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 전하! 속으시는 겁니다! 저 사악한 년의 연구실을 수색하십시오! 저 여자의 침대 밑 상자에 아르덴 가문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고대 은제 깃펜이 숨겨져 있습니다! 세드릭이 똑똑히 보았다고 했습니다! 저 여자가 바로 아르덴의 잔당입니다!”
조슈아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대리석 복도의 높은 천장을 치고 거칠게 하강했다.
순간,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기사들의 발걸음이 멈추었고, 먼지마저 허공에 정지한 듯한 기묘한 적막이 찾아왔다.
칼리안의 발걸음이 우뚝 멈춘 것도 바로 그 찰나였다.
그의 시선이 아주 천천히, 칼날보다 서늘하게 엘리샤를 향해 돌아갔다. 사파이어를 깎아 만든 것 같은 그의 눈동자 속에서 짙은 의혹의 불꽃이 일렁였다.
코끝을 스치는 싸늘한 북부의 눈바람 냄새. 그가 살기를 띨 때마다 주변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엘리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고급스러운 실크 레이스가 덧대어진 녹색 벨벳 드레스 자락 아래로, 그녀의 손가락이 가볍게 떨렸으나 이내 깃펜 모양의 브로치를 만지작거리며 평정심을 가장했다.
머릿속 사칙연산기가 미친 듯이 숫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세드릭, 그 덜 떨어진 사촌 녀석이 결국 일을 저질렀군. 1화에서 내 연구실을 뒤져 깃펜을 훔쳐 가더니, 그걸 빌미로 함정을 파?’
눈앞의 칼리안 대공은 인간 거짓말탐지기나 다름없는 괴물이다.
미세한 호흡의 불균형, 피부의 상기됨, 심지어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사소한 마력의 진동까지 포착해 내는 사냥개. 여기서 조금이라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인다면, 종신 교수의 꿈은커녕 단두대의 차가운 칼날이 먼저 목덜미에 닿을 터였다.
엘리샤는 턱을 우아하게 치켜올리며, 기품 있는 실소를 흘렸다.
“아르덴의 은제 깃펜이라니요. 사지가 묶여 끌려가는 마당에 헛소리라도 지껄여 동귀어진을 해보겠다는 속셈인가 본데, 참으로 애처롭기 그지없군요.”
“애처로운지, 아니면 사실인지는 확인해 보면 알 일이지.”
칼리안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그가 가죽 장갑을 낀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수색해라. 먼지 한 톨, 카펫 밑바닥의 틈새 하나까지 전부 긁어내라.”
“대공 전하!”
엘리샤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한 걸음 나섰다.
“아무리 황실 감사관이라 할지라도, 명백한 물증도 없이 일개 조교의 악에 받친 고발 한마디에 아카데미 정교수의 사적인 공간을 유린하겠다는 것입니까? 이는 카이로스 아카데미의 자치권을 침해하는 행위이자, 제 학문적 명예에 씻을 수 없는 모욕입니다!”
“명예라.”
칼리안이 그녀의 코앞까지 성큼 다가왔다.
그의 큰 체구가 만드는 그림자가 엘리샤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은색 자수가 놓인 감청색 제복 상의에서 풍기는 진한 로즈마리 향과 차가운 철 조각의 냄새가 그녀의 감각을 압박했다.
“그 잘난 명예는 무고함이 증명된 뒤에 찾으시지, 엘리샤 교수. 만약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내 개인 자산으로 교수의 연구 기금을 세 배로 증액해 주지. 하지만…….”
그가 고개를 숙여 엘리샤의 귀밑에 입술을 가까이 댔다. 낮게 울리는 음성이 고막을 간지럽히며 소름을 돋웠다.
“정말로 아르덴의 흔적이 나온다면, 그 고고한 목을 내 손으로 직접 꺾어 황궁 광장에 매달아 주겠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러나 엘리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의 시선을 받아내며 생긋 웃었다.
