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무림맹의 밀실(密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침향(沈香)의 연기가 사방을 가득 메운다. 숨이 막히는 압압한 공기다. 탁자 맞은편, 백발을 성성하게 기른 무림맹 부맹주 제갈경(諸葛景)이 앉아 있다. 심수가 깊은 그의 안광(眼光)이 매섭게 빛난다. 당신은 발소리를 죽인 채 그의 정면에 길게 섰다.
제갈경이 들고 있던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파공음도 없이 흙잔이 탁자에 밀착한다. 극의에 달한 기경(氣勁)의 흔적이다.
"네 무공은 정종(正宗)의 법도를 벗어났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밀실 바닥을 기듯 깔린다. 그의 노련한 시선이 당신의 손끝에 머문다.
"낙양의 지하시장을 장악한 수수께끼의 고수. 그리고 어젯밤 살수들을 몰살한 무자비한 검선(劍線)."
제갈경이 입꼬리를 비틀어 차갑게 웃는다.
"그 검로에서 사파(邪派)의 피비린내가 풍기는구나."
천장이 무너질 듯한 침묵이 흐른다. 당신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린다. 오른손 손가락이 도포자락 안에서 가볍게 굽어진다. 내기가 단전을 타고 손끝으로 모인다. 제갈경은 개의치 않고 제 뜻을 잇는다.
"맹주 선발전 결승이 코앞이다."
그가 다시 찻잔을 들어 한 모금 축인다.
"결승에서 고의로 패배해라."
노골적인 은밀한 거래의 제안이다.
"그리하면 평생 부귀를 누릴 것이다."
그의 눈빛에 비열한 탐욕과 강력한 경고가 교차한다.
"거절한다면, 네놈이 사파의 잔당이라는 사실을 이 밀실을 나가는 즉시 천하공론(天下公論)에 부치겠다."
사파 제일인(第一人)의 정체. 그것이 폭로되는 순간, 무림맹 본산은 그대로 피의 전장(戰場)으로 변할 터다.
당신의 시선이 제갈경의 목덜미로 향한다. 가늘게 맥박이 뛰는 목줄기. 불과 몇 자 거리다. 단 한 번의 격돌로 끊을 수 있다.
그러나 밀실 외부의 기척이 심상치 않다. 문틈 사이로 미세하게 새어드는 호흡 소리. 이미 삼중으로 포위된 격자문 너머로 철검의 한기(寒氣)가 스며든다.
제갈경의 손가락이 탁자를 규칙적으로 두드린다. 타, 타, 탁. 둔탁한 파열음이 귓가를 때린다. 당신의 발끝이 반 보 뒤로 물러선다. 무릎의 각도가 미세하게 내려앉는다. 언제든 신형을 날릴 준비다.
제갈경이 최후통첩을 던지듯 서늘한 미소를 짓는다.
"양자택일(兩者擇一)이다. 맹주 가문의 안방개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이곳에서 사파의 광견(狂犬)으로 도살당할 것인가."
실내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당신의 넓은 어깨가 아주 가늘게 떨린다.
그것은 공포가 아닌, 극에 달한 살의(殺意)의 휘몰아침이다. 소맷자락 속에서 독문 암기가 차갑게 요동친다.
부맹주의 목줄기를 끊고 상황을 조작할 것인가, 아니면 이 모욕을 삼키고 그의 뒤통수를 칠 판을 짤 것인가. 당신의 손끝이 마지막 결단을 앞두고 팽팽하게 굳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