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속지 마라! 저 사악한 년이 대공 전하에게 마녀의 저주를 걸어 혼을 빼놓은 것이다! 대공의 폭주와 저 불길한 검은 마기를 보았느냐? 저것은 이단이다! 즉시 신성 화형 결계를 작동시켜 저 마녀의 영혼을 태워버려라!”

바스토프 추기경의 앙칼진 고함이 대강당의 높은 아치형 천장을 때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의 정갈하게 빗겨진 백발 아래로, 탐욕과 광기로 가득 찬 눈빛이 번들거렸다. 추기경이 묵주를 쥔 손아귀에 힘을 주자, 굵은 힘줄이 튀어나온 손끝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화답하듯 대강당 바닥에 매설되어 있던 고대 성흔 마법진이 기동했다.

웅, 하는 고주파의 진동과 함께 바닥의 대리석 틈새마다 끈적한 핏빛 불꽃이 넘실거리며 솟구쳤다. 공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사제들이 성호를 그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황실 근위병들은 칼을 빼 들며 나를 포위하듯 좁혀왔다.

‘아,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K-야근의 냄새가 나는군.’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퇴근 시간 직전에 터진 서버 마비 사태를 마주한 개발자의 심정이 딱 이럴 것이다. 드디어 종신 교수직과 남부 휴양지의 안락한 은퇴 생활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이 늙은 여우가 마지막 발악으로 판을 뒤엎으려 하고 있었다.

내 체내에서 방출되는 검은 입자, 즉 ‘악녀 지치(마기)’가 성흔의 붉은 열기와 반응해 격렬하게 요동쳤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지만, 나는 겉으로 부르르 떨리는 손끝을 감추기 위해 실크 드레스의 자락을 우아하게 움켜쥐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드레스는 북부의 특산품인 은사로 촘촘히 누빈 카르파산 최고급 벨벳이었다. 깃가에 촘촘히 박힌 물방울 모양의 에메랄드들이 붉은 화염 빛을 반사하며 기괴하게 반짝였다.

“엘리샤 교수……!”

단상 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조교 멜리사가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도, 품에 안은 진짜 세금 포탈 증서의 봉인 인장이 찍힌 양가죽 조각을 필사적으로 지켜내고 있었다.

평민 출신인 그녀에게 이 아카데미는 유일한 동줄이었고, 내 생존은 곧 그녀의 정식 연구원 임용서와 직결되어 있었다. 손익계산서로 얽힌 관계라지만, 저렇게 충직하게 제 몫을 해내는 부하 직원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가볍게 눈짓을 보내 멜리사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단상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종신 교수 평의회 의장단을 상향식으로 올려다보았다.

종교 형틀의 뜨거운 열기 앞에서도, 나는 비굴하게 무릎을 꿇는 대신 차갑고 오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슬슬 장부를 열어볼 시간인가.’

시야 오른쪽 구석에서 푸른빛의 반투명한 인터페이스가 스르륵 내려앉았다.

[제국 평판 장부(Ledger)가 동기화됩니다.] [사용 대가: 악녀 지치(마기) 누적 수치 96% -> 98% (경고: 한계 임박)]

뇌리를 찌르는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내 눈앞에 평의회 의장단 노학자들의 머리 위로 붉고 푸른 수치들과 그들의 가장 은밀한 치부들이 장표 형태로 일목요연하게 정렬되었다.

로판 소설 속 파멸할 악녀로 빙의한 내게 주어진 유일한 생존 치트키. 타인의 신용도와 비밀을 수치화해 보여주는 이 장부는, 지금 이 순간 가장 완벽한 협박장이었다.

“라파엘 학장님.”

나는 가장 중앙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대머리 노신사를 향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화형 결계의 불꽃이 내 스커트 자락을 집어삼킬 듯 넘실거렸지만, 내 목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처럼 고요하고 정확하게 대강당을 갈랐다.

