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마법 실이 칼리안의 가죽 장갑 위에서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고대 은제 깃펜의 매끄러운 몸체에 새겨진 아르덴 가문의 문양이 촛불을 받아 음산한 은빛을 반사했다.
칼리안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사냥감을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은 맹수의 미소였다.
“이것이…… 아무것도 없다던 네 방에서 나온 물건인가, 엘리샤 교수?”
그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서늘한 밀실의 공기를 가르며 고막을 파고들었다. 엘리샤는 등 뒤로 서늘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갈비뼈를 세차게 두드렸지만,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책상 위에 놓인 다른 깃펜의 깃털을 손가락 끝으로 일정하게 쓰러내렸다. 스윽, 스윽. 규칙적인 마찰음만이 고요한 집무실을 채웠다.
머릿속 사칙연산 장부가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칼리안 헤스벨트. 신용 자산 마이너스 천억 골드짜리 사냥개. 여기서 밀리면 단두대행 프리패스 티켓 발권이다.’
엘리샤는 조용히 숨을 가다듬으며, 시야 한구석에 잠들어 있던 [제국 평판 장부]를 가동했다.
웅웅거리는 이명과 함께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빛의 장부 격자망이 펼쳐졌다. 장부를 열람하는 대가로 영혼 밑바닥에서부터 끈적하고 어두운 마기가 차올랐다. ‘악녀 지치’라 불리는, 아르덴 가문의 피에 흐르는 불길한 마력이었다.
그 순간, 칼리안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의 예민한 콧망울이 미세하게 실룩였다.
“……또 이 냄새군. 네 몸에서 흘러나오는 이 기분 나쁜 향취는 뭐지, 엘리샤?”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오라가 엘리샤의 숨통을 조여왔다. 마력 억제석이 깔린 방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천적인 감지 능력은 악녀 지치의 미세한 흐름을 귀신같이 잡아내고 있었다.
엘리샤는 가슴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겉으로는 우아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국의 수호자이신 대공 전하께서 역사학자의 사소한 취향까지 검열하실 줄은 몰랐군요. 그건 제가 최근에 수입한 남부 특산 ‘블랙 로즈’ 향수입니다. 꽤 매혹적이지 않나요?”
“허튼소리는 거기까지 해라.”
칼리안이 은제 깃펜을 그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붉은 마법 실이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이 은제 깃펜에 걸린 마법은 반역 가문 아르덴의 고유 잔류 마력이다. 그리고 이 실은 감사원에서 도난 물품을 추적하기 위해 걸어둔 특수 마법이지. 현행범이다, 엘리샤 폰 아르덴. 네가 아르덴의 생존자라는 명백한 물증이 내 손에 들려 있어.”
그가 한 손으로 품속에서 붉은 봉인이 찍힌 체포 기소장을 꺼내 들었다. 기소장 모서리에 새겨진 감사원의 철인이 촛불 아래에서 핏빛으로 번뜩였다.
완벽한 외통수처럼 보이는 상황.
하지만 엘리샤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책상 서랍 안쪽에서 두툼한 양가죽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대공 전하. 수사를 하실 때는 물증의 ‘출처’부터 명확히 하셔야지요.”
“출처?”
“그 물건은 제가 아카데미 정식 예산으로 구입한 ‘역사 연구용 고미술품’입니다. 여기 카이로스 아카데미 재무처의 공식 관인과 총장 서명이 날인된 구매 증빙서가 있습니다.”
엘리샤가 내민 종이에는 정말로 은제 깃펜의 상세 규격과 함께 ‘역사학과 학술 연구용 자산’이라는 문구와 아카데미의 금박 인장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칼리안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가 서류를 낚아채듯 가져가 훑어보았다. 위조의 흔적은 전혀 없는, 완벽하게 합법적인 공문서였다.
“이게 진짜라 해도, 이 물건이 왜 네 비밀 서랍에 숨겨져 있었지? 게다가 감사원의 추적 마법 실이 감겨 있는 상태로.”
“그것이 바로 제가 전하께 고발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엘리샤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가 위험한 빛을 발했다.
“제 연구실은 엄연히 아카데미의 자치령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제 연구실에 무단으로 침입해 이 귀중한 연구 자산을 훔쳐 가려 했더군요. 심지어 도둑놈이 제 서랍에 도로 쑤셔 박아놓은 모양인데…… 전하께서는 그 절도범이 흘리고 간 ‘흔적’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흔적이라니.”
“이 은제 깃펜에 감긴 붉은 마법 실 말입니다.”
엘리샤가 싱긋 웃으며 장부의 정보를 바탕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 마법 실은 감사원의 추적 마법이지요. 그렇다면 그 실이 반응하는 ‘마력 지문’ 역시 깃펜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텐데요. 제 마력 지문과, 진짜로 이 펜을 훔쳐내어 마력을 잔류시킨 ‘그자’의 지문을 대조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망설임도 없었다.
칼리안은 그녀의 당당한 태도 속에서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 여자는 두려워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덫을 놓은 사냥꾼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좋다. 즉시 대조하지.”
칼리안이 가죽 장갑을 벗어 던졌다. 그의 손끝에서 푸른빛의 순수한 마력이 피어올랐다. 그가 은제 깃펜에 손을 대고 마력을 불어넣자, 깃펜 표면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마력 파형이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하나는 아주 미약하고 깨끗한 아카데미의 마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탐욕스럽고 비열한 기운이 서린 마력이었다.