“약속하신 겁니다, 대공 전하. 기금 세 배 증액은 반드시 서면으로 공증을 받아낼 테니까요.”
감사원 기사들이 엘리샤의 연구실 안으로 거칠게 들이닥쳤다.
쿵, 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책장이 뒤집히고 서류가 허공에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 난장판 속에서, 엘리샤는 구석에 얼어붙어 있는 수석 조교 멜리사에게 은밀한 눈빛을 보냈다.
멜리사는 겁에 질려 파르르 떨고 있었지만, 엘리샤의 지독한 ‘연구비 삭감’ 협박과 ‘정식 연구관 임용’이라는 당근을 동시에 맛본 베테랑 직장인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교수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다.
‘멜리사, 조서 더미 사이를 뒤져라.’
멜리사는 울상이 된 채 바닥에 흩어진 종이 쪼가리들을 줍는 척하며 무릎으로 기어갔다.
사방이 소란스러운 틈을 타, 멜리사의 손가락이 조슈아가 흔들어 놓은 책상 잔해 밑을 빠르게 훑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멜리사의 시선에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되어 겉면이 거칠거칠하게 일어난, 붉은 인장이 찍힌 양가죽 조각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반쯤 찢어진 역사 보관소의 금서 봉인지가 흩어져 있었다.
멜리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타고난 월급쟁이의 순발력으로 그것들을 자신의 넓은 소맷자락 안으로 신속하게 밀어 넣었다.
그 시각, 기사들의 수색은 막바지에 달하고 있었다.
“전하! 침대 밑 나무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기사 하나가 상자를 열어젖히며 외쳤다.
그 순간 복도에 모여 있던 학부 장들과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쏠렸다. 조슈아는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침을 흘렸다.
“거봐! 내가 뭐랬어! 저 상자 안에 분명히—!”
“……비어 있습니다.”
기사의 단호한 한마디가 조슈아의 외침을 뚝 끊어 놓았다.
“뭐?”
조슈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칼리안이 직접 상자 앞으로 다가갔다. 정말로 그 안에는 붉은 벨벳 안감만 덩그러니 깔려 있을 뿐, 먼지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엘리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하지. 세드릭이 진작에 훔쳐 갔으니까.’
이미 도둑맞은 물건이 제자리에 있을 리 만무했다. 조슈아는 세드릭이 펜을 훔쳤다는 사실은 모른 채, 그저 그 상자 안에 펜이 보관되어 있었다는 과거의 정보만 믿고 날뛴 것이었다.
“이, 이럴 리가 없어! 세드릭이 분명히……!”
조슈아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칼리안의 눈빛은 이미 얼음장처럼 식어 있었다.
“끌고 가라. 감사원을 기만한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지.”
“대공 전하! 살려주십시오! 진짜 있었습니다! 저 여자가 숨긴 겁니다!”
비참한 비명 소리가 복도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엘리샤는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눈으로 그 뒷모습을 배웅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칼리안을 바라보았다.
“자, 대공 전하. 제 무고함이 증명되었으니, 약속하신 연구 기금 세 배 증액에 대한 공증을 진행해 볼까요?”
칼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지며 엘리샤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이었다. 사냥개의 감각이 그에게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지금 완벽한 연기를 하고 있다고.
“기금 증액이라. 주지, 얼마든지.”
칼리안이 입꼬리를 기이하게 올리며 한 걸음 다가왔다.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엘리샤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최근 아카데미 내부에 도사린 반역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이에 본 감사관은 수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늘부로 임시 감사실을 이전하겠다.”
칼리안이 손가락으로 엘리샤의 연구실 바로 옆방을 가리켰다. 원래는 역사학과의 낡은 자료 보관실이자 비어 있는 부속실이었다.
“바로 저 방으로.”
“예?”
엘리샤의 고상한 가면 아래로 균열이 일어났다.
옆방이라고?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무시무시한 북부대공과 동거 감시를 하겠다는 말인가?