“예, 예? 엘리샤 교수,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지난달 황실 학술 재단에서 지급된 특수 마력석 연구 지원금 말입니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 상태로 남부 세관을 통과했더군요. 이상하게도 장부에는 전량 파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던데, 혹시 학장님의 은밀한 별장 지하 창고에 보관 중인 그 황금빛 리요네즈 실크 상자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라파엘 학장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의 잘 가꿔진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그, 그것이 무슨 소린지……!”

“모르시겠다면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상자 옆에 놓인 비단 주머니 속, 루비 귀걸이의 감정서에 적힌 기증자의 이름이 누구였더라요? 아, 바스토프 추기경님의 직인이 찍혀 있더군요.”

대강당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추기경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황실 지원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대중 앞에서 폭로된 것이다. 라파엘 학장은 숨을 들이켜며 뒤로 자지러질 듯 넘어졌다.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타깃은 다음 의원들이었다.

“오스왈드 교수님. 당신이 지난 학기 수석으로 임명한 장학생의 논문 말입니다. 원작자가 서부 개척 지대의 가난한 평민 학자라는 사실을 황실 특허국에 알리면 어떻게 될까요? 평의회 의장직을 유지하기는커녕, 가문의 작위마저 박탈당할 텐데요.”

“크, 윽……!”

오스왈드 교수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테오도르 의원님. 당신의 셋째 아들이 수도의 지하 도박장에서 날린 채무 증서가 왜 추기경님의 비밀 금고에 들어가 있을까요? 설마 아들의 목숨값을 대가로 오늘 이 심사에서 추기경님의 뜻대로 제 목을 치기로 야합하신 겁니까?”

내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종교 형틀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할 피고인이, 역으로 판사들을 하나씩 단죄해 나가는 기이한 광경에 대강당을 가득 채운 학자들과 학생들이 침을 삼켰다.

이것이 바로 대체 불가능한 정보력의 힘이자, K-직장인식 생존 비법이다. 상대의 약점을 쥐고 흔들 수 있다면, 그 어떤 거대한 권력도 한낱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이, 이단 심문을 전면 중단하라!”

결국 라파엘 학장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결계를 꺼라! 신관들은 즉시 마법을 멈춰라! 이건 명백한 절차적 오류다! 엘리샤 교수의 혐의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학장님!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바스토프 추기경이 격분해 소리쳤지만, 이미 평의회 의원들은 자신들의 파멸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들은 신관들을 향해 직접 마력을 방출하며 화형 결계의 마법 흐름을 강제로 흐트러뜨렸다.

파지직!

붉은 화염 마법진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신관들이 마력 역류로 인해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결계가 원천 무효화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악한 년이…… 마녀가 평의회를 통째로 홀렸구나!”

바스토프 추기경이 광기에 젖어 품속에서 묵직한 이단 심문용 성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내게 직접 뿌려 마기를 과부하시키려는 속셈이었다.

그가 내게로 달려들려던 찰나였다.

서늘한 한기가 대강당 전체를 지배했다.

붉은 열기로 가득했던 공간에 순식간에 하얀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닥의 대리석이 쩡, 쩡 얼어붙는 소리와 함께 검은 가죽 장갑을 낀 거친 손이 추기경의 앞을 가로막았다.

칼리안 헤스벨트 대공.

그의 푸른 눈동자가 빙하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몸 주변으로 휘몰아치는 마력은 폭풍우와 같았으나, 그 기운은 기이할 정도로 안정되어 있었다.

원래라면 마기 반응으로 인해 진작 폭주했어야 할 그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내 주머니 속에는 그에게 건넸던, 그리고 그가 늘 품고 다니는 마력 폭주 억제제가 들어 있었다. 그 억제제 속 ‘로즈마리 향낭’의 미세한 마기 반응을 떠올렸다.

[과거 8화의 복선이 완전히 맞물립니다.] [칼리안의 마력 폭주 억제제는 엘리샤가 평판 장부의 연산력으로 정제한 마기 무력화 향낭과 공명하여, 그의 폭주를 완벽히 억제하고 이성적인 신뢰의 고리를 형성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나를 사냥감으로만 보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제국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 줄 동등한 지략가로서 나를 인정하고 있었다.

