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천하의 중심, 낙양(洛陽). 무림맹(武林盟)의 주작문(朱雀門)이 당신을 내려다본다. 백 장로의 친필이 담긴 천거서가 소맷자락 속에서 가볍게 흔들린다. 정파 명숙의 보증은 철옹성 같은 이곳을 여는 열쇠다.

맹 내부로 이어지는 청석 길은 장엄하다. 백색 도포를 입은 순찰 무사들의 시선이 칼날처럼 꽂힌다. 사파의 혈향(血香)을 숨긴 당신의 걸음은 지극히 고요하다. 발끝에서 먼지 한 톨 일지 않는다. 내력을 갈무리한 호흡이 깊고 일정하다. 완벽히 위장된 도가의 진기가 전신을 부드럽게 감싼다.

"백 장로의 추천을 받은 자가 자네인가."

돌연 앞을 가로막는 기세가 묵직하다. 세 갈래의 시선이 당신의 전신을 훑는다. 각기 다른 문양의 검자루를 쥔 자들이다.

좌측, 청운검(青雲劍)을 찬 장년인은 맹내 권력을 쥔 구파(舊派) 세력의 대리인이다. 우측, 흑철검을 지닌 사내는 신진 고수들로 구성된 신파(新派)의 척후다. 무림맹은 이미 가파르게 갈라져 있다.

구파의 장년인이 은밀하게 다가선다. 소매 사이로 짙은 침향이 풍긴다. "우리와 손을 잡게. 예선의 구차한 암투는 모두 면하게 해 주지."

이에 질세라 신파의 사내가 냉소를 흘린다. "썩은 물은 고이기 마련. 진정한 무림의 변혁을 원한다면 우리를 따르시오."

눈앞의 두 세력이 뿜어내는 기 싸움에 대기가 팽팽하게 조여든다.

당신의 시선이 그들의 어깨와 발끝을 차례로 훑는다. 입꼬리가 아주 잠깐, 사파 특유의 비틀린 호선을 그리다 사라진다. 손가락 끝이 가볍게 튕기며 소매 안쪽의 보검을 건드린다. 굳이 이 비열한 사냥터의 규칙을 따를 필요는 없다.

정파라는 비단 옷을 입은 위선자들. 그들이 당신에게 동맹을 구걸하고 있다. 이 진흙탕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판을 틀어쥘 것인가. 침묵을 깨야 할 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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