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을 나온 당신을 맞이한 것은 승전보가 아닌 단단한 쇠창살의 예고입니다. 무단 침입 및 직무 유기. 적법한 절차 없이 수술실을 점거하고 집도했다는 이유로 병원 이사회는 당신을 형사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살려낸 환자의 안정적인 바이탈 사인은 그들의 규정 서류 위에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복도 저편, 중환자실(ICU)의 열린 문틈으로 환자의 생명을 증명하는 산소포화도 모니터의 규칙적인 비프음(Beep)이 가늘게 울려 퍼집니다. 맥박 72회, 혈압 120에 80. 지극히 정상적인 수치. 그 완벽한 바이탈을 만들어내기 위해 손가락 끝의 감각이 마비될 때까지 혈관을 봉합했던 당신의 손끝에 차가운 대기실 공기가 닿습니다. 사면초가. 의사 면허 박탈과 전과자라는 낙인이 코앞에 닥친 순간입니다.
"이선우 선생."
정적을 깨고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수간호사 민아경입니다. 평소 빈틈없는 스크럽과 철저한 규율로 외과 수술실을 지키던 그녀가, 주변을 극도로 경계하며 당신의 임시 대기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소독 포대신 작고 투박한 은색 USB 하나가 들려 있습니다.
"이걸 받으세요."
그녀가 내민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수술실의 무영등보다 예리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현 병원장과 외과 과장이 주도한 대리 수술(Ghost Surgery) 실태가 담긴 핵심 로그 파일입니다. 정형외과 인공관절 치환술과 일부 복강경 수술 중 수십 건을 의료기기 대리점 영업사원이 대리 집도했습니다. 수술실 마취 기록지와 실제 전산 출입 태그 기록을 대조하면 조작된 공백의 시간이 드러나죠. 병원 전산망 백업 서버에서 제가 직접 확보한 원본 파일입니다."
의료법 제27조 무면허 의료행위 금지 위반. 일류 대학병원의 수뇌부가 직접 저지른 조직적 범죄이자, 환자의 안전을 정면으로 배신한 행위. 손바닥에 닿는 USB의 금속 표면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의 폭발력은 병원 전체를 침몰시키고도 남을 만큼 뜨겁습니다.
"이걸 쓰면 법적 고발 위기에서 벗어나는 건 물론이고, 이 썩어빠진 병원의 윗대가리들을 단숨에 끌어내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당신의 안전도 위험해지겠죠."
민 수간호사가 나직한 숨을 몰아쉬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규정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권력을 탐하던 자들의 명줄이 이제 당신의 손아귀에 쥐어졌습니다. 당장 내일은 대형 제약사와 학계 관계자들이 모두 모이는 병원 주재 임상 연설회가 예정되어 있는 날입니다.
당신은 손바닥 안의 은색 금속 몸체를 꽉 쥐며 차가운 침묵을 삼킵니다. 이제, 이 치명적인 무기를 어떻게 휘두를지 결정해야 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