그것은 그녀가 평판 장부를 켤 때마다 방출되는 ‘악녀 지치(마기)’를 실시간으로 대공의 콧구멍 앞에 들이밀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아카데미의 자치 규정상 감사실은 본관에 위치해야—.”
“황실 비상 조치법 제3조에 의거,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사안에 한해 감사관은 아카데미 내 어느 곳이든 임시 거처를 지정할 수 있다.”
칼리안이 엘리샤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옆방에서 지켜보지, 엘리샤 교수. 그대의 그 우아한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하들에게 이삿짐을 옮기라 명령했다.
철제 책상과 무거운 비밀 문서 보관함이 벽 너머로 쿵, 쿵 소리를 내며 들어차기 시작했다.
엘리샤는 자신의 교무실 책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이건 미친 짓이야. 직장 상사가 내 책상 바로 뒤에 CCTV를 설치한 수준이라고!’
퇴근 후 완벽한 보상을 누리며 남부 휴양지에서 은퇴하겠다는 그녀의 원대한 계획에 거대한 먹구름이 드리운 순간이었다.
***
늦은 밤.
옆방에서는 여전히 사각거리는 깃펜 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기사들의 보고 소리가 벽을 타고 미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엘리샤는 촛불 하나만을 켠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끝이 허공을 가볍게 튕겼다.
[제국 평판 장부(Ledger)를 기동합니다.]
시야가 푸르스름한 빛으로 물들며, 복잡한 인맥 관계도와 수치들이 떠올랐다.
동시에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검푸른 기운—악녀 지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그녀의 손목을 감싸 안았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기분 나쁜 한기에 엘리샤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마기가 옆방에 닿으면 끝장이야.’
그녀는 온 신경을 집중해 마기를 억누르며, 장부의 검색창에 두 이름을 입력했다.
[세드릭 아르덴], 그리고 [고대 은제 깃펜].
장부의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며 붉은 글씨가 새겨졌다.
[대상: 세드릭 아르덴] - 현재 상태: 극도의 불안 및 분노 상태. 엘리샤 폰 아르덴을 파멸시키기 위해 교황청 비밀 대리인과 접선 완료. - 보유 아이템: 아르덴의 고대 은제 깃펜 (추적 결계 부여됨) - 음모 진행도: 85% - 상세 내용: 은제 깃펜에 ‘적색 마력 실’을 연결하여 실시간 위치 추적이 가능하도록 조치함. 이 깃펜을 엘리샤의 교무실에 은밀히 ‘재배치’한 후, 교황청 이단 심문관을 대동하여 현장을 덮칠 계획. 엘리샤를 이단자로 몰아 숙청하고 대공의 신임을 얻고자 함.
엘리샤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투명하게 빛나는 불신과 지략이 교차했다.
“하, 멍청한 녀석.”
세드릭은 자신이 대단한 덫을 놓았다고 생각하겠지만, 판을 짜는 법을 모르는 피라미에 불과했다.
그는 깃펜을 훔친 것도 모자라, 그것을 다시 내 방에 숨겨놓고 이단 심문관을 부르겠다는 시나리오를 짰다.
하지만 그 깃펜이 ‘어떻게’ 내 방으로 들어오게 될까?
세드릭이 직접 들어와 숨길 리는 없다. 이미 아카데미는 칼리안의 기사들로 삼엄하게 포위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마력 전송이거나, 아카데미 내부의 또 다른 협조자를 부렸겠지.
‘그리고 그 깃펜에 걸린 추적 결계의 주파수는…….’
엘리샤는 평판 장부를 통해 깃펜에 걸린 마력의 흐름을 완벽하게 분석했다.
세드릭이 설치한 붉은 마법 실은 특정한 마력 파동을 지니고 있었다. 이 파동은 기사들의 마력 감지기에는 걸리지 않지만, 교황청의 특수 이단 탐지 나침반에는 귀신같이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 판을 조금만 비틀어 주지.”
