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새하얀 레이스 커튼 사이로 살구색 따스한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침실. 방 안에는 방금 구워낸 촉촉한 바닐라 수플레처럼 달콤하고 포근한 향기가 은은하게 감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침대 위는 팽팽한 한기로 얼어붙을 것만 같습니다. 조금 전까지 으르렁거리던 그림자 늑대 새끼가 갑자기 꼬리를 내리고 구석으로 납작 엎드린 것은, 문이 열리며 나타난 거대한 그림자 때문이었습니다.

쾅, 소리를 내며 열린 문틈으로 걸어 들어온 이는 이 가문의 절대적인 지배자이자 당신의 아버님인 벨리알 가주였습니다. 밤하늘을 조각해 넣은 듯한 매끄러운 흑발과 얼음 호수처럼 투명하고 차가운 은회색 눈동자. 그의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은 마치 아기 봄꽃을 시샘하여 몰아치는 심술궂은 겨울 동장군의 기세와도 같습니다.

‘어허, 이 눈빛은 흡사 섣달그믐의 칼바람 같구려. 하지만 내 비록 시한부의 가냘픈 몸일지라도, 이 정도 바람에 꺾일 민들레 꽃씨가 아니외다.’

당신은 속으로 조용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가주를 응시합니다. 비록 전생의 기억을 안고 갓 아기로 환생한 처지라 웅얼거리는 소리밖에 내지 못하지만, 당신의 영혼은 여전히 영리하고 단단하니까요.

가주는 침대 맡에 엎드린 그림자 늑대와, 그 옆에서 솜사탕 같은 이불을 꼭 쥐고 있는 당신을 차가운 시선으로 번갈아 내려다봅니다. 그의 곁에서는 당장이라도 흉포한 송곳니를 드러낼 듯한 사나운 검은 호랑이 모양의 호위 마수가 낮게 가르릉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살벌한 풍경 속에서도 당신은 가주의 넓은 어깨를 보며 ‘참으로 듬직한 아버님이로다’ 하고 감탄할 뿐입니다.

“비명이 들려 와 보았더니, 고작 이 정도더냐.”

그의 목소리는 낮고 낮아서 방 안의 달콤한 공기마저 서늘하게 얼려버릴 것만 같습니다. 가주는 한 걸음 다가와 당신의 침대 깃을 거칠게 내려다보며 감정이 배제된 목소리로 읊조립니다.

“벨리알의 핏줄이면서 고작 하급 마수의 기세에 눌려 우는 나약한 존재는 필요 없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자식에게 힘을 낭비할 생각은 없으니.”

아주 매정한 선언이었지만, 당신의 귀에는 그저 부끄러움이 많아 심술을 부리는 거대한 흑곰의 투정처럼 들릴 뿐입니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 밑에 숨겨진 깊은 피로와 뜻밖의 외로움을 당신은 본능적으로 읽어내지요.

바로 그때, 가주가 몸을 돌려 싸늘하게 멀어지려 합니다. 그의 곁을 지키던 호위 마수가 붉은 안광을 빛내며 슬그머니 당신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순간, 당신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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