그 두 번째 마력 파형을 보는 순간, 칼리안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내렸다.
“이 마력은…….”
“네, 아주 익숙한 파형이지요?”
엘리샤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의 비단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쓸며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최근 사면을 대가로 전하께 가짜 정보를 밀고하던 쥐새끼. 세드릭 아르덴의 마력 지문입니다.”
바로 그 순간,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대공 전하! 현장을 잡으셨습니……!”
상기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다름 아닌 세드릭 아르덴이었다. 그는 엘리샤가 체포되어 무릎을 꿇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 듯, 비열한 미소를 입가에 가득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집무실 내부의 풍경은 그의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엘리샤는 우아하게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칼리안 대공은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허공에는 자신의 마력 지문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 어라……?”
세드릭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세드릭 아르덴.”
칼리안의 목소리가 지옥 심연에서 끌어올린 것처럼 무겁게 울렸다.
“네가 내게 밀고했지. 엘리샤 교수가 아르덴의 유물을 숨겨두고 반역을 모의하고 있다고.”
“예, 예! 분명히 저 여자의 서랍에 아르덴의 은제 깃펜이……!”
“그래, 있었다. 하지만 이 물건은 아카데미의 정식 구매 자산이더군.”
칼리안이 허공에 떠오른 마력 파형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정식 자산에 감사원의 추적 마법을 묻혀가며 제 발로 훔쳐 가려 한 절도범의 마력이…… 정확히 네 놈의 것과 일치하는군.”
세드릭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불안해진 그는 엄지손톱 밑의 허연 살을 피가 배어 나오도록 강박적으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똑, 똑, 바닥으로 붉은 피가 떨어졌다.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 여자가 함정을 판 겁니다! 저는 그저 전하를 돕기 위해……!”
“도우려고 내 눈을 속이고 위증을 했단 말이냐?”
칼리안이 세드릭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압도적인 기포가 세드릭의 온몸을 짓눌렀다.
“아르덴의 잔당이라는 죄명을 뒤집어씌워 진짜 아카데미 교수를 음해하고, 내 감사권을 사적으로 이용하려 들다니. 대담하구나, 쥐새끼가.”
“전하! 살려주십시오! 제발……!”
세드릭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처절하게 애원했다.
칼리안은 그런 세드릭을 가차 없이 내려다본 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엘리샤를 바라보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 속에는 경멸 대신, 기묘한 경외감과 찬탄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 완벽한 알리바이. 자신이 들이밀 물증을 미리 예측하고, 배신자의 탐욕을 이용해 역으로 덫을 놓은 치밀함.
‘처음부터 나를 이용해 이 쥐새끼를 처리할 생각이었군.’
칼리안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찌르르하게 울리는 전율을 느꼈다. 단순한 대역죄인의 잔당인 줄 알았더니, 자신의 손아귀 위에서 놀아나기는커녕 자신을 사냥개처럼 부린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소유욕과 집착이 그의 심장을 헤집어 놓았다.
스륵.
칼리안의 손바닥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가 들고 있던 엘리샤의 체포 기소장이 불꽃에 휩싸여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
[시스템 메시지: 인과율의 비틀림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대공 칼리안 헤스벨트의 평판이 갱신됩니다.] - 관계도: ‘의심스러운 용의자’ ➔ ‘유력한 비밀 협조자’ - 신뢰도 수치: +1,500 (누적: 1,800) - 영향력 획득: 대공가 직속 수사 정보에 대한 제한적 열람 권한이 해제됩니다.
동시에 엘리샤의 귓가에 웅웅거리는 이명이 걷히며, 가슴을 짓누르던 악녀 지치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성공이다. 퇴직 비자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어.’
“끌고 가라.”
칼리안의 차가운 명령에 대기하고 있던 정예 기사들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는 세드릭의 팔을 꺾어 거칠게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세드릭은 질질 끌려 나가면서도, 피 묻은 손가락으로 엘리샤를 가리키며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엘리샤! 너 이 사악한 가짜 년! 네가 언제까지 무사할 것 같아? 내 손톱을 이렇게 만든 대가를…… 전하! 저 년이 진짜 아르덴입니다! 저 년이……!”
문이 쾅 닫히며 그의 목소리가 차단되었다. 복도에는 그가 흘린 붉은 피가 길게 선을 그리며 남았다.
정적만이 남은 집무실.
칼리안은 천천히 엘리샤에게 다가왔다. 그의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이 엘리샤의 턱끝을 부드럽게,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쥐어 올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이번 판은 네 완승이군, 엘리샤 교수.”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험하게 낮아져 있었다.
“하지만 기억해라. 쥐새끼 한 마리를 치웠다고 해서 내 의심이 완전히 거두어진 것은 아니다.”
그의 시선이 엘리샤의 붉은 입술에 머물렀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그녀가 입술을 짓씹은 탓에, 입술 끝에 붉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칼리안은 그 핏기를 바라보며, 묘하게 뒤틀린 갈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 영악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완전히 굴복시키고, 자신의 밑에 무릎 꿇리게 만들고 싶다는 기묘한 집착이었다.
“다음에는 네 그 진짜 얼굴을 반드시 벗겨내지.”
그가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입술에 묻은 핏기를 부드럽게 닦아내며 속삭였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서늘한 온기에, 엘리샤는 숨이 멎을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과연 이 사냥개의 집요한 추적 속에서, 그녀는 완벽한 은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제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