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정적이 찰나의 순간 깨어집니다. 은빛 서리를 닮은 차가운 눈동자의 큰오빠, 카시안이 당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당혹감이 잔뜩 서려 있습니다. 냉혹하기로 소문난 제국의 학살자라기엔, 지금 그의 눈빛은 갓 구워낸 살구 타르트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운 오렌지빛 감정으로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지 않소.

품 안의 그림자 늑대 새끼가 카시안의 기운에 겁을 먹고 잉잉 울어대자, 당신은 녀석의 보드라운 턱밑을 살살 문질러 줍니다. 그러자 방 안 가득 달콤한 바닐라 빈 향기와 솜사탕처럼 폭신한 온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며 작은 평화가 찾아옵니다.

바로 그 순간, 평화롭던 공기를 가르고 거친 발소리가 복도를 울립니다.

"카시안 도련님! 큰일입니다! 연병장의 S급 그리핀이 폭주하여 가구와 마차를 온통 부수고 있습니다!"

쾅, 하고 문이 열리며 들이닥친 전령의 외침에 카시안의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집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저 멀리 마수 연병장 하늘 위로 성난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 연분홍빛 모래바람과 금빛 번개가 사납게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치명적인 폭풍을 부르는 환상의 영수라 하지만, 아기님인 당신의 눈에는 그저 커다란 깃털 달린 고양이가 맛없는 간식을 받고 심술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어머나, 이 아름다운 대저택의 정원이 저 심술궂은 아기 새 때문에 엉망이 되게 생겼구려.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소?'

당신의 소중한 쉼터이자 달콤한 간식이 가득한 이 보금자리를 망치게 둘 수는 없습니다. 카시안은 당신을 침대 위 안전한 곳으로 밀어 넣듯 이불을 한 자락 덮어주며, 검 자루를 쥔 채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여기서 한 발짝도 나오지 마라. 금방 치우고 돌아올 테니."

말은 무섭게 하지만, 여동생이 감기라도 걸릴까 봐 실크 이불을 콧등까지 덮어주는 그의 손길은 봄바람처럼 간지럽고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카시안이 등을 돌려 문밖으로 빠르게 걸어 나갑니다. 귀를 찌르는 그리핀의 울음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당신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여야 함을 직감합니다.

당신의 작은 두 눈이 반짝이며, 방 안의 두 가지 길을 향해 향합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