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단아한 검끝이 사정없이 부러진다. 당신의 손아귀가 부러진 검신을 낚아챈다. 차디찬 마강(魔罡)이 그의 어깨를 관통한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무명의 신형이 바닥을 분쇄하며 구른다. 정파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천재는 가차 없이 파괴된다. 비무대는 이미 적색 선혈과 살점으로 얼룩져 있다. 관람석의 영웅호걸들은 숨조차 쉬지 못한다. 이것은 정파의 무도가 아니다. 오직 살육만을 위해 정련된 사파의 폭력이다.
사방에 무겁고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당신은 피가 흐르는 검을 바닥에 꽂는다. 시선이 부맹주의 처참하게 일그러진 낯빛에 닿는다. 누구도 이 절대적인 폭정 앞에 감히 검을 뽑지 못한다. 당신은 천천히 걸어가 무림맹주가 앉는 태사의에 몸을 묻는다. 입꼬리가 기이한 각도로 비틀려 올라간다. 손가락으로 옥새를 만지작거리는 음산한 소리만이 회당을 채운다.
"오늘부터 맹의 법은 나다."
그날부로 천하의 본산이어야 할 무림맹은 피비린내 나는 아비지옥으로 변모한다. 위선으로 명성을 쌓아 올린 정파의 명숙들이 차례로 압송된다.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가혹한 형벌이 무자비하게 가해진다. 흑도 고유의 비도(秘道) 고문법이 지하 밀실을 가득 채운다. 피부 갈취와 단근(斷筋)의 비명이 주야로 끊이지 않는다. 빛나던 검협들의 자존심은 짓밟히고, 오직 생존을 갈구하는 추한 울부짖음만이 남는다. 당신의 차가운 안광에는 일말의 미련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공포로만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비틀린 확신만이 영혼을 지배한다.
분노와 절망에 휩싸인 정파의 잔존 세력들이 기어이 기치를 올린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맹주 토벌이라는 혈서에 서명한다. 강호의 산천초목이 피의 전쟁 속으로 침잠한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대지는 붉은 불길로 타오른다. 원한과 증오가 얽힌 가없이 거대한 피바람이 강호를 삼켜간다.
맹주의 누각 정상에서, 당신은 자신을 죽이려 몰려오는 횃불의 바다를 내려다본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피어난 불바다. 당신의 사나운 난신적자(亂臣賊子)의 기운이 밤하늘을 마주 보며 포효한다. 만인의 저주가 귓가를 때리지만, 당신의 입가는 여전히 차갑게 굳어 있다. 결국 파멸로 끝날지언정 천하를 피로 물들인 지배자. 스스로 잔혹한 운명의 포로가 된 폭군의 도림은 그렇게 영원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