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낙양(洛陽)의 밤은 무겁고 깊다. 삼엄한 무림맹(武林盟)의 본산, 그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내성(內城)의 청동 문이 소리 없이 닫힌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침향(沈香) 사이로 기이한 독향(毒香)이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간다.

당신은 단상 위, 화려하게 조각된 백옥 의자 바로 뒤편의 어둠 속에 서 있다. 당신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정파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이들이 박제처럼 굳어 있다.

현 무림맹주 백리경(百里鏡).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응시한다. 양가 가주들과 화산의 장로들 역시 장막 안의 그림자처럼 고요하다. 그들의 단전(丹田) 깊은 곳에는 이미 당신이 심어둔 음독(陰毒)과 뇌공(腦功)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다. 육신은 지고한 정파의 영웅이나, 그 신형(身形)을 움직이는 실은 오직 당신의 손가락바느질에 닿아 있을 뿐이다.

"맹주."

당신의 나지막한 침묵을 깨고 백리경이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대리석 바닥에 이마를 찧는 소리가 탁하게 울린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육신을 지배하려 하지만, 영혼마저 잠식한 공포가 그의 이성을 무참히 꺾어 누른다.

"마존(魔尊)의 뜻대로…… 받들겠나이다."

갈라진 목소리가 장막 안을 맴돈다. 정파의 명숙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는다. 그들의 눈가에 어린 절망과 굴종을 바라보며, 당신은 엄지손가락에 끼워진 흑요석 반지를 천천히 쓸어내린다. 입가에는 미동조차 없다. 오직 싸늘하게 식은 눈빛만이 그들의 정수리를 내리누른다.

문밖에서는 천하 영웅들의 환호가 파도처럼 밀려든다. 정파의 위선에 가득 찬 의협(義俠)을 찬양코자 모여든 군군장장(群群壯壯)들의 함성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맹주가, 중원의 심장이 이미 사파 제일인의 손안에서 노는 장난감으로 전락했음을 꿈에도 모른다.

겉으로는 태고의 질서를 수호하는 눈부신 강호. 그러나 그 심장부는 가장 어둡고 기괴한 마도(魔道)의 손길로 맥박 친다. 세상이 바라던 무림맹주와, 세상을 지배하는 암흑 마존의 경계가 마침내 하나로 녹아내린다.

당신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닫힌 창을 연다. 아래를 굽어보는 당신의 시선 끝에, 붉게 타오르는 무림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배는 완성되었고, 게임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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