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낙양의 밤은 깊고, 어둠은 백화루(百花樓)의 처마 끝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난간을 쥔 당신의 오른손 손가락이 미세하게 까딱인다. 손톱 끝에 닿는 차가운 나무 궤적을 따라, 낙양 전체를 뒤덮은 거미줄의 진동이 전해지는 듯하다.

맹주의 본산은 이미 내적으로 붕괴하고 있다. 당신이 장악한 은밀한 장부와 장로들의 목줄을 쥔 황금의 흐름은 소리 없이 무림맹의 심장부를 잠식했다. 가식과 위선으로 도포된 장로들은 이제 당신이 던져주는 미끼 없이는 숨조차 쉬지 못한다. 돈과 권력, 그리고 숨겨진 치부. 정파의 거물이라 자처하던 자들은 고작 몇 장의 서찰 앞에서 비굴하게 무릎을 꿇었다. 낙양의 절반이 이미 당신의 서늘한 음모 아래 숨죽이고 있다.

그러나 무림맹의 정점, 현 맹주의 안광(眼光)까지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다. 맹주는 자신의 발밑에서 차올라오는 거대하고 음습한 그림자의 존재를 자각했다. 그 정점에 당신이라는 흑도가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대진표가 바뀌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무릎을 꿇은 심복이 서찰 한 장을 바친다. 당신은 서찰을 받지 않는다. 그저 바람에 날리는 촛불의 흔들림을 조용히 응시할 뿐이다. 굳이 읽지 않아도 맹주의 수작은 명백하다. 본선 비무의 대진을 조작하여, 당신의 초식을 극단적으로 상극하는 절정 고수들을 연이어 배치했다. 정당한 비무라는 허울을 쓴 사형대다. 당신이 감추어 둔 사파의 살성을 대명천지에 폭로하고, 합법적으로 파멸시키겠다는 음험한 계산이다.

맹주의 교활한 칼날이 목전에 당도했다. 그는 무림맹의 법도라는 방패 뒤에 숨어 당신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다. 정파의 우두머리다운 기만적이면서도 확실한 한 수다.

식어가는 찻잔 표면에 당신의 무감한 눈동자가 비친다. 당신은 찻잔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탁자 위에 아주 작은 파문조차 일지 않는다. 맹주의 판 흔들기에 굳이 정직하게 응해줄 이유는 없다. 사파의 길은 언제나 기만과 기습, 그리고 손쉬운 지배로 점철되어 왔다. 이제 이 거대한 장기판을 뒤흔들 수 전(手戰)을 가동할 차례다.

낙양 전체의 명맥을 끊어 판을 새로 짤 것인가. 아니면 밤바람을 타고 맹주의 침소로 직접 침투할 것인가.

당신의 시선이 심연처럼 어두운 무림맹 주탑으로 향한다. 소매 안에서 잭칵, 하는 기괴한 금속 파열음이 작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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