르르 무너지듯 하얀 눈가루를 쏟아내며 흔들립니다. 뾰족한 고드름들이 마치 유리가 만든 음표처럼 바닥으로 떨어지며 예쁜 소리를 내며 깨져 나갑니다. 사방을 뒤흔드는 진동 사이로, 이상하게도 달콤한 솜사탕과 따스한 바닐라 시럽 같은 부드러운 잔향이 코끝을 스칩니다. 빙설사가 뿜어내는 마력에 섞인 신비로운 향기입니다.
'저 우아하고 하얀 뱀 친구가 무척이나 속상한 모양이오. 꼬리에 난 상처가 몹시도 쓰라려 저리 떼를 쓰는 아기 같구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아버님과 오라버니들이 단단한 얼음사탕 속에 갇힌 나비처럼 굳어버릴지도 모르겠소. 시한부인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숨 가쁘지만, 소중한 가족들이 다치는 것만은 결코 볼 수 없구려.'
당신은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가쁜 숨을 억누르며, 부들부들 떨리는 작은 다리에 힘을 줍니다. 동굴을 통째로 무너뜨릴 기세로 요동치는 거대한 뱀의 그림자가 가문 사람들을 덮치기 바로 직전, 당신은 은빛 장막 너머로 슬픔에 젖은 빙설사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봅니다.
가족들을 구하고, 가여운 눈빛을 한 마수와 교감하기 위해 당신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