“추기경.”

칼리안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대강당을 울렸다.

“대공가의 허가 없이 아카데미 내에서 사적인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반역으로 간주한다.”

“대공 전하! 저 마녀의 꾐에 빠지신 겁니까! 저 여자는 아르덴의 잔당입니다!”

“입을 다물라 했지.”

칼리안이 검자루를 잡았다.

쉬익—!

가느다란 파공음과 함께 푸른 검기가 허공을 갈랐다. 눈부신 섬광이 대강당을 휩쓸고 지나간 직후, 바스토프 추기경이 서 있던 주교 단상이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져 무너져 내렸다.

쿠구궁!

거대한 대리석 단상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먼지를 휘날렸다. 추기경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꼴사납게 굴러떨어졌다. 그의 화려한 견장과 묵주가 먼지 구덩이 속에서 뒹굴었다.

“더 이상 교회의 이름으로 황실의 권위를 참칭하지 마라.”

칼리안이 검을 거두며 싸늘하게 읊조렸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내게로 향했다.

미묘한 시선의 교차.

어둠 속에서 서로의 목을 노리던 사냥꾼과 사냥감이, 이제는 서로의 등을 맞댄 가장 위험한 파트너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성찰적 침묵이었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 속에 담긴 것은 의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유욕에 가까운 집요한 갈망이었다.

“엘리샤 교수.”

칼리안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전의 싸늘한 감사관으로서의 호칭이 아니었다.

“그대의 무고함은 증명되었다. 또한 이 아카데미의 썩은 환부를 밝혀낸 공로를 치하하지.”

그의 말과 함께, 내 눈앞에 화려한 시스템 알림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경보! 아카데미 역사상 최강의 심판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의 평판 등급이 격상됩니다.] [기존: '위장 교수' -> 변경: '아카데미 수호신' (제국 평판 등급 SSS)] [아카데미 전 구성원들이 당신을 경외합니다. 황실조차 당신을 함부로 해임할 수 없는 절대적인 학술적 면책 특권이 활성화됩니다.]

완벽했다.

바스토프 추기경의 음모를 역으로 이용해, 평의회 의장단의 목줄을 쥐고 대공의 무력 수호까지 얻어냈다. 이제 이 아카데미에서 나를 건드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드디어 안락한 은퇴와 퇴직금 보장인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하 역사 보관소 너머, 지도에도 없는 비밀 지하 동굴로 도망치려 했던 비상 계획은 완전히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완벽한 승리였다.

대강당의 학자들과 학생들이 일제히 내게 경외와 존경이 담긴 뜨거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멜리사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치며 펜을 화려하게 굴려 대기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완벽한 사이다의 정점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신음하던 배신자 세드릭이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흐흐…… 하하하하!”

피가 섞인 침을 뱉어내며, 세드릭이 엄지손톱 밑의 살을 피가 배어 나오도록 강박적으로 뜯어내며 소리쳤다. 그의 눈은 완전히 광기에 절어 있었다.

“웃기지 마라! 다들 속고 있는 거야! 엘리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네 몸에 흐르는 아르덴의 피는 속일 수 없어!”

세드릭이 품속에서 붉은 마법 봉인이 걸린 가죽 지도 한 장을 기습적으로 꺼내 들었다. 그것은 아카데미 지하 역사 보관소의 공식 지도에는 결코 기재되어 있지 않은 구역의 도면이었다.

“이게 뭔지 알아? 대공 전하! 똑똑히 보십시오! 역사 보관소 지하 깊은 곳, 지도에도 없는 비밀 동굴에 아르덴 가문의 진짜 마기 제단이 숨겨져 있습니다! 저년은 매일 밤 그곳에서 제국을 저주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고요!”

세드릭이 소리치며 지도를 펼치자, 지도 중앙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마기가 대강당의 허공에 거대한 마법 제단의 환영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칼리안의 푸른 눈동자가 다시 한번 싸늘하게 가라앉으며 나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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