엘리샤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낮에 멜리사가 챙겨온 ‘찢어진 역사책 봉인지’와 ‘붉은 인장 양가죽 조각’이 보였다.
그녀는 역사책 봉인지에 남아 있는 고대 마법의 잔해를 가만히 만져보았다. 이 봉인지는 과거 이단 마법을 봉인할 때 쓰이던 교황청 고유의 주술이 깃들어 있었다.
‘세드릭이 보낸 깃펜의 마력 실을 이 봉인지의 마력과 공명시킨다면?’
그렇게 되면 깃펜의 소유권은 내가 아니라, 이 봉인지를 관리하던 교황청 내부의 부패한 세력—즉, 바스토프 추기경의 라인으로 역추적될 터였다.
자신을 찌르려던 칼날을 그대로 돌려 세드릭과 교황청의 목을 겨누는 격이었다.
엘리샤는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감시망이 턱끝까지 밀착된 숨 막히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피가 뜨겁게 도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바로 K-직장인으로서 사내 정치와 진흙탕 싸움에서 살아남은 그녀만의 방식이었다.
똑, 똑.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엘리샤는 신속하게 평판 장부를 닫고 마기를 가슴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표정을 우아하게 다듬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초였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나타난 사람은 예상대로 칼리안 대공이었다.
그는 제복 상의의 단추를 두어 개 풀어헤친 편안한 차림이었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낮보다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서류 몇 장이 들려 있었다.
“이 밤중에 어쩐 일이십니까, 대공 전하? 옆방의 침대가 지독한 북부의 눈밭보다 딱딱했던 모양이지요?”
엘리샤가 가볍게 야유를 던졌다.
칼리안은 대꾸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와 그녀의 책상 앞을 장악했다.
그는 서류를 책상 위에 툭 던져놓더니,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책상 표면을 일정하게 탁, 탁, 탁 두드렸다.
맥박을 흔드는 기묘한 리듬.
“엘리샤 교수. 방금 내 감사실의 마력 감지기가 아주 미세하게 요동치더군.”
그의 사파이어빛 눈동자가 촛불빛을 받아 위험하게 빛났다.
“마치…… 이곳에서 금기된 마력이나, 아르덴 특유의 지치가 흘러나온 것처럼 말이지.”
“제 방에는 오직 역사학의 향기로운 먼지와 고서들의 퀴퀴한 냄새뿐입니다만.”
엘리샤는 태연하게 대답하며 깃펜을 들어 서류에 서명하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제 마력은 아카데미 임용 당시 이미 순수성 검증을 마쳤습니다. 대공 전하의 그 예민한 코가 밤안개에 취해 오작동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군요.”
“말은 잘하는군.”
칼리안이 서서히 허리를 숙였다.
그의 얼굴이 엘리샤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의 시선이 엘리샤의 입술과 눈동자를 집요하게 훑었다.
“하지만 내 감각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네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증스러운 미소 뒤에 거대한 구렁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까지 전부 알고 있지.”
“과찬이십니다.”
엘리샤는 피하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구렁이가 대공 전하를 삼키지 않도록 조심하셔야겠군요.”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감으로 터질 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칼리안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는 코를 씰룩이며 엘리샤의 책상 서랍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이 냄새는?”
그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엘리샤가 제지할 틈도 없이, 칼리안은 그녀의 책상 가장 아래쪽, 평소에는 거의 열지 않는 깊은 서랍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드르륵!
서랍이 열리며 안쪽에 숨겨진 비밀 공간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붉은색 마법 실이 거미줄처럼 엉겨 붙어 가냘프게 명멸하고 있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은빛 물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르덴 가문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고대 은제 깃펜이었다.
칼리안의 손이 깃펜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가 깃펜을 거칠게 낚아채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아무것도 없다던 네 방에서 나온 물건인가, 엘리샤 교수?”
붉은 마법 실이 칼리안의 손가락을 타고 감겨 올라가며 불길한 빛을 뿜어냈다.
엘리샤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쳤다.
덫은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