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비─입. 비─입. 비─입."

마취기 인공호흡기의 벨로우즈가 규칙적으로 오르내린다. 삼엄했던 수술실의 공기를 가르는 것은 생명의 리듬을 되찾은 환자의 안정적인 심장 박동음이다.

심장 고정기(Stabilizer)를 조심스럽게 제거하자, 미세하게 요동치던 심근이 제자리를 찾아 박동한다. 프롤린(Prolene) 8-0. 머리카락보다 가는 실로, 세차게 뛰는 심장 위에 일 초에 서너 번씩 손을 놀려 완성해 낸 관상동맥 문합(吻合). 인공심폐기가 멈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당신이 손가락 끝의 감각만으로 완성해 낸, 현대 의학이 허용하는 한계 끝의 생존이었다.

"가스 수치 확인해. ACT(활성화 응고 시간) 정상 범주로 되돌리고, 혈압 유지해."

당신의 나직한 목소리에 스크럽 간호사가 마른침을 삼키며 배액관을 정리한다. 수술은 완벽했다. 박동하는 심장을 그대로 둔 채 진행하는 무인공심폐기 관상동맥 우회술(OPCAB)의 극치. 기계의 갑작스러운 결함이라는 외통수 속에서 당신이 도출해 낸 유일한 답이었다. 바이탈 모니터에 선명하게 찍히는 숫자들은 환자의 생명이 완전히 돌아왔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때, 웅성거리는 수술실의 소음 사이로 육중한 자동문이 거칠게 열린다.

"이선우!"

소독 가운도 입지 않은 채 수술실 내부 경계선까지 들이닥친 것은 외과 과장, 박경식이다. 그의 눈은 분노와 당혹감으로 사납게 이글거리고 있다. 수치상으로 완벽하게 살아난 VIP 환자의 상태를 보고도, 그의 얼굴에는 안도감 대신 지독한 독기가 서려 있다.

"미쳤군. 공식 승인되지 않은 초법적 수술로 VIP의 목숨을 담보 잡고 도박을 벌여? 인공심폐기 가동 중단 보고를 받고도 수술을 강행하다니. 이건 명백한 살인 미수이자 가이드라인 위반이야!"

그의 뒤로 원내 보안요원들과 징계위원회 소속 직원들이 그림자처럼 늘어선다.

"기계 결함이었습니다."

당신은 수술 장갑을 벗어 던지며 차갑게 대꾸한다. 피와 땀이 뒤섞어 비릿한 냄새가 나는 수술실 안에서, 당신의 목소리만은 메스의 날만큼이나 예리하고 흐트러짐이 없다.

"기계가 멈춘 상황에서 우회로를 만들지 않았다면 환자는 체외 순환 불능으로 5분 내에 사지 마비나 뇌사에 빠졌을 겁니다. 제 판단은 정당했습니다."

"정당하다고? 감히 일개 스탭이 병원의 프로토콜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칼을 휘둘러? 이 수술실의 최종 책임자는 나다! 당장 이선우 선생의 집도 자격을 박탈하고, 의사 면허 정지 징계를 청구하겠다. 보안팀, 이 사람을 당장 수술 구역 밖으로 끌어내!"

박 과장의 핏대 선 목소리가 멸균실의 천장을 때린다. 평온하게 가라앉은 환자의 심장 소리와 대비되는 인간들의 추악한 불협화음. 갑작스러운 인공심폐기 정지,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들이닥친 징계 세력. 이 모든 것이 정교하게 짜인 덫임을 당신의 이성은 이미 온전히 간파하고 있다.

당신의 손가락 끝이 수술 안경테 옆에 정밀하게 장착된 소형 바디캠의 스위치에 닿는다. 수십 분 전, 수술실 소독 준비 단계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상황과 인공심폐기가 멈춘 순간의 기이한 정황이 이 안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눈앞의 억지스러운 누명과 거대한 압박 속에서, 당신은 이 차가운 수술대를 향해 메스를 겨눌 준비를 시작한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